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내산 아이스크림 후기
여덟 살 준이가 며칠 전부터 내게 뭐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물어왔다. 자기한테 아빠가 준 카드가 있으니 사줄 수 있다면서 편의점에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실제로 카드를 꺼내 보이면서
'말만 해. 맛있는 거 다 사줄게~'
하기에 속으로
'남편이 무슨 체크카드라도 하나 만들어 주었나'
했다. 그리고
'오, 이제 울 아들이 내게 물질로도 효도하는 수준이 된 건가?'
흐뭇하기도 했다. 그 마음도 고마웠고.
그날은 도서관에 들러서 나 한 권, 준이 한 권 각자 빌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준이는
"엄마, 오늘 가자. 내가 뭐 맛있는 거 사줄게"
그놈의 '맛있는 거' 하하. 그 모습이 얼마나 기세 등등하고 위풍당당한지 웃음이 나왔다.
타인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 인간의 큰 기쁨이라는데, 아이는 그 기쁨을 맞이하려는 듯 신나 있었다.
준이는 내가 사줄 때보다 훨씬 신중해 보였다. 각각의 과자 앞에서 오늘따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준이에게 충분히 생각해서 고르라 한 뒤 나의 과자를 고르러 갔다.
울 아들이 최초로 사주는 내 까까.
짭짤한 거? 달콤한 거? 고민하고 있자니 자기 거는 못 골라놓고 나에게 와서 훈수를 두기 시작한다. 지난번에 내가 먹었던 과자를 기억하고는 그걸 콕 집어
"엄마 이거 먹고 싶어? 먹어~"
"아니면 저거 먹을래?"
하면서.
나는 심사숙고 끝에 최대한 '비싼' 걸로 골랐다. 그게 기쁘게 받는 사람의 예의지!
녹차 아이스크림 큰 거 한 통.
준이는 무얼 골랐나 보니 그냥 초콜릿. 의외였다.
아이가 초콜릿 자체를 좋아하는지는 몰랐다. 빼빼로나 홈런볼 등 초코가 함께 하는 과자를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초코에 대한 사랑은 찐이었다.
'순수한 초코를 원하는구나.. 나처럼.' 진짜 돈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고른 것이라 왠지 나에게는 다르게 보였다. 이렇게 아이의 취향도 알고...
아이는 먼저 계산대로 갔고 나는 염치 불고 하고 더 살 것이 있나 보다가 작은 과자도 하나 샀다.
준이가 계산대에 초콜릿과 카드를 올려놓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계산해 주세요!"
나는 멀리서 다가가면서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카드를 본 주인아주머니께서 100가지 감정을 담은 표정을 짓고 계셨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입을 떼셨다.
"이건 적립만...."
나는 얼른 다가가 눈짓을 하고 핸드폰을 보여드리면서 조용히
'페이류 되죠?'
하고 여쭤보았다.
지갑 안 가져왔는데 다행스럽게도 카카오페이가 된단다.
지이이잉~~~~~~
핸드폰에서는 '녹차+초콜릿+미니 과자' 가격이 인출되었음을 알리는 톡이 왔다.
아주머니께서는 카드에 적립을 완료하시고 미소를 띠면서 준이에게 카드를 돌려주셨다.
"다 됐어"
하시면서. 준이는
"됐어. 가자!"
하며 나를 한번 돌아보더니 개선장군처럼 주차장으로 앞장서 갔다.
이럴 수가!
자기가 산다고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와놓고 지갑을 두고 왔다고 하는 얄미운 친구 이야기 인터넷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갑자기 왜 떠오르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간다?
그런데 나도 참 나다.
저 카드를 보고도 그게 적립카드인지 뭔 카드인지 관심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또 달리 생각하면 나도 몰랐으니 이런 일도 겪고 하니 그 아들과 그 엄마가 죽이 잘 맞는구나 싶기도 하다.
이해의 선물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나 초등학교 시절 배운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는 '위그든'이라는 이름도 낯설고, '버찌 씨'가 뭔지도 몰랐기에 조금 기묘한 이야기로 다가왔었다. 큰 감동을 느끼기보다는 수업시간에 딴짓하느라 슈룩 지나치면서 사탕에 대한 묘사만 주의 깊게 보았던 생각이 난다.
아이 둘의 엄마가 되고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녀와서 버찌 이야기를 할 때도 가끔 떠올리기는 했었다. 그때는 '위그든'씨가 낯설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아이의 순수함을 아는 어른으로 나와 연결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의 순수함은 종종 엉뚱함이고, 그 엉뚱함으로 어른을 당황하게 하는데 왜 그 모습은 사랑스럽고 감동을 줄까? 우리 마음 안에도 순수함이 살았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반갑다고?
편의점 김포점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는 제 마음속 위그든이십니다.
이해의 선물 줄거리(출처: 나무위키)
네살배기 '나'는 어느 날 엄마의 손에 이끌려 시내에 나갔다가 백발이 성성한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 들렸다. 그 당시 돈이라는 것이 뭔지 몰랐던 나는 그저 엄마가 무언가를 건네 주면, 다른 사람이 물건을 건네 주는 것을 보고 으레 그런 것인 줄만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큰 마음을 먹고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 몰래 혼자 가기로 했다. 물건을 고르고, 위그든 씨가 돈은 가지고 있냐고 묻자 나는 주먹을 내밀고 그 안에 소중하게 가지고 있던 은박지로 싼 버찌 씨를 위그든 씨의 손에 떨어뜨렸다. 위그든 씨는 잠시 고민하다가 '돈이 조금 남는구나. 거슬러 주어야겠다'며 2센트를 주었다. 그 날 나는 사탕가게에 혼자 간 것에 대해 어머니에게 매우 혼났지만, 이후로 어머니가 사탕 살 돈을 매번 주면서 돈의 개념을 확실히 알게 된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관상용 어류 가게를 연 '나'에게, 꼬마 남자애가 누이동생과 함께 찾아왔다. 30달러 어치는 될 만큼 이것저것 물고기들을 고른 아이가 자신의 앞에 소중하게 간직했던 5센트짜리 백동화 두 개와 10센트짜리 은화 하나를 떨어뜨렸을 때, 나는 지난날 내가 위그든 씨에게 어떤 어려움을 안겨 주었는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멋지게 그 어려움을 해결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옛날 위그든 씨가 그랬듯이 똑같이 아이들에게 2센트를 거슬러 주고, 가게를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있었다. '물고기를 얼마에 주었는지 알기나 해요? 무슨 일인지 설명해 보세요.'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나는 위그든 씨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어.' 이야기를 마쳤을 때 아내의 눈시울은 젖어 있었다. '아직도 그 날의 박하 사탕 향기가 잊혀지지 않아.' 나는 어항을 닦으며 기억 속 위그든 씨의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