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를 그리며
처음 병원에 왔을 때 보다는 조금 더 심해진 통증이지만, 병원에 오기 전 통증에 비하면 지금 느껴지는 통증은 간지러울 정도다. 한참을 뒤척이던 용준은 다시 잠을 청해보는데 간호사가 들어와 싱긋 웃으며 눈인사를 한다. 눈을 꿈뻑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 한 용준은 어느새 스르르 깊은 잠에 빠져든다. 대근이 눈을 뜨며 부스스 일어난다.
형제들과 교대로 아버지의 병석을 지키느라 병원으로 퇴근하며 비좁은 간이 침대에서 잠을 청하곤 한다. 몸을 일으키는 대근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기지개를 피며 몸을 일으켜 간단히 세면을 하고 출근할 준비를 하는데 어느 새 아버지가 몸을 일으켜 앉아계신다. 식사가 도착하여 식사를 준비해 드리는데, 아버지는 한 술만 뜨고 다시 수저를 내려놓는다.
“아버지, 식사를 좀 하셔야죠. 그렇게 계속 식사를 안하시면 큰일나요. 조금이라도 더 드셔보세요..”
대근의 말에도 고개를 젓는 아버지는 수저를 다시 들 기미가 없어 보인다. 용준의 입에는 밥알 한 알 한 알이 꼭 모래알 같다. 텁텁하고 파삭파삭하여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이 영 편안치가 않다. 사실 용준은 거의 허기를 느끼지 못한지 오래다. 허기를 느끼지 못한다기 보다는 더 큰 고통으로 인해 다른 감각들이 무뎌졌기 때문이리라. 크게 배가 고프다는 느낌도 무언가 먹고 싶다는 느낌도 딱히 들지 않는다. 고통속에 있을 때는 하루 하루가 더디게 갔는데, 고통이 사그라든 요즘은 유난히도 해가 빨리 지고 빨리 뜬다. 갑자기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옷을 갈아입고 온 대근이 다녀오겠다며 병실을 나선다. 잘 다녀오라고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배웅한다. 조금 있으니 작은 며느리가 병실로 들어온다. 피곤한 표정에 마음이 좋지 않은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는다.
“ 아버님 어젯밤에는 잘 주무셨어요? 불편하신 데는 없었구요?”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이라 괜히 미안한 마음에 “에잉, 괜찮아”라고 짧게 답한다.
간호사들이 가슴팍에 조그마한 파스 같은 것들을 몇 개 붙여 주었는데, 그 이후로 이상하게 몽롱하거나 기분이 좋을 때가 많다. 가끔 멍해지기도 하는데 조금 들뜨기도 하면서 편안하기도 하고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분으로 지내고 있다. 그런 와중에 오마니 생각도 많이 나고, 고향 땅도 그립고, 옛날 일들이 자꾸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예전 이산가족 상봉 때 평양에 가서 만나고 왔던 누님과 형님도 생각이 난다. 이북에 계신 누님들은 잘 계시려나? 아직 살아는 계시려나? 허긴 내가 올 해로 아흔 살인데 누님들은 벌써 저 하늘나라에 가 계시겠지 싶다. 나도 곧 하늘 나라 가면 우리 오마니 아버지랑 누님을 만날 수 있으려나 싶다. 집에 있을 그이도 생각이 난다. 옆에 있으면 있는 잔소리 없는 잔소리에, 소리를 빽빽 질러대는데도 옆에 없으면 허전하고 궁금하고 하니 이래서 부부는 부부인가 보다 싶다. 오늘도 오려나? 오겠지? 기다려진다. 혹시라도 내 걱정에 많이 신경써서 또 아플까도 염려스럽다. 젊었을 적부터 나 때문에 고생만 직싸게 한 그이라 이제는 나보다 건강하게 아프지 말고 더 오래 살아야 하는데. 내가 병원에 와있으니 또 얼마나 많은 걱정을 하고 있으려나 마음이 무겁다. 내가 아프다 아프다 할 때마다 지겨우니 그 아프단 소리 좀 안할 수 없냐며 핀잔을 주고 소리를 지르다가도, 막걸리만 넘어간다는 나를 위해 그렇게 더운 날씨에도 일부러 나가서 막걸리를 이고지고 사오는 사람이다. 어떻게든, 그게 뭐든 나를 먹여보려고 안달이 나서 나를 그렇게 볶아대던 사람인데 지금은 무슨 낙으로 지내고 있으려나 싶다. 아니면 볶아댈 사람이 없으니 속편하다 라고 생각하고 있으려나?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니 모르겠지만 아마 그게 무슨 걱정이든 태산같이 걱정하고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