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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Mar 20. 2017

운명에 대한 딴생각

운명을 관조하라

운명을 관조하라




2017년은 유난히 힘들었던 한 해였다. 그 해 1월, 내가 회사에서 꽤 큰 사업을 수주할 때만 해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마치 높이 날아오르다가 태양에 녹아버린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이후엔 계속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그 사업에 책임자(PM)였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책임자(PL)로 밀려나야 했다. 이유는 고객사 측에서 책임자 교체를 요청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황당했다. 사업 초기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했던 게 이유라면 해명이라도 하겠지만, 나에 대해 업계 평판이 좋지 않았다는 지적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평판이 나돌 정도로 내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내가 수주한 사업에서 내가 물러나야 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당혹스러웠지만 구차해 보이는 것도 싫어서 별다른 하소연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를 지적한 고객사가 또 발생했다. 얼마 전 새롭게 맡게 된 A고객사였다. A고객사의 모 과장이 나와 통화한 후 몹시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며 담당자를 교체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역시나 당혹스러운 것은 나는 그 과장과 통화한 기억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억울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해가 풀리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했다. 뭐, 괜찮았다. 그 정도에 무너질 정도로 나약한 정신은 아니니까. 다만, 갑작스러운 소화불량으로 새벽에 응급실에 다녀와야 했고, 나이 어린 여성 레지던트에게 관장 시술을 받아야 했던 점만 빼면 그렇게 불행하진 않았다. 단지 수치스러웠을 뿐.


하지만 불행은 그렇게 연달아서 찾아왔다. 심지어 당시 TV로만 지켜봤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을 줄 알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안이 가결되었을 때만 해도 나는 치킨을 뜯으며 사건의 전개를 흥미롭게 지켜봤을 뿐, 그 불똥이 연쇄작용으로 나에게 튈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덧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렸고 대기업 총수 9인이 출석하게 되었다. 박근혜 정권과 유착관계를 강하게 의심받는 몇몇 총수들은 곤욕을 치러야 했고 결국,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은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된 <미래전략실>을 해체할 것을 약속하게 된다. 물론 여기까진 나와 아무 상관도 없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지난 2월 28일, 삼성그룹은 수순에 따라 미래전략실을 전격 해체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예상치 못하게 삼성그룹의 언론 역할을 수행하던 <미디어삼성>도 연달아 해체되고 말았다.


미디어삼성 기자단에 속한 나는 졸지에 글을 쓸 수 있는 공식적인 타이틀을 상실하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삼성그룹 파워블로거였던 자격도 사라졌다. 그렇게 당혹스러운 마음이 교차하고 있을 때, 또 하나의 비보가 날아왔다. 회사에서 진급 대상이었던 나는 승진자 명단에 빠져 있었다.


뭔가 계속해서 두들겨 맞는 기분이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표정 관리를 위해 애를 써야 했지만, 넋이 나가버린 건 감출 수 없는 모양이었다. "괜찮아요?"라는 주변 사람들의 물음에 웃어보지만 그건 분명 허탈한 웃음이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만 갑작스러운 눈의 피로가 심해져 컴퓨터 모니터를 쳐다보기가 힘들어졌고, 결국 블루라이트 차단 효과가 있다는 엄청 비싼 안경을 쓰고 일을 해야 한다는 점만 빼면 그렇게 불행하진 않았다. 단지 불편했을 뿐.


하지만 사건이 도무지 멈추질 않았다. 하루는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회의를 끝내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중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앞쪽에 있던 트럭 화물칸에서 갑자기 플라스틱 통이 떨어져 나왔다. 그 플라스틱 통은 다행히도 옆으로 튀었고 덕분에 뒤에 있던 승용차는 해를 입지 않았다. 그런데 플라스틱 통이 갑자기 방향을 선회했다. 뒤에 승용차는 피해 가더니 그 뒤에 있던 내 차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참으로 희한한 궤적을 그리며 나에게 날아왔다.


"쿵!"


운전석을 향해 돌진하던 그 통이 왼쪽 백미러를 박살 내 버렸다. 다행히 나는 다치지 않았다. 아니, 불행하게도 다친 것은 몸이 아니었다. 근처 정비소에서 차를 수리하는 동안, 나는 넋 나간 사람처럼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10km로 달리다가 비닐봉지와 부딪혔는데 범퍼가 깨졌다는 우스갯소리가 갑자기 생각났다. 하지만 전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트럭 바로 뒤에 있었던 승용차는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안전거리 이상 떨어져 있었던 내 차는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 플라스틱 통이 날아온 궤적이 머릿속에 강한 잔상으로 남아 버렸다. 그것은 마치 운명처럼 나에게 날아왔고, 그동안 나의 상황을 반영하듯이 나의 것들을 박살 내 버렸다. 그것은 내 차만 박살 낸 것이 아니었다. 쉽게 무너지지 않던 내 마음도 박살 내고 말았다.



휴가가 필요해졌다. 탕비실에 놓인 생수통만 봐도 트라우마를 느낄 지경이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휴지 조각마저도 나에게 달려들어 해를 입힐 것만 같았다. 회사에 꽤나 긴 휴가를 요청했다. 다행히도 최근 나의 상황을 이해해 준 회사 사람들 덕분에 휴가를 쓰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다.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연차를 끌어모아 20일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쉬게 되던 첫날, 멀리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가 문득, 딴생각이 들었다. 우선 내가 처한 상황을 관조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어디를 가든 불안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조금 독특한 관점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사물의 흐름을 보고 판단하는 것을 '사판(事判)'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처한 운명은 사판만으로는 헤아리기 어렵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을 판단하는 '이판(理判)'을 살펴봐야 한다. 합치면 '이판사판(理判事判)'이 된다.


자고로, 데이터와 상식 선에서 정리가 되지 않으면 '기인이사(奇人異士)'를 찾아가 질문을 던져야 하는 법.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찾아가고, 유비가 제갈공명을 찾아가듯, 내가 아는 기인이사를 찾아가야 했다. 서초동 김 선생에게 연락했다.


그는 주역을 공부한 역술인이고 아직도 대학원에서 학문에 심취한 만학도이다. 오래전, 대치동 학원 강사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우연히 서초동 김 선생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주를 통해 길흉화복을 내다봤는데, 대치동 강사들 사이에서도 쉬쉬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그런 존재였다.


벌써 4년 전 일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하며 글쓰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김 선생이 나에게 조언을 해준 적이 있었다. 내가 잘 쓸 수 있는 글의 성격은 무엇인지, 글의 형식은 어떻게 되는지, 꽤나 자세히 일러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첫인상은 참 흥미로운 양반이었다. 얼굴은 가수 김C를 떠올리면 딱 맞고 말투는 조금 어눌한 편이었다. 하지만 무표정한 태도를 견지하며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그였다. 4년 만에 그의 서초동 사무실을 찾아갔다.


"오랜만입니다."


"앉으세요. 커피 드릴까요? 믹스커피? 아님 카누?"


그는 여전했다.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카누에 설탕을 넣을지 말지를 물어본다.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나의 사주와 개인정보를 조회해 보며 말했다.

"갈등의 연속이네요. 억울한 일 당하고, 누명을 쓰거나 오해받을 일도 생기고, 특히 교통사고 조심하셔야겠어요. 열심히 일을 해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건 당신이 가진 사주의 타고난 딜레마입니다. 그런데 정유년이 유독 심하네요. 간단하게 말해서, 올해가 최악이니까 조심하세요."


그의 직설적인 화법도 여전했다. 이미 내가 알고 있고 몸소 겪은 일들을 브리핑해 주는 수준의 사주풀이가 내 성에 찰리 없었다. 나는 본격적인 질문을 던졌고 김 선생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나는 운명을 맹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운명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운명을 참작하고 앞으로 내가 하는 선택에 미칠 영향을 헤아리고자 했다. 그것은 인생을 살면서 물러서야 할 때와 나아가야 할 때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사주팔자의 기본 골격은 '주역'이다. 예로부터 선비들은 과거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유교의 기본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공부했는데, 이 '삼경' 중에 마지막이 바로 '주역'이다. 주역이란 변화무쌍한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학문이고 자연과학이다.


공자가 너무 많이 읽어서 가죽끈이 3번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의 주인공이 주역이며,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항상 머리맡에 두고 읽으며 '에센스 중의 에센스'라고 인정했던 책이 주역이다. 칼 융이 자신이 정립한 '원형 이론(Archytype)'의 근거로 삼았던 것 또한 주역이다.


나는 주역을 무당이 하는 사술이나 귀신 점으로 혼돈하지 않는다. 그것은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기호학이자, 인간의 라이프 코드를 분석하는 통계학이다. 내가 사주를 보는 것은 정해진 운명에 순응하고자 함이 아니다. 운명을 개선하는 '개운(開運)' 하고자 함이다.


내가 김 선생을 찾은 이유도 개운의 관점에서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그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직 글 쓰고 계시죠? 글을 쓰는 사람에게 불행이나 고난, 역경 같은 일들이 안 좋기만 할까요?

필력만으로 글을 쓸 수 있던가요?"


나는 대답을 망설여야 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글을 쓰는 사람에게 역경이란 소중한 콘텐츠나 다름없다. 역경과 고뇌의 깊이만큼 경험치가 다른 내공이 글에서 살아 숨 쉬니까. 아픔을 겪은 자와 겪어 보지 못한 자의 글 사이에서 뉘앙스의 품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글을 쓰는 자가 아름다운 이야기만 벗 삼는 것은 편식이다. 때로는 아픔을, 때로는 분노를, 때로는 증오를 글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삼라만상의 이치가 글에 담기게 된다. 신은 인간에게 자비와 사랑을 말하지만, 작가는 인간에게 분노와 증오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아직 분노해야 할 것과 증오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김 선생은 나에게 은근슬쩍 관점의 전환을 말해 주고 있었다. 범부(凡夫)로서 불행 안에서 허우적대지 말고 작가로서 불행을 관조해 보라고, 불행이 다가온다면 두려움에 떨지만 말고 더듬어 느끼고 만져보라고, 삶의 한 가운데에서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내면과 외연을 관찰해 보라고.


어느덧, 우리의 대화는 한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김 선생의 직설화법은 계속되었다. 갑자기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올해 특히 조심해야 할 세 가지를 알려 주었다.

"첫째, 해외 나가지 말 것! 둘째, 차 바꾸지 말 것! 셋째, 이직하지 말 것!"


20일 동안 휴가인데 해외 나가지 말라니, 일단 나의 휴가 계획은 끝장나버렸다. 그때, 문득 딴생각이 들었다.

"제가 만약 그 세 가지를 해버린다면, 저는 더욱 불행해질 테니까, 제 글은 더욱 풍성해지겠군요."


그는 나에게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 조언을 해 주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어차피 나중엔 풀릴 테니까. 굳이 서두르고 싶다면 결혼부터 서두르세요. 결혼하면 정말 좋은 사주인데..."


나도 그에게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어줬다. 그의 사무실을 나왔다. 잠시 걷고 싶었다. 그렇게 걸으며 주변 경치를 관조하고 싶었다. 문득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가는 길은 바람을 거스르는 오르막 길이었다. 책에서 읽은 좋은 구절이 떠올랐다.



하늘이 나에게 복을 박하게 준다면, 

나는 내 덕을 두텁게 하여 이를 맞이할 것이다.


하늘이 내 몸을 수고롭게 한다면,

나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이를 도울 것이다.


하늘이 내 처지를 곤궁하게 한다면,

나는 내 도(道)를 깨달음으로써 이 어려움을 뚫을 것이니

하늘인들 나를 어찌하겠는가.


- 채근담 -




운명에 대한 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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