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용준의 이야기 #14

할아버지를 그리며

by 오난난

연아를 잘 묻어주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간 세 사람이 할아버지가 깔고 누웠던 얇은 거적으로 할아버지를 감싸 아까 하나 더 파두었던 구덩이로 모셔간다. 그곳에 할아버지를 눕히고는 능숙하게 흙을 덮는다.


파견 나왔던 강원도를 시작으로 얼마나 많은 구덩이를 파고 다시 채웠는가? 앞으로는 제발 이런 일들이 없기를 바라며 정성스레 흙을 덮는다. 연아 옆에는 이제 할아버지가 같이 계시니 밤이 온다하더라도 무섭지 않을 것이다. 충분한 깊이로 파두었으니 들짐승들이 파헤질 염려도 없으리라. 그렇게 흙을 바닥 삼아 또 흙을 이불삼아 할아버지와 손녀가 함께 누워있는 봉긋한 언덕이 나란하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소대원들 몫으로 말려서 싸두었던 물고기 몇 마리를 다시 꺼내 불을 지피고 물고기를 넣어 삶는다. 이제 할머니를 부양하거나 밥을 챙겨 줄 그 누군가도 없으니 몇 끼니라도 드실 수 있게 준비해 놓고 가려는 참이다. 그 집안의 막둥이인 막내는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가 생각난다며 연아의 할머니 옆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할머니 곁에서 고향 이야기, 자신의 가족들 이야기, 첨벙거리며 물고기를 잡았던 시시콜콜한 이야기 등을 쉬지 않고 떠든다. 할머니는 막내를 빤히 쳐다보며 자기 아들 젊었을 적과 닮았다며 쓰다듬는 것이 이미 알던 사이 마냥 죽이 아주 잘 맞는 눈치다.


밖이 어둑해지더니 금새 밤이 온다. 주변을 둘러보고 오겠다던 소대장과 소대원들이 도착했고, 모두 군장을 챙겨 출발 채비를 마쳤다. 용준이 뭐라 말해야 하나 망설이는데 이번에는 부소대장이 나서서 말한다.


“할머니, 연아랑 할아버지는 저기 장에 갔다 온다고 했어요. 보통 장에 갔다오면 얼마나 걸리지유?”


“에잉?? 나한테 말도 없이 장에 갔다는 말이여? 아니 거길 왔다 갔다 하면 못해도 보름은 걸릴텐데 그 양반은 몸도 좋지 않은 양반이 뭘 그렇게 멀리까지 가는게야? 그리고 연아 고년은 왜 나한테 말도 안하고 지 할애비만 졸졸 따라 간 것이야?!! 하여튼간에 맘에 안드는 기지배야.”


핀잔섞인 할머니의 말에

“아니 아까까정 할머니가 계속 주무셨응께 말을 못하고 우리한테 전해달라 하고 갔지라~”

막내가 웃으며 답한다.


“할머니 이제 저희는 가야 합니다. 저 부엌에 연아가 할머니 드시라고 물고기를 삶아 어죽을 만들어놨던데, 그거 드시면서 건강히 잘 계십시오.”


부소대장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뒤에 있던 세 사람도 꾸벅 고개를 숙이는데. 막내가 다가가 할머니를 끌어앉는다. 저 자식은 가끔보면 저 나이가 맞나싶을 정도로 어린네 같다. 할머니는 깜짝 놀라면서도 막내를 마주 안아준다.


“할매, 건강하시오. 우리 갔다가 돌아오는 길목이 겹치면 들러서 할매 얼굴 보고 갈 테니 꼭 건강히 기다리고 계셔야 하오!.”


할머니가 뭐라 뭐라 말하려는데 소대원 중에 한 명이 방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이제는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들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와 함께 힘차게 경례를 올리고는 방에서 나온다. 할머니는 아쉬워하면서도 손을 흔드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이 몹시도 무겁다.


군장을 맨 채 숨을 죽이며 걷기 시작하는데 모든 소대원들은 모두 고향에 계실 어머니와 아버지,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다. 빨갱이 새끼들이 이미 저 북에서 여기 남쪽까지 밀고 내려 왔다고 들은지라 걱정이 태산같다. 북에 계시는 어머니를 포함한 내 가족은 괜찮을거라고 믿는 수 밖에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무거운 마음만큼 무거운 발을 들어 터벅 터벅 발걸음을 옮긴다.


올려다 본 하늘의 달은 전에 본 적 없을 만큼 밝다. 연아의 고운 마음이 쓸쓸한 우리네 마음을 배웅해주는 것인가 싶다. 우리는 또 걷는다. 이 길끝에 무엇이 있을지 얼마나 걸어야 본대를 만날 수 있을지, 가는 길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하고 또 전우를 잃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남쪽으로 향한다. 깊은 숲길을 따라 구비구비 능선을 따라 밤만 되면 움직이는 늑대처럼 그렇게 숲을 걷는다.


만남의 기쁨보다 비극적인 헤어짐이 괴로웠던 용준은 머리도, 마음도 차갑게 변해간다. 이제는 쉽게 정을 주지 않으리라. 따뜻한 사람이기를 포기한 용준은 그 때부터 말주변을 잃었다. 용준을 포함한 모두의 눈은 생기를 잃은 채 슬픔과 피곤이 가득하다. 빌어먹을 전쟁이 과연 끝나기는 할까? 우리는 과연 살아 남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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