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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달빛 Dec 23. 2021

제발 퇴근할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휴우~ 아이들이 잠들었다.



​​​​


얼마 전 일이다.


D,D 행사가 있는 날이라 인천에 6시까지 도착해야 했는데, 평일이라 퇴근하자마자 가도 시간이 간당간당할 거 같았다. 나는 겉옷도 모두 챙겨 입고 슬리퍼도 부츠로 갈아 신었으며, 가방을 정리해 지퍼까지 채우는 것을 잊지 않고 대망의 7교시를 맞이했다. 마음은 이미 지하철을 탔을 뿐 아니라 지하철 안에서도 마구 달리고 있었다. 마치는 시각과 내가 탈 전철이 도착하는 시각 사이에는 고작 13분이 있었다. 지도에서 걷기로 검색하면 3분이지만, 내가 있는 교무실 3층에서 내려가 정문까지 가는 시간과 전철역에 도착해서 전철과 만나기까지의 긴 여정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다음 열차는 11분 뒤에 오고, 그럼 갈아탈 열차를 놓치게 되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땡 하면 출발해야 탈 수 있겠다 싶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7교시 종이 치기가 무섭게 나는 교실에서 나와 내 자리로 쏜살같이 돌아왔다.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그린 바대로 한 손으로 PC를 끄는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 서랍에서 가방을 꺼냈다. 이어지는 동작, 가방을 어깨에 메면서 무릎으로 서랍을 닫기까지 마쳤을 때였다. 전화기에 중간 관리자님 내선 번호가 뜨면서 벨이 울렸다. 아,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안 받았다가 학교에 돌아와야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수화기를 들었다. 오전에 면접 본 지킴이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전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가장 빨리 끊을 수 있는 답을 골랐다.


"아, 제가 몰라요."


그러나 그 분과 논의할 게 있으니 그럼 이력서를 보고 알려달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 이력서가 어디에 있냐면 내가 방금 끈 PC의 메신저 폴더에.

아후.


빨리 전송하고 나가는 게 낫겠다 싶어 알았다고 말씀드린 뒤 재빨리 PC를 열었다. 마우스를 광클릭해서 PC가 켜지기 무섭게 전송을 눌렀고 전송이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뜸과 동시에 바로 껐다. 4분이나 지났다. 발을 동동 마음이 바빴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구 달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가느다란 희망이 있었다.


또다시 벨이 울렸다.

누구를 위하여 벨은 울리나? (나는 아닌 것 같은데)


"아, 내가 깜빡했는데 면접 본 분 말고 안 본 분들 것도 함께 보내주세요."


몸이 나른해지면서(?) 나는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어깨에 멘 가방을 내리고, 의자를 꺼내어 앉았다. 이를 꽉 깨물고 PC를 열어 파일을 전송한 뒤 더 빠른 다른 경로가 있는지 찾기 위해 지도를 열었다.

네 탓도 아니고 내 탓도 아닌데 화는 나는 상황.





우리 준이와 민이는 진짜 다르다.


준이는 얼르고 달래고 빌고 우기고 겁박해도 조건 걸면서 심부름을 피하는데, 민이는 '화장실 불 좀 꺼줄래?' 하면 '화장실 불'까지만 듣고 이미 움직인다. 화장실 불을 꺼달라 했을 뿐인데 물 빠지라고 세워둔 슬리퍼는 착 눕히고 불을 끄면서 화장실 문도 닫는다. 민이는 자주 이런 일타삼피를 맛보게 해 준다. 뭐 이런 거야 다른 것은 그 나름대로 둘을 키우는 재미와 의미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잠들 때이다. 남편이 늦을 때 둘을 데리고 자면 꼭 둘이 다툰다. 준이는 완전히 조용하고 움직임도 없어야 잠이 드는데, 민이는 '자장자장' 불러줘라, 여기저기 몸을 비벼라, 토닥토닥해라, 머리를 긁어라 등 갖은 요청을 해대며 깔깔대고 자기 몸에 올릴 내 손의 위치까지 지정해 준다. 둘 중 하나만 데리고 잘 때는 너무 좋다. 준이랑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 '이제 자자' 하고 뽀뽀해주면 끝이라서 좋고, 민이랑은 서로 킬킬대면서 떠들다 보면 어느 순간 잠들어 있어서 좋다. 그런 둘을 동시에 재우려니 준이는 민이에게 시끄러우니 조용히 하라고 소리 지르고, 민이는 형아가 더 시끄럽다고 소리 지른다. 민이는 조용히 하라는 엄마에게 형아 편만 든다고 소리 지르고, 준이는 그럼 자장가 딱 하나만 부르자는 엄마에게 동생 편만 든다고 소리 지른다. 그럼 끝판왕인 이 내가 등장한다.


'쫌 자자!'






오늘이 바로 둘을 데리고 자는 그날이었다. 흑흑

12시까지 글을 마쳐야 해서 21시 30분부터 아이들을 눕혔다. 내 마음은 이미 책상에 가 있고 머릿속에서는 어떤 글을 쓸까 책장이 넘어가는데, 잘 듯하면 투닥투닥, 이제 곧 잠들겠지 하면 또 투닥투닥. 결국 둘 모두 잠드니 23시 50분. 고작 10분을 확보하고야 말았다. 결국 그냥 시간을 넘기더라도 천천히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쓰자 싶었다.

포기하니 편해... 근데 슬퍼... 흑흑


​​​​​



이토록 꼬리가 긴 육아 퇴근 앞에서, 너희의 탓도 나의 탓도 아닌 (아마도 나의 욕망 때문에?) 급해지는 이 마음 앞에서, 자꾸만 PC를 켜야 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


나는 그날 다른 경로를 선택했고 별탈 없이 제 시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반 열차에서 내려서 급행열차를 타겠다고 갈아타는 곳을 찾아다닌 일이 있던 것만 빼면. 그냥 내린 곳에 그대로 서서 급행열차가 올 때를 골라 타면 되는 것인데, 고속터미널역 계단을 몇 번을 오르내리면서 9호선 급행열차 타는 곳이 어딘지 찾아 헤맸던 것이다. 3호선 7호선은 있는데 9호선 갈아타는 곳이 안 보이는 것이다. 결국 다시 내가 내린 9호선으로 돌아가서 지나가는 나이 지긋해 보이는 아주머니께 여쭸다.


"저, 죄송한데 혹시 9호선 어디에서 타는지 아시나요?"


"응? 여기서 타면 되는데?"


"아, 네?"


나는 귀신한테 홀렸다 돌아온 느낌이었다. '아하'하는 마음과 함께 몹시 민망했다.


아주머님의 격한 끄덕임과 찐한 위로가 기억에 남아있다.



"그럴 때 있어. 그럴 수 있어."


​​


오늘 나의 글도 그날처럼 헤매고 다니는 거 같은데..... 그래도 그냥 '이럴 때 있어. 이럴 수 있어.'하고 얼른 잠을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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