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선물
누구나 사람은 본인의 쓸모를 다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본인의 할 일이나 그 역할이 사라지면 삶에 생기가 사라진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회생활을 유지하시는 분들이 연세에 비해 훨씬 더 젊고 정정하시다. 필요에 의해 자기 관리를 하고 사회 활동을 이어가기 때문에 사회에서 도태된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당연히 일이나 자기 계발을 하시지 않는 분들에 비해 훨씬 더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다. 비단 직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만으로도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끼고 본인이 여전히 쓸모 있다고 느낀다.
살아생전 할머니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성당을 다녀오셨다. 정정하실 때는 평일 저녁 미사도 참석하셨는데,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부터는 오전에 미사가 있는 날만 성당에 다녀오시곤 했다. 내 걸음으로는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가 두 분의 걸음으로는 30분 정도가 걸리는 길이었으니 본의 아니게 두 분이 매일 믿음 생활과 운동을 함께 하신 격이다.
9년 전 우리 집에 오신 두 분은 이 동네가 꽤 낯설으셨을 거다. 이 동네에는 함께 어울리며 담소를 나누던 친구분들도 안 계시고, 두 분이 사시던 동네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서 소일거리를 하실 만한 공간도 없었다. 참으로 무료한 나날이 었겠지. 어느 날부터인가 두 분은 성당 껌딱지(?)가 되셨다.
할아버지는 미사 참석 및 성가대 활동에 열심이셨고, 할머니는 성경대학에 열심히 다니셨다. 그 덕에 우리 집 부엌 창문에서는 산책길을 따라 성당으로 향하는 흰머리 소년과 소녀를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성당의 어르신 성경대학을 등록하시고, 할아버지가 어르신 성가대원으로 활동하셨던 이유도 본인의 쓸모와 소속감, 더 나아가 사람들과의 교류를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컨디션이 아주 좋지 않은 날을 제외하고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매일 성당에 가시는 두 분을 보며 그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제는 그 마음을 좀 알 것 같다. 매일 미사에 가시는 것은 믿음에서 비롯되었겠지만, 성당의 여러 가지 모임이나 활동에 참여하셨던 이유는 삶의 무료함을 달래고 본인의 쓸모와 역할을 찾기 위함이셨으리라.
할아버지의 가정 내 역할은 분리수거가였다. 할아버지는 매주 한 번만 가능한 분리수거에 진심이셨는데 월, 화만 내놓아야 하는 재활용품들을 틈만 나면 정리하여 일요일부터 밖에다 내놓으셨다. 음식점을 하는 큰 고모댁에 쇼핑백을 가져다주겠다며 분리수거장에서 여러 장 주워오시기도 했다. 분리수거는 요일을 지켜서 내놔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쇼핑백을 주워오시지 말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어서 포기했다. 그러나 병세가 악화된 후에는 그 역할뿐만 아니라 병원에 누워계시는 것 말고는 하실 수 있는 일이 없으셨다.
할머니는 식사를 안 하신다는 할아버지에게 잔소리 폭격을 해가며 밥을 챙기시는 일에 사활을 거셨다. 할머니의 가정 내 임무는 할아버지 식사 챙기기였던 것이다. 지겹다, 지겹다 하시면서도 한 끼를 그냥 허투루 보내시는 법이 없으셨다. 할아버지는 안 먹는다고 소리를 지르셨고, 할머니는 밥을 왜 안 먹느냐며 먹으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결국 승자는 할머니셨고 할아버지는 마지못해 식탁에 앉으셔서 밥을 한 두 숟갈 뜨시곤 했다.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셔서 식사를 하시기 어려워 지기 전까지만 해도 끼니때마다 두 분의 락 콘서트가 열렸다. 할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면서부터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애가 타 하셨다. 소주 없이 못 사는 할아버지를 위해 부지런히 소주를 사다 나르셨고, 그마저도 드시지 못했을 때는 막걸리를 사다 나르셨다. 2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본인의 끼니조차 스스로 챙기지 못하게 되셨다.
아마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본인이 해야 할 일이 사라졌다고 느끼셨으리라 짐작한다. 자꾸 아파오는 무릎에 같이 갈 동료도 없이 혼자서 성당을 다니시는 일도 더 이상 기껍지 않으셨으리라. 끼니에 목숨을 걸던 할머니가 끼니조차 잘 챙기려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급속도로 할머니 하루하루 말라가셨고 쇠약해지셨다. 그렇게 1년이 조금 지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가셨던 같은 계절에 할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할아버지는 하고자 하는 일을 끝까지 하려 하셨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할 수 없게 되셨고, 할머니는 해야 하는 일이 사라지니 일상적이 생활마저 혼자서는 할 수 없게 되셨다.
나는 지금도 두 분이 성당을 가시던 모습과 투닥거리시던 모습이 쉽게 눈에 선하다. 장난스러운 할아버지의 말투와 신경질적이지만 애정이 묻은 할머니의 음성도 또렷이 기억한다. 생기와 기운이 넘치던 두 분의 모습들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러나 그 모습들은 이제 나의 기억 속에 있을 뿐이다.
오늘 아침 눈을 뜰 수 있는 것, 눈을 떠서 갈 곳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큰 축복이다. 일상에 치여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그 감사함을 잊고 살아가겠지만, 그 일상들이 하루아침에도 잃을 수 있는 소중한 순간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당연하다 생각하는 그 모든 일들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님을 가슴 깊이 새기자.
나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침,
나에게 주어지는 감사한 오늘.
나 스스로가 바라보는 '나'가
쓸모가 있든 없든
'삶'이라는 그 자체가 큰 축복이고 선물이다.
오늘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오늘이라고 해서
나의 것이 아닙니다.
어제 죽은 이들의 고귀한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또 나누어야 합니다.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