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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달빛 Jan 06. 2022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위로한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위로는 내가 듣고 싶던 위로


준이는 멀미가 심한 편이다.



차를 한 시간 이상 타게 되면 바로 표정이 안 좋아진다. 고개를 푹 숙여 무릎 사이에 파묻고는 그렇게 둥글게 웅크린 채로 차가 멈출 때까지 버틴다.


장거리 이동 후 한밤중에 집에 도착한 날이 있었다. 아이들이 배고파해서 근처 24시 콩나물국밥집에 갔다. 허겁지겁 한 숟가락 입에 넣던 준이는 시원하게 분수토를 하고 말았다. 꽤 여러 번 게워내고 나서야 구역질은 잠잠해졌다. 나는 급한 대로 손으로 받다가 비닐 씌운 쓰레기통을 들어서 받았다. 바닥은 휴지로 닦고 상은 쓸고 닦고... 어휴... 내 자식 거라 그런지 냄새는 나도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멀리서지만 식사하고 계시는 다른 손님에게 너무 죄송스러웠을 뿐...



토하는 아이 모습은 안쓰러웠는데 오히려 토하고 나니 준이는 속이 편안해 보였다.



멀미하느라 식겁했던지 다음날 차로 5분 거리인데도 준이가 절대절대 차를 타지 않겠다고 해서 목적지까지 걸어가는 일이 있었다.






며칠 뒤 공원에서 모임이 있었다. 아이들이 자전거와 씽씽이를 타기 좋은 곳이었다. 준이는 멀미의 추억이 아련해졌는지 차로 이동하는 것이 괜찮을 거 같다고 했다. 대산 차에서 옛날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버스로 두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를 이동했고, 계획대로 약속 시각을 20분쯤 남기고 도착해서 여유로웠다. 오는 길에 맛집에 들러 사온 김밥을 먹으면 딱 약속 시간을 지킬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앞자리 조수석에 김밥이 담긴 상자를 먹기 좋게 펼쳐놓고 차에서 함께 먹으면 딱이었다.



그때였다.

뒷자리 카시트에서 내려와 김밥을 향해 다가오던 준이가 며칠 전 그 모습 그대로 시원하게 아침 식사를 뿜어냈다. 자동차 핸들, 앞의 의자 두 개 사이사이와 에어컨 바람 입구, 각종 버튼 틈새는 물론이거니와 새로 구입한 빳빳하던 나의 책과 새로 입은 나의 바지, 나의 까만 가죽 가방에까지 흔적을 남겼다. 온통 튀었고 흥건했다.


대환장 토파티


화가 나고 막막했다. 약속 시각도 잘 맞춰 도착했고, 먹음직스럽던 김밥만 먹고 차에서 내리면 모든 것이 완벽했는데.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루 종일 굶은 나는 배도 고팠다. 김밥을 못 먹고 버리게 된 것이 화났고, 한 장도 못 열어본 새 책이 완전히 젖어서 더 화가 났다. 차 안은 언제 어떻게 청소할지조차 막막한데 그보다 먼저 아이들과 내가 씻고 옷을 갈아입으러 집으로 갔다가 다시 이 길을 와야 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거 같았다.


“준아!! 어휴.. 어떡해. 어떡해! 어휴 어떡하냐, 어떡해잉.”


준이는 2차를 준비하는 듯 보였다.


“내려! 내려! 내려서 해, 내려서!”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준이는 고개도 못 들면서도 차에서 엉거주춤 내리고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 민망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아, 어떡하지, 어떡해, 아우 미치겠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어떡해’가 계속 맴돌았다.


준이는 다행히 다시 올리지는 않았고 혼잣말 비슷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근데 어... 어.... 엄마 책 물로 씻으면 어때?”


나는 김밥집에서 넣어 준 물티슈로 의자 시트를 벅벅 닦으며 대꾸하지 않았다.


“어 엄마... 나 옷 다른 거 입으면 되지?”


뭔가 내게 줄 해결책을 머릿속에서 찾아 헤매는 준이.


“준아, 일단 집으로 가야 돼. 다음엔 토할 거 같을 때 이야기해줘.”


내 말이 내 귀에도 매정하게 들렸다. 말도 안 됐다.


'엄마, 토할 거 같ㅇ....' 하면서 토했는데.



대충 정리한 후 최대한 차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집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차 안 사정은 미뤄둔 채 창문만 열어놓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올라왔다. 차보다 우리 몸이 먼저였다.








준이를 씻기는데 자기 토해서 배고프니 누룽지를 끓여달란다.


그래, 배가 고프실 것이다. 먹은 것도 없는데 다 토해버리고 당연히 배가 고프시겠지. 나는 씻기다 말고 누룽지를 인덕션에 올려놓고 꺼짐 예약 버튼을 눌러두었다.


화장실에서 준이를 마저 씻기고 나오니, 둘째 민이가 그거 뭐 좋은 거라고 형이 토한 걸 만지고 있었다. 나는 이제 민이를 씻기기 시작했다. 세 명의 벌거숭이들이 토 냄새를 없애가고 있었다.


하나의 일이 끝나면 어쩜 그리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일이 튀어나오지...


민이까지 모두 씻기고 다 된 누룽지를 내어 드렸다. 어지간히 드시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응가가 마렵단다.


그래 드셨으니 이제 마려우시겠지. 준이 민이는 안방에서, 마루에서 각각 화장실 다 차지하고는 엄마를 불러가며 동시에 응가를 했다. 응가를 했으니 당연히 둘 다 다시 씻겼고.


“준아, 민아. 둘이니까 잠깐만 집에 있어. 그럴 수 있지? 엄마 차 좀 더 청소하고 올게.”


무서버서... 당연히 안 된다고 한시지. 같이 내려가자 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둘은 옆에서 떠들고 넘어지고 씽씽이를 타고 신났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낀 채 휴지 한 통, 물티슈 두 통으로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겨우 흔적을 지웠다.



후.(숨 한번 쉬고)






나는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늦게 도착한다던 한 엄마가 내가 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약속 장소에 태워 가 달라해서 알았다고 한 상황이었다. 목적지와는 반대 방향인 그 집 쪽으로 가는데 배가 고파서인지 또다시 화가 나기 시작했다. 모든 상황이 화가 났다.


토한 준이에게

픽업을 부탁하는 그 엄마에게

집에서 쉬고 싶어서 안 된다 거절도 못 한 나에게

뒤에서 졸리다고 찡찡대는 민이에게








날은 저물고 집에 돌아와서 차분히 하루를 떠올리니 함께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캠프를 갔다 와서는 멀미기가 나아지지 않아 변기를 붙잡고 화장실에 있었던 때. 토하기 직전의 느낌을 버티느라 화장실 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였다.


그때 아빠가 화장실 문을 열고 이야기했다.


“그러고 있다고 속이 괜찮아져?”


나는 내가 그 말에 그렇게 상처받았었는지 몰랐다. 그때 내가 듣고 싶던 이야기가 뭐였을까, 그냥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명확히 떠올랐다.


멀미하느라 너무 힘들었지?

안아줄까

등 좀 문질러줄까?

뭐 마실 거라도 줄까?’



나는 준이를 불렀다.


“준아, 아까 엄마가 '어떡해, 어떡해' 그래서 준이 탓하는 거 같았지? 준이 잘못 아닌데 미안해. 그때 엄마가 얼른 안아주고 물도 주고 그랬어야 했는데, 엄마가 잘 몰랐어. 정말 미안해. 속이 많이 안 좋아서 힘들었는데 엄마가 속상해하니까 미안하고 그랬지? 근데 봐봐~ 엄마가 차 안도 깨끗이 치웠고 준이랑 민이랑 깨끗이 씻기고 옷도 새로 입혀줬지? 이렇게 엄마는 다 도와줄 수 있어. 어른들은 원래 아이들을 도와주는 거야. 엄마가 앞으로는 큰 봉투를 차에 둘게. 준이 토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 거기에 토해. 그리고 차에 또 튀어도 엄마가 지금처럼 다시 깨끗이 청소해 줄 수 있어. 엄마 책보다, 차보다, 옷보다 우주보다 우리 준이가 제일제일 소중해. 엄마의 소중한 보석이야.”



나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준아, 엄마도 생각해 보니까 어릴 때 토 많이 했어. 차 타고 가다가 '으웩' 하고 다시 타고 가다가 '으웩'하고 또 내려서 '으웩'하고 그랬어. 우리 준이가 엄마 닮았나 봐.”



그러니 준이가 빙그레 웃었다.



이이를 키우면서 어릴 적 나를 위로한다.

멋진 일이다.








사실 나는 캠핑장에 갔다가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왔다. 사진 찍기에 관심이 많은 아빠의 소중한 카메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절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경유지에 내렸을 때 버스에 두고 내렸는데 기사님께 여쭈니 카메라는 못 보셨다는 것이다. 함께 갔던 선생님들은 서울 가서 한번 더 알아보자고 하셔서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서울 도착하니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거기에서 더 찾거나 도움을 요청할 계제는 못 되어 그냥 그렇게 멍하니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정작 아빠는 카메라에 대해 나에게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내가 카메라를 잃어버렸다고 하자 아빠가 (내가 카메라를 잃어버리는) 그런 꿈을 꾸었다고 하시며 그 카메라가 좋은 거라 아마 버스에 있었어도 되찾기는 어려웠을 거라고만 하셨다.


그런데 어린 내 마음에서 일어난 일들이 그랬다. 그 카메라가 너무 소중한데 그걸 내가 잃어버린 것이 아빠에게 정말 미안했고, 카메라 잃어버린 주제에 아빠 앞에서 힘들다 티 내고 있는 것이 뻔뻔하게 느껴졌고 수치스러웠던 거 같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해주기를 간절히 기다렸던 것도 같다.



‘카메라 잃어버렸어? 우리 같이 찾아볼까?

어른도 뭔가 잃어버릴 때가 있어.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돼



분명히 아빠도 나처럼 이렇게 생각할 것을 지금은 안다.


"아빠 카메라보다 우주보다 네가 더 소중해. 아빠의 소중한 보석이야."


카메라 백 개를 준다한들 나랑 바꿨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그때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린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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