뒷골목은 언제나 옳다.
그를 처음 만난 건 학교 도서관에서였다. 우리는 공부보다 술 먹는 일이 더 잦았던 스터디 모임의 멤버였다. 그는 명석했다. 세상사 전반에 관심이 많았고, 글도 잘 썼다. 어리고 어리석었던 내가 별것 아닌 문제에 끙끙대고 있으면 언제나 근사한 답을 내놓곤 했다. 그는 명료한 논리로 무장한 좌파였지만, 그가 우파였어도 사랑했을 것이다.
한참 후 사귀는 사이가 됐을 때 나는 그에게 ‘큰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좋아한다 말할 때도, 투닥투닥 싸울 때도 그랬다. 크다는 건 곧 강하다는 말이었다. ‘당신이 나보다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어서 사랑하는 거야’ ‘강한 사람이 왜 이런 걸로 싸우려고 들어?’
그런 뜻이었다.
우리의 음식은 대체로 소박했다. 막 학교를 졸업한 때였으니 손이 가벼웠다. 떡볶이나 순대, 값싼 치킨을 앞에 두고 끝없는 수다를 떨었다. 두서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내 쪽이었고, 그걸 우아하게 꿰매는 건 그의 몫이었다. 꽤 괜찮게 꿰매진 이야기들을 보며 더 신나서 떠들어댄 건 역시, 나였다.
어느 떡볶이를 먹던 날이었나. 그가 불쑥 아버지 얘길 꺼냈다. 돌이켜보면 엄청난 고백은 아니었지만, 잔잔히 꺼내놓는 이야기들은 감싸주고 싶은 것들이었다. 조금은 아프고 또 조금은 아련한 옛날 이야기들.
그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는지 차분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며 알 수 있었던 건, 약한 모습도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 그의 나약함을 발견한다면 실망할 것만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 그거였다. 부서질 듯 약한 모습 그 자체도 사랑받을 수 있는 거구나. 콩깍지가 씌었던 거라고 비웃는대도 어쩔 수 없었다.
그때는 명확했고 지금은 잘 모르겠는 이유로 우리는 헤어졌다.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은 글쎄, 쉽게 잊히지 않았다.
남프랑스의 무스티에 생 마리 마을은 아주 작았다. 높은 곳에 자리한 성당을 제외하면, 휘 둘러보는 데 30분이면 족했다. 고즈넉하다 못해 무섭도록 조용할 뻔했지만 관광객 때문에 생기가 도는, 가이드북에서 ‘중세 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이라 표현하는 그런 마을이었다. 대표적인 게 오래된 돌길이었다. 아름답고 낭만적이었지만 걷다 보면 다리가 꽤 아팠다.
이 마을에서 머물 시간이 꽤 있어 나는 홀로 이 골목 저 골목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관광객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어느 작은 길에서 풋, 혼자 웃고 말았다.
내 발은 단단한 시멘트 길에 디디고 있었다.
중세 마을 뒷골목에서 발견한 시멘트 길은, 그러니까, 좀 귀여웠다. 아무리 옛 돌길이 아름답고 거기에 반한 관광객들이 이 마을을 먹여 살린다 해도, 그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걷기 편한 시멘트 길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무렴.
정확한 동네의 역사나 시멘트 길이 깔린 이유 같은 건 모르겠다. 그러나 기뻤을 뿐이다. 화려하게 꾸미고 앉아있던 배우가 화장을 지우고 담배 한 대 태우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것만 같아서. 조금은 피곤하고 나약한 맨 얼굴. 그걸 본 것만 같았다.
뒷골목을 좋아한다. 호시탐탐 노린다고 하는 편이 맞다. 일정이 꽉 짜인 패키지 여행이 아닌 다음에야 웬만하면 찾아 걷는다. 음악이 들리는 곳으로, 빵 굽는 냄새가 퍼지는 쪽으로 발을 들인다. 내가 진취적인 분야가 있다면 그건 뒷골목일 것이다. 관광 명소 표시 따위 없는 길을 기어코 들어가고 만다.
그러다 보면 재미있는 풍경들을 만났다.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빵집을 만나 하루 종일 행복했다. 쿠바 아바나의 뒷골목에서는 힙합과 레게톤을 듣는 소년들을 마주쳤다. 관광객의 구미에 맞춘 재즈만 울리던 앞골목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었다. 언제까지고 이방인에게 친절할 것만 같던 스페인 세비야의 뒷골목에서는, 동양인 여자는 재수없다며 마구 욕지거리를 퍼붓는 노숙자를 만나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뒷골목은 민낯이었다. 대개는 약한 부분이었다. 이런 느낌만으로 그 나라를 단정하고 정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금 더 풍부한 정보와 감상을 얻는 데 뒷골목은 언제나 옳았다. 프로방스의 옛 모습을 그대로 지켜야 하는 데서 오는 지루함과 피곤함을 발견한 것도, 자본주의와 미국 문화에 동경과 비난의 마음을 함께 품고 있는 쿠바를 본 것도, 잘나가는 서방 국가에서 겪는 가난의 절망을 애먼 관광객에게 푸는 사람을 만난 것도 모두 뒷골목에서였다.
그 골목들은, 모두는 아니었으나 대개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껴안을 수 있을 때 결혼하라는 조언도 수없이 들었다. 그런 말들에 언제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말들에 포위되어 나는, 약한 모습 그 자체를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었다. 약함은 언제나 내가 그러려니 받아들여야 하는 것, 두 눈 꾹 감고 견뎌야 하는 거였다.
뒷골목에 탐닉하기 시작한 건 연애시절의 어느 날 이후였을까. ‘약함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약함 그 자체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그날. 뒷골목을 사랑하는 것은 아마도 약한 것을 사랑하기 위해서일 거야. 나는 생각한다.
관광명소도 핫플레이스도 없는 그저 그런 길들을 그렇게 헤매고 다닌 것은 분명히 그래서일 거라고.
2015년 여름 남프랑스_가족여행
★ 내 맘대로 여행 팁. 꿀팁 아님. 틀려도 난 모름. 정말 모름. ★
무스티에 생 마리(Moustiers-Sainte-Marie) 마을은 보통 남프랑스 투어를 하는 사람들이 라벤다 밭을 보러 가는 길에 잠시 들르는 곳입니다. 이 마을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집니다. 프로방스의 유명한 시인 미스트랄(이 지방에서 부는 계절풍의 이름이기도 함)이 어느 날 꿈에서 본 계시대로 별을 따라왔는데, 도착한 곳이 바로 이 마을이라고 해요. 그래서 이곳에 성당을 짓게 되었는데, 이를 기려 마을 사람들은 높은 산 절벽과 절벽 사이에 줄을 연결해 별 모양의 조형물을 걸어두었습니다. 멀리서도, 낮에도 반짝이죠. 물론 전설은 전해주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조용히 들러 쉬다 가기에 좋은 곳. 남프랑스 여행이 대개 그렇듯 렌트카를 이용한 여행객이 가장 많았습니다. 도자기로 유명하다던데 사실 제가 그쪽엔 관심이 없어 제대로 보질 않았어요. 몇 년 전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로 꼽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