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과 상연> 리뷰 (상) - 기억과 상처, 그리고

상연이는 왜 그랬을까?

by 회복하는돌

나는 과거의 기억을 꽤나 오래 붙들고 사는 사람이다. <은중과 상연> 속 주인공들 또한 나를 닮아 있었다.

이 드라마에 김상학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유는, 은중과 상연이 모두 천상학의 자살이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은중이 상학을 사랑하게 된 이유도 천상학을 닮았기 때문이고, 상연이 상학을 사랑하게 된 이유 역시 상학이 ‘무니’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얼핏 극복한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트라우마는 결국 관계 전체를 집어삼킨다.

상연은 김상학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은중을 괴롭혔지만,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김상학은 오랫동안 혼자였던 상연의 회복을 끈질기게 도왔다는 점에서, 상연이 그에게 집착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녀가 떠올린 이름에는 상학이 없다.

대신 그 자리에 천상학과 류은중이 있다.

상연은 은중에 대한 마음을 글로 남긴다. 그리고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상연의 심리를 짚어보았다.

*드라마가 이미 은중의 마음과 인물상을 충분히 보여주었기에, 은중에 대한 해석은 따로 덧붙이지 않았다.


상연의 마음


d으.jpg


상연은 언제나 은중이 자신보다 더 많은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속이 상했다.

엄마도, 오빠도 모두 자신이 아닌 은중에게 더 많은 관심을 주었으니까.

그래서 상연은 은중을 미워했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사랑했다.

무엇보다 상연은 은중이 무서웠다.


자신을 오래 미워하고, 죄책감을 원동력 삼아 살아가는 사람인 상연에게 은중은 너무 올곧고 따뜻한 존재였다. 그 사랑이 고팠지만, 동시에 그 사랑을 거부하고 싶었다. 그 사랑 때문에 은중을 미워할 수 없었고, 또 자신과는 다르게 너무도 넓은 마음을 가진 그 사람이 부럽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상연은 자기 내면을 계속 회피하며 은중에게서 멀어지려 하지만, 도망친다고 해서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30대의 상연은 이제 은중을 완전히 미워하기로 결심한다. 짓밟고 괴롭히면 이번에는 내가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은중을 영화판에서 쫓아낸 후, 상연은 내내 은중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누가 널 받아주겠니, 끝내.”


그 말을 저주처럼 떠올리며, 지독한 외로움을 다른 사람들로 잊어보려 애쓴다.

은중을 이기면, 벗어나면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상연은 생의 마지막에서 깨닫는다.


내가 줄곧 나를 괴롭히고 있었구나.

옭아매고 있었구나.

사실은 그러고 싶어서, 그게 편해서.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을 몰라서.

사랑을 주는 법도, 받는 법도 늘 어려웠으니까.

어쩌면 정해져 있는 것 같지, 그렇게 올바르게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래서 상연은 은중이 두렵다 말했다. 제멋대로 굴어도 자꾸만 감싸 안아주는 사람이라서.

상연은 위악적인 인물이다. 은중이 자신을 욕하고, 화내기를 바라지만 번번이 그 바람이 실패할 때마다 미친 듯 분노하고 폭주한다. 자신을 미워하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그 사랑을 누구보다 고파하면서도, 끝내 인정하지 못한 채. 자신을 직면하기 두려웠던 회피형의 끝판왕 상연은, 은중이 돌아섰을 때에야 깨닫는다.

내가 버린 것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그리하여 상연은 마지막으로 은중에게 티켓을 건네러 온다.



세 번의 죽음: 천상학, 천상연의 어머니, 그리고 천상연.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상연의 가족은 대부분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는다.

천상학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죽음을 택했고,

어머니는 병으로 인해 원치 않는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상연은 스스로의 선택과 은중의 도움으로 조력자살을 택한다.

앞선 두 죽음에서 이미 상연은 애도 실패의 과정을 겪는다.

오빠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상학과의 관계에 매몰되었고,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가까웠던 사람들과 멀어진다.

그래서 상연은 ‘존엄한 죽음’에 대해 누구보다 오래 고민했을 것이다.

드라마는 이 주제를 아주 깊이 비춘다.

그리고 은중의 선택-조력자살을 돕는 은중-때문에 그녀가 트라우마에 시달릴지도 모른다고 동료는 걱정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또 다른 큰 주제는 용서와 사랑이다. 은중은 상연을 끝내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그토록 미워했던 시간을 잊은 듯 과거의 순간을 복기하며, 상연의 곁을 지킨다.


“네가 나를 받아주는구나, 끝내, 네가.”



이 대사는 너무도 시리고 큰 울림을 준다.

그럼에도 나는 결말을 마냥 웃으면서 볼 수만은 없었다.

상연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는데....


리뷰는 (하)편에서 이어집니다.


이전 08화[서평] 지금 당장, 구체적으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