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김치찜에 소주를 마시다가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내야 할 상속세 10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졌는데, 어느새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의 문제점을 언급하다가 트럼프가 씹다 버린'파리 기후협약'까지 이어졌다. 시간이 흘러 3병째 소주를 마시고 있을 땐 자유민주주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다가 지구온난화까지 건드리고 말았다. 그렇게 소주로 들이 킨 어벤져스급 거대 지구촌 담론은 소심하게도 친구의 여자 친구 문제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어제 말다툼한 여자 친구와의 관계 지속 여부를 고민하는 게 더 인간적이긴 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내일도 출근해야 하고 출근하면 언제 퇴근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지구를 고민하지 않아도 지구는 돌아가는데 그러다 인류의 미래를 결정짓는 순간을 놓치더라도 그게 내 여자 친구와 무슨 상관인지는 별개의 문제이기도 하다.
친구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지구와 여자 친구 간의 상호의존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여자 친구와의 갈등이란 각자의 '입장적 대화'가 원인일 수 있는데, 그 갈등을 풀 수 있다면 요즘 핫이슈인 대한민국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의 갈등도 해결할 수 있다. 알고 보면 우리가 정치라고 하는 것은 의외로 사적이며, 사적인 것은 곧 정치적이다. 그 정치가 사적인 감정에 의해 자유민주주의를 왜곡하기도 하고 지구온난화를 발생시키기도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대의 거대한 혁명들은 개인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테러리즘은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공포심을 키워 지구촌 인간들의 사적인 상상을 납치하는 방식으로 자행된다. 같은 맥락에서 자유민주주의 위기란 정치만의 위기가 아니라 우리 뇌의 뉴런과 시냅스의 위기이기도 하다.
지구의 온도가 살짝만 올라가도 내 친구의 여자 친구가 가진 자외선 차단 화장품은 전부 쓸모없게 된다. 그렇다면 내 친구는 여자 친구의 화장품을 새롭게 장만하느라 지갑을 열어야 할 텐데, 그런 이유로 나에게 또 김치찜과 소주를 사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 와중에 누군가가 상속세 10조를 내느라 경영권 방어에 실패하면 자본주의의 연쇄작용으로 나는 회사의 구조조정에 휘말려 실직을 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친구에게 김치찜과 소주를 사줄 수가 없게 된다. 내 친구는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