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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달빛 Jun 24. 2022

아이에게 충치가 생긴다는 건

다섯 가지 공포



어제 준이 이를 닦다가 놀랐다.

치실을 쓰다가 그간 왜 몰랐지 싶을 만큼 꽤 눈에 띄는 큰 구멍을 하나 발견했다. 칫솔로 살짝살짝 쓸어보니 안이 깊이 파여 있었다.


매일 아이들 눕혀 놓고 치실, 치간칫솔, 칫솔 삼 형제를 데리고 꼼꼼하게 닦아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아프지 않고 편안해서 내 가슴도 안 아프고 편안하고 싶었는데 벌써 치료받을 아이가 걱정되고 불안해졌다. 칫솔질 꼼꼼히 하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하교 때 아이를 만나 양치 잘 했는지부터 물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자기는 칫솔이 없어서 양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칫솔, 치약을 잃어버려서 그동안 계속 하지 않아 왔다는 이야기도 했다. 매일 양치 잘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대답을 잘해서 믿었는데... 아이의 치아 상태를 위해 내가 애쓰는 만큼 스스로도 신경을 썼다면 협력, 안심의 욕구가 충족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좌절했다. 아이에게 기나긴 설교가 이어졌다. 오늘 밤 아이의 하루생활글에 이런 이야기가 적혔다.


"엄마가 오늘 차에서 하고 싶은 말을 막 쏟아냈다."


미안한 마음이 마구 올라왔다. 일단 순서상 나에게 공감하기로 했다. 나는 차 안에서 점심때 준이가 양치를 안 했다는 말을 듣고 왜 그리 감정에 압도되어 '비폭력대화'의 말투만 가져와서는 아이를 잡았을까?


"나는 우리가 약속했을 때 그 약속이 지켜진다는 믿음이 필요해. 엄마하고 약속했을 때 그 약속을 지킬 마음이 있는지 궁금해. 엄마가 한 말 잘 들었는지 알고 싶어서 그러는데 들은 걸 말해 봐"하는 내말에 준이는 "너무 긴데...."하고 눈알만 데굴데굴

이런 식의 대화를 계속 계속하다니 너무 심해! 공감은 무슨 공감!


하지만 아이들을 재우고 새로운 치과를 알아보면서 나에게 착 공감이 되었다.

아이에게 충치가 생기지 않는 게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매일 손목이 아플 만큼 열심히 양치시키면서 내가 바란 것들이 무엇인지...

신기하게 나를 이해하니 준이에 대한 불안과 걱정도 좀 내려갔다.






몇 달 전 둘째 민이 충치를 치료하러 갔다. 전화를 했더니 와서 대기하면 치료가 가능하다 했다. 하루라도 빨리 치료하자 싶어 두 아이를 데리고 출동. 긴 대기 시간 끝에 둘째를 치료하러 들어갔는데 첫째 준이가 옆에 다가오자 의사선생님은

'저리 가있어. 너는 저리 가있어'

하며 손으로 밀어냈다. 준이는 혼자 대기석으로 갔다. 나는 준이에게 잠깐 가서

'준아, 혼자 있을 수 있겠어? 진료하는 곳이 좁아서 의사 선생님이 준이도 들어와 있으면 집중이 잘 안 되시나 봐. 민이 잘 치료하고 싶어서' 했다. 아이 옆에 나의 짠함도 남겨두고 민이에게 돌아오며 그래도 그렇게 표현해야 했나 의사에게 아쉬웠다. 솔직히 의사 미웠다. 아이에게 부드럽게 대해줬으면 했는데.....그러니까 1차로 실망.


의사는 민이 이를 보고는 마취주사를 놓았다. 잠시 다른 사람 진료를 보고 와서 마취가 되었는지 확인했다. 그러더니 '신경치료'를 들어가겠다 했다.

앗!

나는 신경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아이들도 다 신경치료하는 거라며 오늘 마취주사 맞았지만 신경치료 안 할 거면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 그런 치료는 해봐야 소용이 없다면서...


1시간 20분을 기다렸고, 입 안을 실컷 살폈고 엑스레이를 찍고 마취주사까지 놓고는 집으로 그냥 돌아가라고? 신경치료를 안 받을 거면?? 2차로 의사한테 대실망!

나는 슬펐고 억울했다. 아이도 안쓰러웠다.

기다리면서 이 시간을 견디면 아이 이가 잘 치료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실망했고, 마취주사를 맞은 아이의 고생도 의미 있기를 바랐는데 허무했다.


나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 계속해서

"선생님, 방법이 없을까요? 저는 완벽하게 치료가 안 됐다 하더라도 괜찮으니 지금 하실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충치만 최대한 제거해 주실 수 없을까요?"

를 반복했다. 의사 선생님보다 모르는 환자고, 자식의 어머니고... 한없이 위축되고 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잘 안내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기도 했다. 따뜻함도 원했다. 우리는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다른 사람을 잠깐 진료하고 돌아왔다. 나는 아이의 마취가 풀릴까 봐 더 조급해졌다.

"선생님, 이후에 아이가 이 아파하면 바로 다시 올게요. 그때 신경 치료하면 어때요? 제가 저도 신경치료를 해봐서 최대한 신경을 살리고 싶어서요...."

아무 말 않고 잠시 동안 빤히 내 눈을 보던 의사가 민이 입 안에 거울을 넣었다.

치료 시작!

속상하고 울컥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긴장이 풀렸다.


의자에 내가 눕고 그 위에 아이를 눕혔다. 예전 이사 오기 전 병원에서 그렇게 시켰었다. 의사 선생님은 옆에서 이 자세로 치료가 되냐고 했다. 나는 그대로 누운 채 죄송하다고만 이야기했다.

엑스레이 촬영 때 나와 민이 둘이 찍으러 들어갔는데 촬영 바로 전에 밖에서 문을 빼꼼 연 의사가

'엄마 나오세요 나오세요 얼른'

해서 아이가 붙잡는데 무슨 일인가 나왔더니 엑스레이 몸에 나쁘니 나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찰칵!

'아 나는 괜찮은데... '

어쨌든 민이는 그때부터 말수가 줄고 울상이 되었다. 나는 의사 선생님을 참 번거롭게 하는 환자 엄마가 되어 죄송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치료를 잘 받게 돕고 싶었다. 무서울 때는 무조건 버텨야 하는 게 아니고 도움받을 수 있고 다양한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고도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누워서 민이 귀에다 대고

- 이건 바람이야

- 이건 물이야

- 이건 빨대야

- 이건 청소기야 윙

하고 멘트를 날리며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아이가 내 손을 어찌나 꼭 잡고 있던지 손에 땀이 막 났다.

이 하나를 다 치료하시더니 옆에 작은 충치도 하나 하신단다. 좋았는데 아무리 조금이라도 이 하나에 - 뭔지 까먹었는데 - 10만 원이라 했다. 왐마 진짜 점이었는데.....


진료를 어찌어찌 마치고 멀리서 민이와 나를 바라만 보고 있던 준이에게 다가갔다. 혼자 있던 준이도 울상이었다. 카드를 긁고 나오는데 다시 이런 경험하기 싫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런데 나중에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로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났다.

"원래 아이들은 안 받는데..."

"머리도 붙잡고 팔다리도 꽉 붙잡아야 돼요."

(물론 이렇게 하지 않아도 고요하게 주사 맞고 치료받고 다 했다. 준이 민이 모두 성향이 그렇다.)

혼잣말로 "나는 애들 치료해 본 지 진짜 오래됐는데..." 했던 것도 그제야 들은 기억이 났다.


아, 그 선생님 - 연민이라 하기엔 뭔가 딱 맞지 않는 기분인데 의사도 안심하고 싶었겠구나 - 이해가 됐다.


선생님도 걱정되고 불안했나?

아이가 발버둥 치거나 해서 치료를 망치거나, 울고 불고 해서 주변에 피해를 끼치고, 더 나아가서는 치료를 중단하게 되는 골치 아픈 일이 생길까 봐?

신경치료를 안 받아 놓고, 아이가 또 아파한다며 아이 어미인 내가 '그 의사 돌팔이 아닌가, 제대로 치료 안 해서 또 치과 오게 하는 돈만 아는 의사 아닌가?' 할까 봐? 이런 비난도 걱정했을까?


의사선생님도 우리 준이를 돕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고, 거기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것이다.







준이가 나에게 '점심때 양치를 안 했어.'라는 말을 했을 때 그 말은 나에게


1. 기나긴 진료 대기 시간

2. 마취주사, 신경치료 등

3. 입 벌린 채 공포에 질린 아이들 얼굴

4. 아이가 둘이니 치료 안 받는 한 명은 한없이 대기

5. 돈... 탕진


이 다섯 가지를 원치 않아도 겪어야 한다는 말로 다가왔다.


이제 그런 나에게도 깊은 연민과 이해를...

그래서 그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이에게 쏟아냈다는 것-충분히 그럴 수 있어.


내일 다시 내 마음을 정리해서 이야기해줘야겠다.

너무 길게 말고 짧게.


아니면 이미 알아들었을 테니 넘어갈까?

봐서...

준이와 나의 '연결'을 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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