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용준의 이야기 #12

할아버지를 그리며

by 오난난

약 효과 때문인지 내가 진짜 기력이 쇠한 것인지 애써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계속해서 잠이 온다. 용준은 또 까무룩 잠이 든다. 감았던 눈을 다시 뜨니 용준은 다시 그날의 숲 속이다.




수풀 사이로 자세히 살펴보니 인민국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총 3명이다. 그들은 싸리문 안쪽까지 들어가 방안을 들여다보고 누워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몸을 총끝으로 툭툭 쳐대기까지 한다.


“저런 육실할 놈들, 저것들은 언제까지 지켜봐야 한단 말이오. 내가 가서 쏴 죽이 던 지 해야겠습니다. 내가 도저히 저런 놈들을 더 이상 못 봐주겠습니다. 부소대장님.”


우는 것인지 화내는 것인지 모를 이상한 얼굴로 용준이 말한다.


“조금만 기다려라, 총으로 쏴 죽이는 건 우리한테 위험이 너무 커서 안된다. 지금 나머지 소대원들이 여기로 오고 있을 테니 머릿 수로 제압 후 인질로 삼는다. 지금 우리는 밖에 상황을 전혀 모르지 않네? 상황을 알아내고 죽여도 늦지 않으니 침착해라 오상병.”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며 참는데,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손바닥에 피가 비친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듯 소대원들을 기다리는데 적군은 그저 민간인밖에 없다고 생각했는지 마음을 놓고 마루에 드러눕는 이가 둘이고, 나머지 하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이것저것 뒤지는 눈치다. 무장하지도 않은 힘없는 민간인을 죽이고, 또 그들을 아무렇지 않게 약탈하고 어찌 같은 민족이 이런 식으로 행동할 수 있단 말인가…


용준은 생각하면 할수록 치가 떨리고 이가 다 갈린다. 허겁지겁 뛰어오는 막내가 뒤로 고개를 내미는 소대장이 보이고 그 뒤를 따르는 전 소대원들이 보인다. 부소대장이 소대장에게 다가가 간략하게 상황을 전하자 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시한다.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전 소대원들이 집을 에워싸며 포위망을 좁혀간다. 적군들이 전혀 경계심이 없었던 탓에 눈 깜짝할 새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마루에 누워있던 놈들은 잠까지 들었던 모양인지 잠이 덜 깨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눈치이고, 부엌에 있던 놈은 사색이 된 얼굴로 부소대장의 총구에 이끌려 무릎이 꿇려진 상태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막내가 튀어나가서는 한 놈의 얼굴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내리친다.


“ 어떤 새끼가 저 힘없는 어린네를 죽였어?!! 너냐?? 어떤 새끼냐??!! 어?!!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 어떤 새끼냐고!!”


큰소리를 내는 막내 입을 서준이 다급하게 막으며 말한다.


“막내야 이리 와라 일단 우리 연아부터 어디 다른 데에 잘 눕혀놔야 되지 않간?”


막내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연아가 누워 있을 싸리문 밖을 바라본다. 초롱꽃 같이 고운 연아가 저 차디찬 땅에 누워 있는데 셋에게 아무리 물어도 연아를 죽였다는 사람들이 없다.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는데, 방 안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힘들어 보이는 노인이 힘겹게 몸을 세워 일으키는 것이 보인다. 연아의 할머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오? 갑자기 뭐 이렇게 군인들이 많은 게야? 아, 그리고 연아는 어딜 간 게야? 연아야, 연아야 니 어디 있니? 이 계집애가 또 어디를 쏘지르러 나갔구먼, 하여간 조신하지 못한 년이여. 어딜 이렇게 싸돌아 다니는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혀를 쯧쯧차는 할머니에게 그 누구도 무거운 진실을 전할 수가 없다.


“아니, 또 우리 영감은 어디로 갔소? 이렇게 집이 시끄러운데 코빼기도 안 보이고 어디서 뭘 하고 있는가?”


툇마루에 누워 있는 할배는 할머니보다 더 기운이 없는 것인지 일어날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소란스러운데도 고개 한번 까닥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한 소대원이 할아버지 쪽으로 다가가는데 얼굴을 확인하고는 흠칫 놀란다. 코에 손을 대어보니 날숨도 들숨도 느껴지지 않는다. 모두가 놀라 그 소대원을 쳐다보는데 눈을 마주친 그가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가슴께가 답답하다. 차오르는 감정 때문에 가슴이 터질 듯하고 잠시 진정했던 마음이 다시 들썩들썩 움직이며 분노가 차오른다. 무릎 꿇려진 세 사람도 그 사실은 몰랐는지 아연실색한 얼굴이다.


용준은 도저히 마음이 누그러지지가 않는다. 저 치들을 어떻게 하면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을까? 셋 다 아니라고 하니 셋 다 죽이면 되겠구나. 괴성을 지르며 허리춤에 있는 칼을 빼드는 용준과 서준을 소대원들이 달려들어 저지하고, 싸리문 밖으로 끌고 나간다. 그곳에는 누군가 연아가 손수 만들었던 어망을 연아 위에 덮어 두었다. 어린것이 무슨 피를 그리 많이 흘렸는지, 철 냄새가 가득하여 숨을 쉴 때마다 가뜩이나 마른 입안이 더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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