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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달빛 Sep 19. 2022

환경만 탓하는 건 쫌 그렇지만,

아무 상관없지는 않잖아




아이들도 환경이 중요하지만

부모에게도 환경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래간만에 여덟 살 준이 친구 엄마를 만났다. 아이의 마음을 잘 살펴 포용할 줄 알고, 사람들과 편안하게 잘 지내는, 나보다 어리지만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 엄마에게 들었다.

초등학교에 보내게 되면서 해야 할 과제가 계속 있으니, 자꾸 그 과제가 둘의 관계보다 중요해지더라는 이야기였다.


아이를 데리고 과제하느라 씨름하는 게 속상하지만, 아이가 과제를 다 하지 못했을 때는 학교에서 자유시간을 가질 수 없단다. 담임 선생님에 따라 다르지만 우선순위가 이미 정해져 있어서 아이가 쉬려면 과제를 해야만 하는 현실에 부딪힌다는 거다. 이 엄마가 어떻게 아이를 존중하는지 알기 때문에, 어떤 마음인지 참으로 공감했다.








2021년 말 어린이집 졸업할 시기가 되어갔으니 준이 일곱 살 생일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교사회가 주관하지만 아이들 각각의 욕구로 놀이가 이루어지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선생님께서 계획을 들려주셨다.

“마지막이니만큼 스스로 (직조 틀로) 짠 가방을 만들어 성취감을 맛보게 해주는 게 어떨까?”


좋았다. 가방 하나씩 의기양양하게 어깨에 걸고 졸업하는 모습!

시작하고 얼마 뒤부터 준이 친구들은 대부분 매일 어느 정도의 분량을 짜는 듯했다.

한 친구는 벌써 몇 개째 가방을 짜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준이는 좀처럼 진도가 안 나가는 듯 보였다.

나는 얼마나 짰는지는 무관하다는 듯 ‘준이 가방 짜는 거 재미있어?’ 하고 관심 없는 체했지만 마음이 쓰였다.


어린이집 하원 때 바구니를 챙기면서 저쪽에 몇 줄 못 짠 준이 직조 틀을 보았다.

내가 준이에게 집에 직조 틀을 가져가자고, 엄마랑 두 줄씩 하는 거 어떠냐고 했더니

툇마루에 들었다가 슬그머니 내려놓으면서

“아 까먹고 가고 싶다.”

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직조 틀을 집에 가져가는 것을 잊어먹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때도 웃기는 마음이 좀 아쉬웠다. 내 아이에 대한 아쉬움? 음… 실망이었을까?

막 과제는 샥샥 잘해줬으면 하고, 엄마가 도와주겠다고 하니 그 제안을 감사해하며 오예 하고 반기기를 원했나?

음 그때는 그렇게까지인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축하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하는 게 많이 힘들어?”

“아니, 나는 다른 걸 하고 놀고 싶은데 그걸 해야 하니까.”

“아 힘든 건 아닌데 더 하고 싶은 게 있다고.”

“아니 좀 어렵기도 해. 끝부분이 어려워.”


나중에 선생님께 전해 들은 내용이 준이는 끝부분에서 실을 놓쳐서 몇 번 풀기도 했다는 것이다.

우리 뜨개질할 때 코 놓쳐서 몇 단 풀고 다시 하는 그런 마음이었겠지?

허탈하고 짜증 나고, 몇 번 반복되면 치워버리고 싶은…


하고 싶은 만큼씩 그럼 엄마랑 같이 하자 해서 1:1로 저녁마다 앞에 앉았다.

같이 하니까 진도가 나갔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마음이 답답해지는 거다.

왜 거기서 자꾸 코를 빠트리는지, 돌아올 때는 위로 가면 아래로 들어오고, 아래로 가면 위로 올라오면 되는데 그게 왜 헷갈리는지 마음이 답따아아아압해 지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 시간이 나에게 전혀 즐겁지 않았다. 나의 불편한 에너지는 바로 준이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나는 나도 모르게 큰 한숨을 뱉어내면서 들으라는 듯이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휴우, 아니~ 대체 이게 왜 어려운 거지?”

준이는 검지 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누르며 나를 쳐다봤다. 당황한 눈이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아~ 내가 쿨한 엄마였던 것이 아니라, 쿨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었을 뿐이구나. 주변에서 나를 흔들면 나는 충분히 ‘핫’할 수 있는 엄마구나. 아이의 성취에 민감하고 불안해하고, 결국에는 아이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놓치며, 누군가의 목표만을 따라 쫓을 수 있었겠다는 마음. 그런 핫한 자질이 남부럽지 않게 있는 내가 준이의 엄마인 것.



일반 초등학교를 간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없어졌다. 35~40분 동안 의자에 앉아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갖가지 요구 사항이 올라왔다.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 눈을 보고, 이해 못 하는 거 질문하고, 친구들하고 잡담하지 말고, 준비물 잘 챙기고, 숙제는 빠트리지 말고 적어 오고…….









대안 초등을 택한 지금 편안하다. 돌봄과 무조건적인 지지를 주시는 교사회. 판단이나 평가 없이 그저 바라봐주시는 모습이 어린이집의 선생님들 그 모습이다. 그렇다고 그냥 놀게만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각 아이에 대해 필요한 교육과정을 생각하고 계신다. 일단 교사 한 분에게 맡겨진 아이 인원수가 적으니 놓치는 것도 적은 거 같고.

 

가끔은 아이가 와서 ‘자신의 그림’에 대해 대단히 감탄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 “내 그림은 내가 점수 주는 거야. 나는 마음에 들어”한다. 그러면 나도 “그래 준이 마음에 들면 됐어.”하면서 나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다짐한다.

숟가락…. (처음에는 좀 놀랐는데 알고 보니 나무로 깎은 거라 진짜 이렇게 생겼더라)




어떨 때는 “엄마 나는 수학을 너무 잘해서 어떤 문제는 시시해.” 한다. 초등학교 수학을 2학기부터 시작해서 지금 1+1 덧셈을 하면서 하는 말이다.(모두가 쉬울 거 같다는 나의 편견일지 모르지만)

“그래, 지금 하는 문제가 시시하게 느껴질 만큼 수학에 자신이 생겼구나. 좀 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예를 들어 1+2= 같은?)하면 “그렇지” 한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하던데

잘하는지 못하는지 정말 누가 아는가? 좋은지 나쁜지는 언제 결정하는가?


내가 나를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어려운 상황에서 지조를 지키라고 하는 것보다 애초에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한 거 같다. 준이 어린이집을 고를 때 그랬듯 나의 가치와 잘 맞고,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 나를 두면 저절로 원하는 대로 살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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