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달빛 Feb 28. 2022

소중해서 그래

ㄴr는 ㄱr끔 눈물 흘린ㄷr


"준아! 너 잠깐 이리 와 봐!"


준이가 동생과 다투고 화가 난다는 까닭으로 내 애플 펜슬을 들고 아이패드에 쾅쾅 찍어서 끝이 ㄱ자로 휘어져 버렸다.

나는 동생 민이를 달래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이 사실을 알았다. 자기도 화가 났는데 엄마가 동생을 먼저 달래니 속이 더 상했나 보다.


펜슬을 본 순간!!!

입에서 불을 뿜는 공룡처럼 정말 크게 소리 지르고 싶었다.


순간적으로 아이패드 액정은 안 부서져서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화가 난다고 물건을 부숴? 이래도 되는 거야? 그것도 고가의 기기를.(판단)

나 역시 화가 나서 다 파괴해 버리고 싶었다.(파멸)

네가 부서뜨려서 못 쓰게 되었으니 나도 다 부수겠다고 하고 싶었다.(파국)


나는 호흡 몇 번에 마음을 가라앉혔다고 생각하고 준이를 불렀다.



나: 준아, 이거 엄마한테 너무 소중한 거고, 엄마가 자주 쓰는 물건이라 이렇게 고장 내놓은 걸 보니까 너무 속상하고 슬퍼. 울고 싶을 만큼.


준: 어, 그러면 엄마가 가지고 나갔어야지!!!


나: 뭐어? ($#^!@#*&(%*&^%$)


와~ 비수가 되어 꽂힌다는 게 이런 건가. 머리끝까지 열이 확 올랐다.


나는 사준 적 없는 팽이라 이름도 모르고 가격대도 모르지만, 지난번에 할아버지께 사달라고 했는데 아빠가 너무 비싸다고 안 된다고 해서 속상했다는 준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는 우두두 쏟아냈다.


나: 너 팽이 그 제일 소중한 거 이름이 뭐야, 그거 말해 봐. 얼른.


준: 그건 뭐하려고?


나: 내가 너한테 이해받고 싶어서 그런다. 더 잘 설명해주려고!(목소리가 커진다.)


준: 말하기 싫은데? (내가 그 팽이를 어떻게 하겠다고 할 거 같아 걱정되었나 보다.)


나: 그럼 너 저번에 사달라고 한 팽이 말해. 사고 싶다고 한 거 있잖아.


준: 아, 사고 싶은 거? (갑자기 표정이 밝아진다. 이게 아닌데 싶었다.)


나: 사주려고 물어보는 거 아니야! 그냥 생각만 해 보는 거다! 그거를 누가 너에게 사줬다고 생각해봐. 그런데 엄마가 화가 난다고 그 팽이를 막 부쉈어. 그럼 어떨 거 같아?


준:...(표정은 뺀질뺀질 모르겠다는 표정)


나: 너에게 그 팽이가 소중한 거처럼 엄마도 팽이가 소중하다고. 이제 엄마 말이 좀 들려?


준: 아니!


나: (후우) 됐어! 더 이야기하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고, 없으면 나가줘. 지금은 엄마 혼자 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졌어.


준: 왜 엄마 마음대로 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가 바꿔?


나: 너 더 하고 싶은 이야기 있어서 그래?


준: 어. 이야기 있어.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손이 그렇게 됐어.(준이는 살짝 눈언저리가 붉어졌다. 그런데 안아주기 싫었다.)


나: 알았어. 나가 봐.





대화를 마쳤지만 안 하니만 못한 대화였다. 끝난 뒤에도 마음이 쓸쓸한...




1. 내가 놓친 가장 중요한 순서는 '자기 공감'이었다.


나 스스로가 무엇을 느끼고, 그 느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욕구를 물어보고 충분히 애도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나는 그 펜슬을 썼을 때 어땠는지부터 떠올려보았다. 남편에게 선물 받았지만 전자기기는 잘 안 쓰는 사람이라는 스스로 붙인 꼬리표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고, 오히려 남편이 가지고 다니면서 이북을 읽는 데에 썼다. 그러다 복직한 뒤 학교에서 삼성 갤노트를 나눠주고 연수를 해주어서 원격 수업을 갤노트로 배우게 되었다. 이번에 휴직하면서 노트를 반납하니 당장 쓰던 습관이 있어 없으니 너무 불편했다. 주었다 빼앗기 신공으로 남편에게 돌려달라고 말해서 받은 아이패드였다. 갤노트로 써봐서인지 예전보다 훨씬 유용하게 쓸 수 있었고 특히 필기감이 너무 좋았다. 펜 끝에 고무를 끼웠을 때보다 뺐을 때 미끄러지는 느낌이 나는 더 필기하기 편안했다. 쓸 때마다 기분이 좋았고, 앞으로도 당연히 이 펜슬로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원할 줄 알았는데 우리 사이...... 흑흑

이 펜을 쓸 때마다 얼마나 기뻤는지, 기분이 좋았는지를 떠올리는데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왠지 부끄러움도 조금 함께 올라왔고.

펜 하나에 눈물이라니 누군가가 비웃을 거 같은 마음도 있던 거 같다.

하지만... 내가 아끼던 물건. 그것과 함께 할 때 기뻤음을 생각하고 충분히 감사했다.


휘어 있는 너를 보니 다시 또 마음이 ㅇrㅍr온ㄷr.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한 거 같다.


내 물건을 소중히 대하는 게 나에 대한 존중이라 생각했고 나는 존중받고 싶었어.

물건에게 한 행동이 나에게 한 행동과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된 펜슬이 꼭 내 모습인 거 같은.


고가니까.. 비싼데 말이야. 돈을 내가 원하는 곳에 효율적으로 잘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미 있는 것을 또 사는 데 쓰는 것이 아닌 새롭고 없던 것을 사는 데 돈을 쓰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나의 욕구를 파악하지 못했으니 부탁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내 느낌의 책임을 아이를 비난하는 데 쓰고 말았다.

그러니 안아주지 못했다.






비폭력대화를 배우고 난 후 항상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상황에 기쁠 사람은 어떤 욕구가 있는 사람일까?

그러면 상황은 메신저일 뿐이라는 말이 다가온다.




예시

앤: 네가 어제저녁에 오지 않아서 나를 실망시켰어.

→ 밤에 혼자 드라마를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면?


그럼 바꿔서

나: 네가 내 애플 펜슬 끝을 구부려뜨려서 나를 화나게 했어.


→ 돈이 너무 넘쳐서 맨 아래 있는 돈이 숨을 못 쉬고 있어서 안 그래도 뭐 살 거 없나 찾던 사람...?

→ 새로 나온 갤노트로 바꾸고 싶은데 엄마가 안 해줘서 눈치 보던 사람...?


(뭔가 억지스럽지만...)

아무튼 잊지 말자. 

상황은 메신저일 뿐이고

흑흑 내 욕구.. 나의 소중한 욕구 때문임을





2. 나와 연결이 완전히 되면 그때 준이의 욕구도 들릴 것이다.


준: 왜 엄마 마음대로 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가 바꿔?

 아 준이가 선택할 수 있기를 원해?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엄마가 물어보고 그 의견을 존중해줬으면 좋겠어?


나: 너 더 하고 싶은 이야기 있어서 그래?


준: 어. 이야기 있어.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손이 그렇게 됐어.(준이는 살짝 눈언저리가 붉어졌다. 그런데 안아주기 싫었다.)

 슬퍼 보이네. 준이도 아까 너무 속상했던 거야? 일부러 엄마 물건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는데, 준이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어? 지금 생각하니까 좀 후회가 되고 왜 그랬지 하는 마음이 드는 거야?


나: 알았어. 나가 봐.

 이야기해주어서 고맙고, 다음에는 화가 많이 날 때 '엄마 나 화가 났어'라고 말해줄 수 있어? 엄마한테 말하기도 싫을 만큼 너무 화가 났을 때는 베개처럼 푹신한 걸 때릴 수 있을까? 엄마는 물건이 부서지거나 준이가 다칠까 봐 걱정되거든. 안전했으면 좋겠어. 우리가.






자 준이 불러서 다시 이야기 시작하러 가자!

뭐 고치든 사든 하자.

준이가 남긴 명언이 있잖아.


"어.. 어.. 우리보다 중요해?"


하지만 소중한 너희라서 좋은 걸 가르쳐주고 싶은 것도 잊지 말아 줘.





제안


앤: 네가 어제저녁에 오지 않아서 나를 실망시켰어.


걱정되는 일이 있어서 너와 상의하고 싶었기 때문에 네가 오지 않았을 때 실망했어.




이전 18화 우리보다 중요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