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빨리 걷고 과묵한 나의 다정,

-시 <흐르는 밤들>에 대한 해석 에세

by 회복하는돌

생명이 아닌 것이 생명력을 갖추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낀다. 흐르는 폭포를 마주하면 그 광경에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반면 생명이 생명력을 갖추지 못하는 순간을 목격하면 슬퍼지곤 한다.

그러니까 소파에 누운 할아버지가 이모가 가져온 링겔을 맞는 순간에도, 여전히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처럼.



<흐르는 밤들>이라는 시의 제재가 되어준 이는 나의 외할아버지이다.

아마 열 살쯤 되었을 무렵의 어린이날, 그의 손을 잡고 대구 근교의 어느 백화점으로 향한 적이 있었다.

그날 그는 인형 코너에 나를 데려갔고, 나는 왜였는지 제일 값싼 양 인형을 골랐다. 좋지 않은 집안 형편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던 걸까.

할아버지는 더 예쁜 걸 고르라며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나는 이게 마음에 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가 인형을 들고 말없이 계산대로 향하는 모습이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



코미디언 원소윤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에는 ‘발산하는 다정’과 ‘수렴하는 다정’이 있다고 한다. 그의 다정은 늘 수렴하는 다정, 그리고 ‘함구하는 다정’에 가까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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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을 지키는 것, 기다리는 것,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다정한 것.

나는 발산하는 다정을 뽐내다가 제풀에 지쳐버린 나날이 많았다. 문득 무언가가 그리워지거나, 슬퍼지거나, 사무치는 마음을 멈출 수 없었을 때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제는 흐르는 것은 그냥 흘러가게 두는 법을 배웠다.

구태여 붙잡으려 애쓸수록 멀어지기만 할 뿐이지 않은가.


이것이 나의 다정이라면,

빨리 걷고 과묵한 나의 다정, 그것이 나의 조부의 방식이었다면.


마음속에서 흘러넘치는 것을 흐르게 내버려두는 것도 나의 다정.

이제는 함구하는 다정을 조금은 배운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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