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3
남편 이야기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내게는 '남편과 나의 차이'를 여실히 깨닫게 해 준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는 일이다.
작년 가을이었다.
날은 좋은데 코로나인지 메로나인지 때문에 아이들과 집에서 씨름해야 했던 나는 바깥공기를 마시며 편히 놀 수 있는 공간이 그리웠다. 나무도 있고 물도 있고 아이들은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그러면서도 내가 쫓아다니지 않고도 아이들 보기 쉬운 그런 안전한 공간. 그때 딱 떠오른 것이 남이섬이었다. 넓은 섬에 다 같이 갇힐 수 있는 데다가 나무도 있고 물도 있고 잘 곳마저 있으니 매우 매우 마땅했다.
생각난 김에 바로 정관루 예약 버튼을 누르고, 여행 가방 하나를 꺼내어 아이들 옷가지 몇 벌과 내 속옷을 챙겨 넣었다. 남편은 생업에 종사시키고(?) 휴직 중인 나만 아이 둘과 1박 2일 여행을 간다니 두렵고도 떨렸다. 왠지 셋의 여행을 생각하니 설레고 행복하기도 했다.
다음날. 남편이 사 준 호두과자 한 봉지는 한 손에 들고, 커다란 여행 가방 하나는 한 손으로 끌고, 선로에 들어서는 ITX-청춘열차 앞에서 남편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아이들과 나는 손 흔드는 남편을 뒤로하고 열차에 올라탔다. 마스크 속 남편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는 것을 느꼈지만 기분 탓이었겠지?
2층에 앉아야 한다는 아드님들 덕분에 여행 가방을 들고 따라 올라갔다. 다리를 덜렁거리며 곁눈으로 창밖을 보던 아이들은 신발을 벗어던졌다. 아예 의자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본격적으로 창밖을 보기로 결심한 듯했다. 2층 창으로 보이는 범벅이 된 풍경이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창문에 이마와 코를 동시에 대고 바짝 붙어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속도감이 느껴지는 창밖에 번갈아 시선을 옮기며 '아이들의 즐거운 뒤통수를 보는 것은 여행의 묘미이자 행복이구나'하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좀 있으니 점퍼를 벗었고 잠시 뒤에는 양말까지 훌렁 벗었다. 출출했는지 준이 민이는 호두과자 포장지를 까서 하나씩 마스크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자기 주먹만 한 호두과자를 한입에 밀어 넣고는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우물우물 씹는데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집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에 여유가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가평, 가평역에 도착하겠습니다."
뭔가 느낌이 쎼~했다. 남이섬은 춘천역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남이섬은 춘천 닭갈비랑 짝 아니야? 남이섬 올 때마다 닭갈비 먹었는데? 춘천역에서 내려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왜지? 왜 머릿속에서 '가평'하니까 '자라섬', '남이섬'이 함께 떠오르지? 춘천? 가평? 가평역... 가평역... 앗! 남이섬은 가평역에서 내려야 했어.
헉! 가평역에서 우리는 내려야 하는 거다!
나는 아이들에게 다급히 외쳤다.
"준아, 민아. 얼른 신발 신어. 우리 내려야 돼!"
으아... 자차로 이동했던 기억만 또렷했던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세상의 모든 허둥지둥을 모아 우당탕탕 열차 계단을 내려왔다. 소지품이 든 가방과 여행 가방, 아이들 점퍼를 손에 다 쥐고 새끼손가락과 약지로 양말들까지 훑어서 손가락 사이사이에 최대한 끼워 넣었다. 가방은 들지도 못하고 거의 굴리다시피 한 것 같다. 내려야 된다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먼저 뛰어 내려가는 나를 보고 아이들은 혼비백산해서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뒤따라왔다. 나는 곤히 자는 아이들에게 '불이야'를 외친 사람이 된 기분이었지만, 거기에 재촉을 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열차가 멈춰 섰고 문이 열렸다.
"준아 민아 내려야 돼. 얼른 와"
"엄마! 엄마!" 하면서 계단을 내려오는 아이들, 한 발만 내리고 문틈에 서서 "여기, 여기!" 손짓하는 나.
신발을 제대로 신지도 못한 채 구겨 신고 달려오는 준이. 그 뒤에 토끼눈을 하고 따라오는 민이.
아이들이 다가와 곧 내 손에 닿을 듯한 거리가 되자 나는 남은 발 하나도 마저 열차 밖으로 옮기며 여행 가방을 내렸다.
앗! 그런데 그때 갑자기 문이 닫혔다.
'안 돼!'
나는 열차 안을 돌아보았다. 아이들이 보였다.
'으악! 안 돼 * 100'
하는데 내 가방이 끼여서인지 문이 다시 열리고 있었다. 나는 몸을 날려 잠깐 열렸다 닫히는 문을 통해 열차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그러나 열차와 승강장 사이에 바퀴가 낀 여행 가방까지는 완전히 데리고 들어오지 못했다. 열린 문틈이 좁아지자 나는 나의 손목이 다칠까 봐 두려워 여행 가방의 손잡이를 놓아버렸다.
'가방이야 찾으러 돌아오면 있겠지. 가방 안에 든 거라고는 애들 옷밖에 없는데, 뭐. 돌아왔는데 혹시 없으면 옷이야 사면 되지. 살 데 없으면 그냥 이틀 입고...'
잠시였지만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정신 차리고 아이들을 돌아봤다. 너무 다행이었다. 일단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첫째는 얼굴이 하얬고, 둘째 민이는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린 채 '으엥'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내 맘처럼 바빠서 신발 하나는 포기했는지 민이는 한쪽 발이 양말 바람이었다. 미안함과 안도감에 아이들을 얼싸안았다. 못 내려서 어떡하냐는 준이의 물음에 '다음 정거장에서 택시 타고 돌아오자.' 하며 토닥였다.
이때 옆에 앉아 나의 쇼를 보고 계시던 쉰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아무 말 없이 (나는 정체를 모르는) 버튼을 누르셨다. 그러자 스르르 문이 열렸다. 나는
"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계단 아래에 나뒹구는 민이 신발 한 짝을 챙겨 아이들과 내렸고, 그렇게 내 손목을 위해 포기했던 가방과 다시 상봉했다.
지옥에서 막 빠져나온 나는 다리가 탁 풀렸다. 방금 내게 펼쳐진 아찔했던 순간이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재생됐다. '나는 대체 왜 이리 준비성이 없는 걸까? 애들까지 데리고 정확히 확인도 안 하다니, 애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아이들끼리 열차를 더 타고 갔으면 어쩔 뻔했어? 어디서 어떻게 아이들을 만날 수 있냐고?'
꼼꼼한 남편 생각이 간절했다. 아이들을 앞세워 짐을 들고 걸으면서 눈물이 흘렀다. 아이들과 벤치에 앉아서 숨을 돌리는데 내 눈물을 눈치챈 첫째 준이가 물었다.
"엄마 많이 놀랐어?"
"응. 미안해. 너희도 많이 놀랐지? 엄마가 아직도 너무 무서워. 너희랑 떨어지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웠어."
"엄마, 우리 놓고 가면 어떡해?!!!"
둘째 민이가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못 내려도 손 잡고 갔어야 하는데 그렇지? 엄마 마음이 급해서 정신이 없었나 봐."
나는 남편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엄마 잠깐 아빠한테 전화할게."
'울남편'을 누르고 전화기를 귀에 대는 손이 그때까지도 덜덜 떨렸다.
"어, 여보."
남편 목소리였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방금 상영을 마친 (물론 나 혼자 대본 쓰고 출연까지... 온전히 자체 제작한) 끔찍한 호러 영화의 줄거리를 쏟아냈다. 너무 놀랐고 무서웠다는 후기와 함께.
"....... 문이 열려서 아이들이랑 만났거든. 가평역에서 우리 셋이 못 내릴 뻔한 거야. 그런데 옆에 도우미 같은 사람이 있어서 나를 도와줬어."
잠자코 듣고 있던 남편이 내 말소리를 끊고 끼어들었다.
"도우미가 아닐 거야."
"응?"
"열차 안에는 도우미가 없어. 그 사람 도우미 아니라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뭐? 얼척이 없었다. 지금 그분이 도우미인지 아닌지 그게 중요하냐? 나를 도와줬고 내가 도움받았으면 그게 도우미지 누가 도우미야?
"됐어! 괜히 전화했어! 여보는 지금 내가 도우미인지 아닌지 물어본 거 같아?"
"아니, 가르쳐 주는데 왜 화를 내?"
"됐어. 끊어!"
나는 전화를 끊었다. 후. 왜 그렇게 화가 나던지 약이 오르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옆에서 준이가 물었다.
"엄마, 왜 그래? 아빠가 뭐라고 했어?"
"아니, 아빠가 엄마를 도와준 사람한테 도우미가 아니래."
준이에게 말로 설명하려니 내가 (그건 화날 일이라는) 설득력을 잃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나는 그날 무척이나 서운했고, 속으로 '목석같으니라고. 피도 눈물도 없지.'를 열한 번 정도 되뇌었던 듯하다.
"여보, 아이들은 괜찮아? 아이들도 놀랐겠다." 정도만 했어도 70점.
"여보, 당신 정말 놀랐겠다. 지금은 괜찮아? 별일 없으니 다행이야. 괜찮아." 했다면 80점.
"여보, 괜찮아? 내가 당장 가고 싶다. 여보 이럴 때 안아줘야 하는데, 얼마나 놀랐을까?" 했다면 90점.
내 마음속 모범답안을 슬그머니 공개해 본다. 두구두구
"여보,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 만들어주려고 애쓰고 있는데 정말 놀랐겠다. 아이들 놀라게 했을까 봐 미안하고 더 속상했지? 여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아. 잘하고 있고 잘할 거야. 당신은 여전히 좋은 엄마고 좋은 아내야." 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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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남편은 정말 어리둥절했을 수 있다. 가르쳐 주는데 열을 내며 전화를 끊어버린 내가.
열흘 간 여행을 간다면 그 열흘 중 십 분만 쓸 물건이라도 꼼꼼하게 챙기는 사람이니, 내릴 역조차 모르고 허둥지둥하는 내가 정말 걱정되었을 것이다. 연애할 때 내가 그의 이름 앞에 늘 붙였던 수식어 '다정한'. 다정한 그는 아이들 걱정도 몹시 했을 것이다.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있어도 내 마음이 상할까 봐 일부러 안 꺼낼 속 깊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 상황에서 나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을 것이고, 그 도움으로 선택한 것이 나에게 '명확함'을 주는 것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분은 도우미가 아니야. 당신이 다음번에도 도우미가 도와줄 거라 생각할까 봐 걱정돼.' 그런 생각이 전달되는 것도 같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그는 내 말소리의 크기와 말의 빠르기로 보아 내가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는지 알았을 것이다. 이제 생각하면 그때 자신이 줄 수 있는 최대치를 준 거 같다. 이제 또 생각하니 그는 나의 실수를 탓하거나 비난하지도 않았다. 고맙다..........
그...그래도 남편의 언어를 이렇게 내 언어로 번역하는 통역사 짓이 지칠 때는 정말 밉다고! 미워!!!
휴우. 그때 전화를 끊어버린 나는 남편에게 몇 점이었을까?(또 졌네, 또 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