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자에 대한 고찰
요즘 남자와 요즘 여자에 대한 실상을 잘 표현해 준 영화가 있다.
바로, <인턴 intern>이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앤 해서웨이'의 미모 때문에 보게 된 영화였다.
하지만 이 영화를 두 번째로 보게 되었을 땐, 오로지 '로버트 드 니로' 때문이었다.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70세의 인턴 역은 잔잔하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그것은 마치 요즘 남자들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암시해 주는 듯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가 30세의 젊은 여성 CEO로 변신한 것도 아주 매력적이었다.
영화에서 창업한 지 1년 반 만에 직원 220명의 온라인 쇼핑몰 회사로 키워낸 '줄스(앤 해서웨이)'는 요즘 시대의 파워풀한 여성상을 보여 준다. 심지어 아름답다.
그녀는 외모뿐만 아니라 TPO에 걸맞은 패션 센스와 경영자로서의 카리스마까지 두루 갖추었다.
가히 이기적이다. 웬만한 남정네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절로 뿜어져 나온다.
언뜻 보면 이 영화는 '낸시 마이어스'라는 걸출한 여성 감독이 만들었고 도시적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뭔가 칙릿(Chick Lit)스러운 여성 영화 같지만, 사실은 요즘 남자들에게 심상치 않은 화두를 던진다.
갑자기 요즘 남자라고 하니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요즘 남자인지 애매모호하겠지만, 대략적으로 옛날 남자와 구분 짓자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좀 더 여성스러우며, 좀 더 박력이 없고, 좀 더 의존적이며, 좀 더 화장을 한다.
이런 요즘 남자들에게 줄스(앤 해서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이지 요즘 남자들을 보면 진짜 남자를 찾기가 어려워요.
오히려 잭 니콜슨이나 해리슨 포드 같은 옛날 남자들이 훨씬 멋있죠!"
굳이 영화 속 줄스가 아니더라도 요즘엔 이런 말을 하는 여성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녀들이 말하는 옛날 남자란 정작 그녀들이 원했던 좋은 남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 옛날 남자란 가부장적 가치관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의 남자들이었다.
모든 면에서 여성 위에 군림했으며,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권위를 가졌던 시대의 <상남자>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꼰대스러운 남자로 살 수가 없다.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무엇보다 그런 구시대적 가치관을 지닌 남자는 요즘 여성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성에 대한 호감이라든지 성적 취향과 같이 본능적 욕구에 해당하는 것들이 항상 그 모양이다.
여자들이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남자를 싫어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끌리는 남자는 "오빠만 믿어"라고 말해 주는 상남자들이니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흔히 말하는 <짐승남>이란 것도 여성들의 묘한 판타지다.
그녀들이 짐승남을 좋아한다고 해서 진짜 짐승처럼 굴었다간 손목에 철컹철컹 쇠고랑을 차게 될지 모른다.
그냥 짐승 흉내만 내야 한다.
요즘 TV에 나오는 남자 아이돌처럼 근육질 몸매에 터프가이 패션 스타일로 으르렁거리면 그만이다.
거기에 하나 더, 강렬한 스모키 메이크업으로 섹시한 눈 화장을 해야 아름다운 짐승남으로 거듭날 수 있다.
젠장, 눈 화장 따위를 해야 짐승남이라니.
할 수 없지 않은가. 여자들에게 진짜 짐승을 함부로 보여 줄 수 없으니까 말이다.
저널리스트이자 <남자의 종말> 저자인 '해나 로진'은 이런 말도 했다.
"남성호르몬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이제 여성의 지배가 시작된다."
그래서일까? 이 시대의 여성들은 강하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는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 주었고, 여성들은 이런 시대적 흐름에 너무나 잘 적응했다.
요즘 여성들은 커리어를 쌓고, 경영을 하며, 전쟁 같은 비즈니스를 이겨내면서 동시에 가정을 돌본다.
이제 가부장제는 옛말이며 가모장제는 트렌드다.
가모장제
가정에서 남편보다 아내의 수입이 더 많거나 주 부양자가 아내인 상태.
즉, 가정 내 모든 권력의 중심이 여성인 상태를 일컫는 말.
이런 변화의 흐름에 남자들이 무기력해지고 말았다.
양성평등이라는 시대적 요구 앞에 상대적으로 피해 의식을 가진 남자들이 생겨났고, 폼에 살고 죽던 남자들이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과거와 달리 연애에서조차 주도권을 가진 남자가 드물며, 결혼에서도 밀리고, 가정에서도 밀린다.
학력에서도 밀리며, 비즈니스 역량에서도 밀리고, 심지어 권력투쟁에서조차 여성에게 패배하고 있다.
인류의 모든 혁명을 주도했던 남자의 테스토스테론이 갑자기 수줍은 미소년으로 탈바꿈했다.
그나마 있던 남자의 저항심은 증오로 변했으며, 그 증오의 대상은 다름 아닌 여성이었다.
'여성혐오', 한동안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었던 남자들의 삐뚤어진 폭력성 말이다.
넓게 보자면 양성평등이라는 유토피아가 실현되고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남자 입장에서 보자면 뭔가를 계속 잃어가고 있는 무기력함을 지울 수가 없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이란 소설을 읽는 것 같은 허무함이 몰려올 뿐.
그렇다. 이 시대의 남자들은 약하다.
물론, 여성의 권력 신장에 맞서 남성도 진화를 거듭하긴 했다.
그런데, 강해진 여자만큼이나 남자는 아름다워져야 했다.
1995년, 대한민국에 <꽃미남>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탄생한 것이었다.
보다 강해진 여성의 간택을 받기 위해 남자들이 외모를 꾸미기 시작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남자의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당시 막연하게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남자들이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했다.
바로 <메트로섹슈얼 metrosexual>의 출현이다.
이것은 꽃미남보다 한 단계 진화된 것으로 도시형 멋쟁이를 일컫는 말이다.
깔끔한 피부, 스타일리시한 패션, 그리고 이지적인 멋이 더해진 도시 친화적 외모가 남자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하나의 트렌드도 등장했다.
그것은 <보보스 Bobos>였다. 이는 보헤미안과 부르주아 두 단어가 합쳐진 말로 경제적 여유가 있으나 럭셔리를 즐기기보다는 보헤미안처럼 자유분방한 삶을 누리는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를 의미했다.
그렇다면 2010년을 넘어선 지금은 무엇이 등장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루밍족> 일 것이다.
그냥 간단하게 말하자면 '화장하는 남자'란 뜻이다.
고작 화장하는 남자라니, 뭔가 허전하다. 남자들은 그냥 예뻐지기만 한 것일까?
후기 자본주의를 지나오면서 여성들이 착실히 권력 신장을 하는 동안 남성들은 외모 가꾸기에 주력했다.
지난 20년의 결실이란, 스킨과 로션이 전부인 줄 알았던 남자 화장품 종류가 50종이 넘게 생겨났다는 사실뿐이다.
남자의 진화를 살펴보면 트렌드와 스타일은 있다.
그러나 남성을 지향하는 가치관이나 철학은 없다.
그냥 예뻐졌다.
영화 <인턴>에서 벤은 70세의 인턴이지만 항상 말끔한 슈트 차림으로 등장한다.
CEO인 줄스가 캐주얼을 권하지만 그는 정장이 편하다며 슈트를 고집한다.
꼰대스러운 고집 같지만, 슈트는 남자에게 있어 특별한 무엇이다. 그리고 그 슈트에는 멋이 있다.
자고로 진정한 남자란 슈트를 잘 소화하는 남자다.
남자의 슈트는 전쟁을 치르는 군복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여자의 그것과는 격을 달리한다.
여성의 정장은 트렌드에 따라 디자인과 스타일의 다양성을 추구하기에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며, 노출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다.
그러나 남성의 정장은 그 어떤 변화에도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추워도 가릴 수 없으며, 더워도 노출할 수 없다.
그러한 슈트에는 여성의 것과 다른 품위가 있다.
군복에서 유래되었으니 전쟁 같은 비즈니스를 치르면서 남자에게 슈트만큼 잘 어울리는 것도 없다.
다만, 매일 같이 전쟁을 치르는 남자에게 성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패배도 일상다반사다.
따라서 남자라면 패배에도 능숙해야 한다. 특히, 이제는 강해진 여자에게 지는 것도 익숙해야만 한다.
그러나, 슈트를 입는 남자에게 패배는 있어도 항복은 용납될 수 없다.
슈트를 입었을 때 어깨선 위로 팔이 올라가기 어려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일과 삶이라는 전쟁터 속에서 슈트는 남자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그것은 배트맨의 검은 가면이며, 슈퍼맨의 타이즈이고, 아이언맨의 강철 갑옷이다.
그렇다고 슈트에서 꺼낼 수 있는 것은 총과 칼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손수건이다.
영화 <인턴>에서, 줄스는 30대의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CEO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 기대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가녀린 여성이다.
남편의 외도 사실이 밝혀졌을 때, 줄스는 복잡한 심경으로 눈물을 흘렸고 그런 그녀에게 벤은 말없이 무언가를 건넨다.
그것은 슈트에서 꺼낸 손수건이었다.
남자가 슈트에 넣고 다니는 손수건은 상대방을 위한 배려다.
바로, 여자가 울 때 건네는 것.
요즘 남자들은 벤이 보여준 말 없는 배려심을 주목해야 한다.
강해진 여자에 맞서 남자가 챙겨야 할 것은 기능성 화장품이 아니라 바로 손수건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남자의 배려심이다.
그 배려심이란 남자다움이다.
비록 강한 상대를 마주하더라도 배려심을 잃지 않는 여유가 남자의 프라이드다.
그리고 그 프라이드의 상징은 다름 아닌 남자의 슈트다.
현모양처는 사랑할 줄 알지만 원더우먼을 사랑할 줄 모르는 이 시대의 남자들.
그 어떤 여성을 대하든 남자로서 잃지 말아야 할 품격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기사도(騎士道)다.
우선, 손수건부터 챙겨라.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줄스의 남편이자 요즘 남자라 할 수 있는 '매트'는 용서를 구하러 그녀의 회사로 찾아온다.
매트는 슈트를 입는 남자는 아니다.
잘 나가는 아내를 위해 전업주부를 자처하다가 존재감을 잃고 방황하더니 어쩌다 바람을 피운 남편이다.
매트는 줄스에게 용서를 구했고, 눈물을 흘리는 줄스를 그저 바라만 본다.
그런 남편을 향해 줄스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게 뭔 줄 알아요?
당신이 건네주는 손수건"
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