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세 글자에 담긴 무게와 의미
'마지막'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나에게 서글프고 아플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지막 기회, 마지막 승부 등 언뜻 비장하게 쓰이기도 하는 그 명사가 저에게는 왜 이다지도 슬프게 다가올까요.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듯 그 끝과 같은 '마지막'이라는 세 글자일 뿐인데 저에게는 참 아프기만 합니다. '마지막 잎새'의 담긴 그 의미처럼 애처롭고 애틋하고 안타깝습니다. 어떻게든 그 잎이 나무에 붙어 있으려 할리 만무함에도 그저 오래도록 붙어있길 바라는 것은 그저 인간의 욕심일 겁니다. 오갈 데 없이 휘청거리는 이 마음은 저 잎새가 떨어지면 내 삶의 마지막이겠구나 생각했던 주인공의 마음과 비슷한 것도 같습니다. 그 책에서는 똑같이 생긴 액자를 그려 넣어 시간을 멈추기라도 했습니다만, 사람이 시간을 멈출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사실상 그 잎은 이미 이 세상에 서 사라지고 없었으니 말입니다.
'끝'은 정말 어찌할 수 없는 결론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마지막' 그 세 글자는 끝을 내야 하지만 진정 끝을 내고 싶지 않아 머무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느낌 또한 모두 저의 착각일까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이렇게 정말 마지막이라고 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이렇게 마지막을 맞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안타까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왜 마지막이 올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원망스러우면서도 그 마지막을 원하고 내뱉는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두 번의 헤어짐이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만 그 헤어짐을 굳세게 지켜가며 살아야 할 제 자신이 가엾습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향하는 우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마지막 길목에 서서 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이겠지요. 굳이 누구를 위한 일이라고 묻자면 저를 위한 일입니다.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 것인지요? 그 무엇이 그토록 원통하여 마를 새 없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란 말입니까. 오늘은 도저히 마음을 잡을 길이 없어 황망한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주저리 쏟아내고 있는 중입니다. 긴긴밤 오늘은 또 어떻게 잠들어야 할까요. 이 눈물이 마르기는 할까요. 언제쯤 이 마지막 앞에서 초연해질 수 있을까요. 그래, 그랬었지. 그때는 그랬었어하며 아련하게 추억하는 날이 오기는 올까요?
지난달, 스무 살이었던 나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럴 수 있어, 내 미래는 아직 창창해."
이게 제 대답이었습니다.
나약 하디 나약한 지금 제 자신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이 오늘은 고작 저 한마디입니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온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제 자신에게 선뜻 어떤 위로도 건넬 수 없어 조심스레 속으로 되뇝니다.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아파도 된다. 충분히 아프고 나서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보자. 그럴 수 있다. 오래 걸려도 괜찮으니 마지막을 너무 슬프게 기억하지 않기를, 마지막이라는 말에 두 번은 무너지지 않기를.
마지막 잎새가 떨어진 그 자리가 허하고 덧없을지라도, 다음 해가 되면 나무 가지 사이를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채워내 자라날 잎들을 다시 보게 될 터이니 조금만 더 힘내 주기를. 그저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