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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Nov 17. 2019

나홀로 프라이버시 과잉


서른세 살 때, 드디어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부모와 떨어져 살아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사실상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술이 문제였다. 어쩌다 만취해서 집에 들어갈 때면 엄마의 잔소리가 매서웠다.


"또 마셨냐? 양복엔 뭘 이렇게 묻히고 다녀? 속옷을 벗었으면 제발 세탁기에 넣어라!"


하루는 양복에 뭘 묻히지도 않았고 속옷도 잘 벗어서 세탁기에 넣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취했던 게 또 문제였다. 다음날 아침, 김치냉장고 속에서 내 팬티를 발견한 엄마는 당장 집을 나가라며 김치 냄새팬티를 내 얼굴에 집어던졌다.


그렇게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런 내 처지가 기쁘기 그지없었다. 드디어 원했던 것을 쟁취하게 되었으니까. 프라이버시 말이다. 쫓겨나긴 했지만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을 권리를 얻게 되었으며, 만취해도 될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독립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던 일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해결될 줄은 미처 몰랐었다. 그것은 엄마의 신상 김치냉장고에 벗은 팬티를 집어넣을 용기만 있으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물론 다 큰 아들의 팬티를 이른 아침에 김치냉장고 속에서 발견한다는 게 얼마나 충격적인 일인지는 모르겠지만서도 말이다.


혼자 살 집을 구해야 했다. 집 장만할 만큼 넉넉한 돈을 모았던 것도 아니기에 직장인 대출을 보태야 했다. 예쁜 집을 원하거나 큰 평수를 원하지도 않았다. 나에게 필요한 부동산 입지조건이란 간단했다.


'부모로부터 최대한 멀리, 프라이버시를 위한 나만의 공간'


결국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이 위치한 봉천동에 작은 원룸을 전세로 얻게 되었다. 다섯 평 정도나 됐을까? 꽤 작은 원룸이었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라곤 예전 우리 집 내방보다 못했지만 만족감은 더할 나위 없이 컸다. 그 옛날 진시황의 아방궁도 부럽지 않은 나만의 공간이었으니까.


신기하게도 그렇게 원하던 프라이버시를 확보했는데 내 삶이 더 온순해지고 말았다. 갈등을 일으켰던 술은 적게 마시게 되었고 만취하는 일은 사라졌다. 일이 끝나면 얼른 집에 오고 싶어 졌고, 술을 마시더라도 오래 마시고 싶단 생각이 사라졌다. 신기했다. 어서 나만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그 아방궁 속으로.


1인 가구로서 맞이한 첫날을 기념하기 위해 찍었던 창밖의 풍경. 흐린 날씨였지만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그렇게 일 년을 원룸에서 살았을 때였다. 이곳에서의 삶이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하루는 바쁜 일과를 끝내고 원룸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문을 열어 내가 있을 공간을 보는 순간 왈칵 쓸쓸함이 몰아쳤다. 이상했다. 안락함이라곤 눈곱만치도 느껴지지 않았다. 왠지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가 살 것 같은 공간을 견학 온 기분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혼밥, 혼술, 혼놀, 혼영 등 혼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안에 있었고, 나는 자발적 고립이라는 견고한 성을 건설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객관적인 시각으로 내가 사는 공간을 바라본 덕분에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바로 그 '히키코모리'였다.



공유 프라이버시

사생활이나 사적인 일, 또는 그것을 남에게 간섭받지 않을 권리를 '프라이버시'라고 한다. 개인적 속성이 다분하지만 나만 갖고 있는 프라이버시를 '나홀로 프라이버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왜냐하면 프라이버시는 타인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유의 성질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부부가 그렇다. 그들은 정서적 공동체다. 같이 한 방을 쓸 수 있으며 부부 관계를 형성하고 남으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권리를 함께 공유한다. 그것을 '부부 프라이버시'라 할 수 있다.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 스킨십을 나눌 수 있는 사적 관계이며 남으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권리를 함께 갖는다. 고로 '연인 프라이버시'다.


공적 관계만이 존재할 것 같은 직장에서도 프라이버시를 공유하는 정서적 공동체는 있다. 바로 '동료 프라이버시'다. 친한 동료 간에는 회사를 욕할 수도 있고 상사의 뒷담화를 공유할 수도 있다. 어쨌든 회사 또는 상사가 알면 안 되는 프라이버시를 그들만이 간직하게 된다. 어쩌다 회사에서 상사가 없는 날이 오면(일명, 어린이날) 함께 프라이버시를 만끽할 수도 있다.


이렇게 프라이버시를 함께 공유하는 형태는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그것을 '가족'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친구'라고 부르기도 하며, 공동체의 성격에 따라 '동기', '단짝', '룸메이트 ', '길드', '밴드' 등 다양한 형태로 부르고 있다. 심지어 '불륜'이라고 부르는 관계조차도 그들만의 은밀한 프라이버시를 공유한다는 관점에서 정서적 공동체라 할 만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관계를 지향하는 존재니까. 단순히 함께 있어서 공동체가 아닌, 프라이버시를 공유하는 형태로 '정서적 공동체'를 지향하기 마련이다. 만약 이런 '공유 프라이버시'가 빈약하고 '나홀로 프라이버시'만 과잉이라면 이것은 '프라이버시 불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는 전형적인 프라이버시 불균형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프라이버시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면 심리적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데 고독과 불안감, 외로움, 소외감, 자기혐오, 대인 기피증, 또는 사회로부터의 단절과 같은 부정적인 현상들이 그런 것들이다. 그게 참 어렵다. 필요한 만큼의 사생활을 얻는다는 것 그리고 필요한 만큼의 인간적 교류를 얻는다는 것 사이에서 어느 것 하나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프라이버시에 대한 근원적 피로감은 여기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



가족 붕괴

프라이버시가 침해받는 상황은 일상다반사다. 스마트한 기술 혁명이 펼쳐지고 공유 경제가 활성화되는 요즘, 한편으론 개인정보보호법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IT 인프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조차 프라이버시 침해는 빈번하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생활이 특히 그렇다. 사회적 생산활동을 하기 위해 회사에서 근무하는 자리란 사실상 감시자에 의해 노출된 공간이나 다름없다. 어쩌면 공식적으로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직장에서 스트레스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감시를 느낄 때마다 생기는 피로감 때문이며, 그 피로감은 고스란히 프라이버시 결핍을 호소하게 만든다.


직장에서 느끼는 프라이버시 결핍을 다른 곳에서 보상받으려 하는데 그곳이 바로 집이다. 물론 집이라고 감시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만취해서 들어갈 경우 엄마의 눈치를 살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감시자의 눈을 피해 거실을 지나 내 방으로 들어가야만 비로소 프라이버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이유로 집이란 프라이버시가 확보될 수 있는 공간으로 꾸준히 발전해 왔다. 그 증거로 방문이 진화해 온 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전통적인 한옥을 떠올려 보자. 나무틀에 창호지를 덧붙인 형태의 문, '창호지 문'을 기억할 것이다. 창호지는 반투명 재료다. 빛과 공기가 쉽게 방 안으로 스며들며 심지어 방안의 소리와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새어나간다. 철저하게 안팎이 차단된 문이 아니라 인기척이 수월하게 넘나드는 소통의 문이었다.


안과 밖이 소박하게 어울렸던 그 문은 세월이 흐르면서 목재로 된 빈틈없는 문으로 바뀌어 나갔다. 한때나마 목재 문에도 간유리로 된 작은 창이 달려 있었는데, 간유리는 투명하지 않아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방안의 동정을 살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유리창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게 차단된 문으로 진화했다.


한 가족이라고 해도 방문을 걸어 잠그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집이란 더 이상 'my home'이라기보단 'my room'으로써 의미를 가질 뿐이었다. 한때 인테리어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거실의 죽음'도 그런 경향의 결과물이었다. 더 이상 가족은 거실에서 함께 보내지 않는다.


결국 집의 이러한 변화는 또 다른 프라이버시의 희생을 낳았다. 사회생활에서 느낀 프라이버시 결핍을 가족 공동체를 희생시키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았기 때문이다. 퇴근 후 혹은 방과 후 집에 들어오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견고한 문을 닫아 버린다. 그렇게 나홀로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지만, 결국 가족이라 불리는 정서적 공동체, 즉 '가족 프라이버시'는 희생당하고 만다. 이런 현상은 '1인 가구' 증가와도 무관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지난 2015년부터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가구 형태로 바뀌었다. 이미 우리나라는 1인 가구 500만 시대를 돌파한 지 오래다.


그 원인으로 여성의 경제 활동 증가, 결혼관의 변화로 인한 미혼과 비혼 증가를 꼽기도 한다. 물론 이혼과 별거의 증가도 한 원인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면에는 가족 공동체가 희생되고 나홀로 프라이버시가 강조된 사회적 변화가 저변에 깔려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한 사회적 변화가 주거형태로 극대화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았던 '원룸'이다. 원룸 내부엔 일반적인 주택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방, 화장실, 부엌, 심지어 작은 거실까지 구겨 넣은 꼴이다. 하지만 가족의 구성이 고려되지 않은 철저히 혼자만을 위한 공간이다.


애당초 원룸이란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임시적 주거 양식이었다. 철새처럼 얼마 후면 떠나야 될, 처음부터 이웃과 소통하는 일에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나홀로 공간인 셈이었다. 그곳이 바로 진시황의 아방궁이 아니라 '나홀로 프라이버시의 성지', 원룸이다.


다행히 나는 그 성지 안에서 프라이버시 불균형에 따른 초기 증상을 앓고 있었다. 그곳에 혼자 있을 때, 자꾸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적이 공명하는 소리였다. 세상 밖의 소음보다 시끄러운 정적이었다. 인기척이 듣고 싶었다. 언제부터인가 SNS를 살펴보는 일이 잦아졌다. 심지어 인터넷 동호회를 조회하며 가입할 만한 곳을 찾고 있었다. 정서적 교감이 고팠다. 웃기는 일이었다. 누군가와 함께할 땐 사람이 버거워 프라이버시 결핍을 호소하더니, 혼자 있을 땐 사람이 그리워 프라이버시 과잉을 호소하는 격이었다. 인간이 이렇게 청개구리스럽다.



관계의 진화

물론 인간은 청개구리가 아니다. 끊임없이 프라이버시를 요구하면서도 누군가와 함께하고픈 이율배반적인 존재일 뿐이다. 다만 삶이 거쳐간 맥락에 따라 어느 한쪽을 더 욕망할 뿐이다. 또 누군가는 말한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거리 조절'에 실패해서 벌어진다고.


어느덧, 내가 살던 원룸의 전세 계약이 끝나갈 시점이었다. 타인과의 거리 조절을 다시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집의 입지조건을 바꿨다.


'부모로부터 그렇게 멀지 않은 곳, 타인과 교류하기에도 적당한 곳'


결국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연립주택에 전세 계약을 하게 되었다. 연립이란 이웃이 존재하는 곳이다. 옆집은 노부부가 살고 있었고 아랫집은 신혼부부가 살고 있었다. 간혹 주차를 하거나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다가 마주칠 일이 많다 보니 서로 인사를 하며 지냈다. 그 이웃들은 내가 혼자 산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맛난 음식이 생기면 나눠주기도 했다. 조금씩 사람 사는 것 같았다. 그렇게 4년을 지내다가 한 번 더 거리 조절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입지조건이 또 달라졌다.


'부모로부터 가까운 곳, 누군가와 함께 살아도 적당한 곳'


고심 끝에,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조그만 아파트를 장만하게 되었다. 일산의 부모님 집과 가까워지자 왕래가 빈번해졌다. 혼자 사는 자식이 불쌍 타며 아버지는 가끔씩 오셔서 내 와이셔츠를 다려 주셨다. 한때 세탁소를 운영하셨던 분이라 다림질의 퀄리티가 차원이 다르다. 덕분에 옷맵시가 살아났다. 어머니가 반찬거리를 제때 조달해 주시니 외식이 줄어들었다. 여러모로 경제적이었다.


결론적으로, 나홀로 프라이버시가 아쉬워 가족을 벗어났는데 이상하게도 가족을 향해 가고 있었다. 결국엔 가족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진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거리상으로 그렇게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균형을 유지하며 프라이버시를 위한 거리 조절에 성공했다고 해야 할까?


가족이라는 전통을 무작정 옛것이라고 치부하기엔 해결되지 않는 원초적 결핍은 있었다. 따라서 비록 떨어져 살지만 나름대로 가족이라는 정서적 공동체를 공유하는, 딴생각스럽게 말하자면, 보다 트렌디한 '밀레니얼 가족'으로 복원시킨 셈이었다.


1인 가구 혹은 '1코노미'의 증가로 이미 혼밥과 혼술 문화가 보편화된 세상이다. 이젠 나 혼자 궁상떨던 일들이 마치 '스웨그'처럼 여기지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이면에 그늘진 쓸쓸한 자화상은 여전히 눈에 밟힌다. 혼밥, 혼술을 하면서도 쉴 새 없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SNS로 인증을 하는 그들에게 '좋아요'나 '팔로워' 같은 인기척조차 없으면 안 되니까. 가족 개념이 고리타분하다 해도 결국엔 관계지향적인 인간 본능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그 관계가 진화할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정서적 공동체가 서로 간의 거리 조절에 성공하며 새로운 공유 프라이버시로 등장할 것이다.


그 조짐은 이미 발생하고 있다. 한때 1인용 좌석을 선호하던 식당과 카페에서는 '공유 식탁(커뮤 널 테이블)'이라 불리는 커다란 테이블이 인기를 끌고 있고, 낯선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고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즐기는 등 라운징을 위한 공간으로써 각광받고 있다.


혼밥과 혼술의 대안으로써 모여서 함께 하자는 '소셜 다이닝 Social Dining'은 이제 일상적인 형태가 되었으며, 그렇게 외로운 1인 가구들이 오손도손 모여 식생활의 활기를 찾아간다.


필요와 목적에 따라 솔로들이 모인다는 '느슨한 모임'도 트렌디한 공유 프라이버시의 일종이다. 이들은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지만, 서로의 신상은 공유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덕분에 더 과감하고 솔직해지기도 한다. 이런 모임은 상당히 활성화되어 서울에서만 수백 개의 '느슨한 모임'이 존재한다고 한다.


원룸과 같이 폐쇄적인 주거 양식도 공유 프라이버시를 향해 진화하고 있다. '코 하우징 Co-Housing' 또는 '셰어하우스 share house'와 같이 필요에 따라 타인의 인기척을 느낄 수 있는 관계지향적 주거 공간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사람은 혼자 있으면서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정의해 나간다. 그 관계 속에서 상처 받고 아파하며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한 번도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관계를 개선하며 또 다른 관계 속에서 상처를 치유받고 복원시켜 나갈 것이다. 그것이 과거의 끈끈한 관계는 아닐지라도 적당한 거리 조절에 성공하며 느슨한 관계들이 프라이버시의 빈 틈을 채워 나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계들이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 마치,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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