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용준의 이야기 #15

할아버지를 그리며

by 오난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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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 때문인지 눈앞이 노랗고,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는다. 여기까지 오는데 이미 많은 전우를 잃었고 또 많은 수의 적군을 죽여야 헀다. 먼 길을 걸어오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긴장 상태로 있어야 하니 더 빨리 지친다.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해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터를 잡고 야영을 하려는데 어디선가 탄 냄새가 난다. 정확히는 탄 내 인지 고기 냄새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야영을 준비하려던 이들은 소대장의 수신호에 따라 풀썩 앉았던 몸을 일으키고 총을 고쳐멘다. 이제는 몸이 제법 단련이 되었는지 총을 고쳐메자마자 몸이 익숙한 듯 시야가 또렷해지고 모든 감각이 더 예민해진다. 냄새가 나는 쪽으로 살금 살금 움직여 다가가는데 다가갈수록 그 냄새는 탄 내가 아니라 고기 냄새다.


‘마을이라도 있는 것인가? ‘


예전에는 깊은 숲 속에서만 움직였다면 이제는 상황파악을 위해 깊은 산중을 벗어나 조금 더 바깥으로 나온 참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아, 제발, 한 점이라도 먹고 싶다.’


나무 뒤쪽으로 몸을 숨기고 정면 쪽을 바라보니 막사 하나가 보인다. 조금 더 고개를 빼고 바라보니 그 뒤로 막사가 수두룩빽빽이다. 이 정도면 규모가 꽤 큰 군대다. 아군이라면 우리는 이제 산 것이고, 적군이라면 우리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왔다갔다 하는 몇 몇이 보이는데 군복이 제대로 보이지를 않는다. 인민군의 군복인지 우리와 같은 군복인지를 한시라도 빨리 파악해야 한다. 모두가 숲에서 그 쪽을 노려보고 있는데 갑자기 모두 한쪽으로 시선이 모인다. 그곳에는 본대 소속인 김상사가 있다.


모두가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김상사가 여기 있다는 건 여기가 본대라는 이야기고, 우리가 그토록 만나길 바라던 본대가 이 곳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모두가 겨누었던 총을 거두고 어깨에 메고는 서로를 바라본다. 서로에 대한 무언의 감사함이 담긴 눈빛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잃어버렸던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렇게 30여일만에 본대로 복귀한다.

소대장이 대대장이 있는 막사로 들어간 지 한참이다. 소대원들은 배정된 막사로 돌아가지 않고 그 막사 앞에서 소대장을 기다리고 있다. 소대장이 나오다가 앞에 모여 있는 그들을 발견하고는 의아한 듯 묻는다.


“아니, 어서 가서 쉬지 않고 다들 여기서 뭐하고 있나? 그동안 정말 수고가 많았다. 너희들과 함께라서 너희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무사히 본대에 합류하라 수 있었다. 모두에게 정말 고맙다.”


소대장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눈을 맞추며


"모두 소대장님이 잘 이끌어주신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소대장님과 부소대장님 덕분에 저희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괜히 뜨거워지는 눈시울과 가슴을 부여잡으며 다함께 “청송” 을 외치며 경례한다.


짧은 두 글자에는 헤아릴 수 없는 무수히 많은 감정과 뜻이 담겨있다. 막사에 들어선 소대원들은 오늘은 경계근무를 서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막사 안에서 잘 수 있다는 생각, 밥과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날아갈 듯 기쁘다.


본대의 총괄 지휘관을 포함한 윗선에서는 해당 소대가 더 위쪽에서 여기까지 내려와 합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해본적도 없었기 때문에 놀랐고, 또 가져온 정보들이 꽤 고급정보라 한번 더 놀란다. 많은 소대원들을 잃었다고 하지만 복귀한 인원이 23명으로 많은 인원이 살아남았다. 강원도에서 적은 인원으로 여기까지 뚫고 내려온 이들은 분명 여기에 있는 몇 몇보다 더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뛰어난 전력을 얻었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도한다. 일단 며칠은 푹 쉬게 두자. 적은 인원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큰 병력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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