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다짐, 어려운 실천

가장 중요한 것

by 오난난


작년 초까지만 해도 나는 참 삶이 고되구나, 덧없구나 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회사 일에 집안일에 할머니 케어에 힘들었다.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왔고 무기력했다. 그냥 흘러가는 삶을 살았다. 나는 그저 이 집안의 나이는 좀 많은 둘째 딸이자, 손녀이지만 꽤 많은 집안일을 해야 하고, 아프신 할머니를 케어해야 한다는 상황이 싫은 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놓여있고 내가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살았다. 당연하다기보다는 뿔따꾸나는 일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같은 해 2월 말, 코로나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유럽 바이어가 주 고객인 회사가 어려움을 겪으며 재택과 단축근무를 병행했고 그 여파로 감봉도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과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그뿐이었고, 생산적이지 않은 날들이었다. 그저 그런 게으른 날들을 보내다가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고(?) 끊임없이 나를 일깨우는 언니 덕에 정신을 부여잡고 뭐라도 하자고 마음먹었다. 언니는 결혼 후 각자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우리 세 자매를 위해 무언가를 하자고 했다. 다들 마음이 어느 정도 맞아서 세 자매가 함께 습관 만들기 프로젝트와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나는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했고 쓰지 않았던 글도 다시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1일 1포를 시작했고, 월급 외 부수입을 창출하기 위한 길을 찾기 시작했다. 무심코 가본 집 앞 스터디 카페의 매력에 빠져 정기권을 결제하고 거의 내 전용 사무실로 쓰며 매일 드나들었다. 내 시간을 내가 스스로 계획해서 쓰고,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기쁨과 그런 일들로 인한 보람이 감봉이라는 단어에 얽매이거나 연연하지 않게 도와주었다. 마침내 내가 제대로 내 삶을 사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11월부터는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날이 많아졌다. 1일 1포스팅을 해야 하니 출근 전 스터디 카페로 먼저 출근하거나, 할 일을 끝내지 못한 날은 퇴근 후 다시 스터디 카페로 출근했다. 집에 들어오면 9시에서 10시 사이였고 습관 인증 업로드와, 책을 낭독해서 올려야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늦은 밤 지쳐 잠드니, 집안일을 하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날들이 올해까지 비슷하게 이어졌다. 열심히 사는 건 좋았는데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서 새로운 해가 시작됨과 동시에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자고 다짐했다.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기를 2021년 목표 중 하나로 설정했다. 그렇지만 바쁜 일정에 치여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했다. 일찍 퇴근해서 하던 집안일에는 거의 손도 대지 못했고, 할 수 있는 일은 늦은 저녁 소량 빨래나 일주일에 하루 분리수거 정도였다. 온 가족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밥 먹는 시간도 토요일 아침과 일요일 아침 식사, 딱 두 번이었다. 주말에도 이것저것 알아보느라 나가기 바빴다. 더 중요한 것을 먼저 하자는 마음, 우선순위부터 해결하자는 마음에 다른 일들은 뒤로 밀렸는데, 밀리는 것들 중에 하나가 가족이라는 것이 계속 마음이 쓰였다. 특히나 점점 더 연로해지시고 상태가 나빠지시는 할머니를 볼 때면 더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일은 해야 하니 집에 들어가면 할머니께 인사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채 5분이 되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할머니, 잘 계셨어요?
오늘은 누가 왔다 갔어요?

기분이 좋고 몸 상태가 좋은 날은 웃으면서 "어서 오세요, 잘 왔어요" 방긋 웃으며 인사하신다.

몸이 많이 아프신 날은 "그래, 왔냐? 오냐?"가 끝이거나, 그냥 쳐다보고 고개만 끄덕끄덕 하실 때도 있다.

저녁은 잡수셨어요?


컨디션이 좋은 날은 "응, 나는 먹었으니 어서 챙겨 먹어라"하시고,

컨디션이 나쁜 날은 "몰러~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하시거나 드셔 놓고도 안 드셨다고 하신다.

그런 날은 누가 왔다 갔는지, 몸은 어떤지에 대한 대답도 다 하나로 통일된다. " 몰러~~~ "


늦게 집에 들어오시는 아빠나 엄마하고의 대화 시간도 얼마 되지 않는다. 다녀오셨어요 인사 후 방에서 자기 바빴는데 요즘에는 잠깐이라도 부엌 식탁에 앉아 간단히 과일을 먹으며 짧은 대화를 나눈다. 사실 그것도 며칠 되지는 않았다. 부쩍 나이가 들어가는 엄마, 아빠는 여기저기 아프신 곳이 늘어가고 흰머리도 점점 늘어간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업과 일에 환갑이 훨씬 넘은 아빠는 골치가 썩고, 환갑을 바라보는 엄마는 아픈 곳이 많아 항상 지쳐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는 동생이 공부하고 수업을 들으면서 집안일과 할머니 케어에 많은 힘을 쏟는다. 나보다는 한참 어린 동생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 있는 나는 나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좋은 몫인지를 생각하느라, 해야 하는 일 외에도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고,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어서 지금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다. 아침에 출근할 때는 항상 다짐한다. 오늘은 퇴근하고 집에 가면 할머니랑 이야기도 좀 나누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고 해야지. 엄마랑 아빠가 오면 방에서 나가서 이야기 좀 나누다가 잠들어야지.


그런데도 여전히 집에 도착하면 씻고 밥 먹고 눕기가 바쁘다. 일단 방에서 나가려고 노력을 해야겠다. 조금 늦게 자면 어때 하는 마음으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있을 때 잘하자 라는 말을 얼마나 되뇌었던가. 똑같은 후회는 하지 말자. 계속 다짐하고, 환기하고.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내가 되어야지.

있을 때 잘하자!!
매일 매일 새롭게 다짐하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도담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