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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Aug 17. 2020

죽은 글


글을 쓰다가 멈췄다. 내 글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때면 어김없이 남의 글을 읽는다. '죽은 자의 집 청소'가 손에 잡혔고, 이 특수 청소부의 서문에 시선이 따라간다. 죽은 자가 머문 곳에서 냄새를 맡아보고, 무엇을 먹었는지 비대해진 파리가 손을 비비는 광경과, 그 흔적에서 탄생한 구더기 떼의 몸부림을 같이 감상한다.


당신은 홀로 숨을 거두었고, 꽤 오랫동안 그대로 머물렀고, 그 남겨진 흔적과 시간을 더듬었던 특수 청소부가 당신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나갈 거예요. 하지만 지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해 남겨둘 게 있더군요.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올 당신의 딸에게 어떤 말부터 꺼낼지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쓰다 남은 글이 머릿속을 맴돈다. 특수 청소부의 예민한 감각처럼 킁킁거리며 죽은 자의 흔적에서 삶을 읽어내고 산 자의 심정으로 위로의 언어를 구상해야 한다. 특수 청소부로 빙의한 내가 죽은 글을 다시 매만진다.


instagram : 딴생각 (oh_mi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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