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용준의 이야기 #13

할아버지를 그리며

by 오난난

갑자기 피가 또 거꾸로 솟은 서준이 싸리문 안쪽으로 뛰는 듯이 걸어 들어가 가장 앞에 있는 한 사람을 군홧발로 아무렇게나 차 버린다. 그 덕에 앞으로 고꾸라지자 괴성을 지르며 마구 밟아댄다. 부소대장도 용준도 그 마음을 모르지 않아 그저 내버려 둔다. 마음 같아서 아무렇게나 막 쏴 죽이고 싶다. 왜 사람 탈을 쓴 짐승들에게 인간 대우를 해줘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소대장과 몇몇은 인질 하나를 방으로 데려가 인민군에 대한 정보를 캐내는데 여념이 없다. 서로 총을 겨누고 쏴대며 마구 죽이는 와중에 인질들을 붙잡아 그쪽 동태를 살피고 죽이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거의 없어졌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소대장이 방 밖으로 나오며 저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야기하려는데 용준과 서준과 막내가 자기들이 알아서 처리하겠다며 앞으로 나선다.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서는 아직까지 거부감이 많고 괴로워하는 셋이 그러겠다니 그렇게 하라고 말은 했지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나 싶다. 그 대신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한다. 아직은 해가 떠 있는 시각이라 해가 지기 전에만 마무리하라 일러두고 소대장과 소대원 몇몇이 근처를 둘러보러 나선다.


용준은 머리를 더 차갑게 하려고 한다. 어차피 연아는 죽었고, 연아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살아계신다. 일단은 연아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두 어르신께서 계속 연아를 기다리지 않도록 연아에 대한 설명도 해 드려야 한다. 저 치들을 고통스럽게 죽이는 건 가장 나중의 일이다. 싸리문 밖을 나가 수풀 앞에 다다르니 연아가 여전히 그곳에 누워 있다. 금방이라도 ' 아재요, 왜 이렇게 늦게 왔소?' 하며 어망을 걷고 일어나 생긋 웃을 것만 같다. 방금 있었던 모든 일이 그저 꿈같이 느껴져서 현실 감각이 없다. 옆에 선 서준과 막내의 표정도 별다르지 않다. 딱딱하게 굳어 정면을 응시하고 있을 뿐 슬픈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그들 또한 용준처럼 믿기지 않는 것일 테다. 방금 전까지 물장구치며 같이 물고기를 잡았고, 부소대장이 갑자기 나타나 다 같이 혼비백산했다. 어찌어찌 연아네 집까지 같이 와서 집을 살펴보고는 아무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고 안도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었다.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겠지라는 희망으로, 그 언젠가가 곧 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이렇게 빨리 만나기를 원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부들거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연아 위에 덮어져 있는 어망을 걷어냈다. 연아의 얼굴이 새하얗다. 발갛던 볼과 복숭아꽃 빛깔이었던 입술은 색을 잃었고, 금방이라도 깜빡일 것 같은 큰 눈은 무겁게 닫힌 지 오래다. 어망을 옆에 깔아 연아를 안아 어망 위에 올리고 앞과 양쪽에서 어망을 잡은 채 양지바른 언덕으로 향한다. 구덩이를 하도 자주 파다 보니 이제 구덩이 파는 것쯤은 일도 아니어서 어느새 땅 밑으로 충분한 공간이 생겼다. 어망을 둘둘 말아 연아를 감싸고 안아 들어 땅 속에 눕힌다. 그 위로 흙을 덮기 시작하는데 막내가 참지 못하고 오열한다.


“연아야, 이 어린것아, 오라비라는 사람이 지켜주지도 못하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직 나보다도 한참 어린것이 어찌 이리 허망하게 가느냐…. 미안하다…. 흐으윽….”


용준과 서준의 어깨도 심하게 떨리고 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퍼내었던 흙들을 다시 연아 위로 덮는다.


‘연아야, 이것아, 거기서는 행복해라. 가서 또래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어머니 아버지도 만나서 재미있게 지내라.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도 많이 해보고, 아답게 그렇게 지내라.’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목이 메어 눈앞이 뿌옇다. 차라리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연아 네가 이렇게 가지 않았을까? 그러면 너는 살아 있었을까? 잠시라도 우리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주었던 마른땅에 단비 같았던 아이. 연아야. 우리는 너 덕분에 웃었고, 잠시 쉬었고, 너의 해사한 웃음에 위로받았다. 너의 조잘대던 목소리 속에서 방싯방싯 웃는 얼굴에서 갚지도 못할 만큼의 은혜와 위로를 받았다.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너의 심성이라면 절대 우리를 원망하지 않겠지만 오라비고 아재인 우리가 너를 지켜주지 못해, 네가 이렇게 허망하게 가도록 두어 너무 원통하고 미안하다. 도저히 이 침통한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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