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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달빛 Dec 26. 2021

아이들과 나눈 사랑

나란 엄마 싱쿵사 주의

1.

준이가 터전에서 손가락을 베어왔다. 김장한다고 무 썰다가...

다친 날 저녁 같이 누웠는데 준이가 물었다.


준이: 엄마, 나 다쳤을 때 얼마나 슬펐어?


나: 엄마 정말 슬펐어. 엄마가 대신 아프고 싶을 만큼. 엄마가 아픈 게 더 나아.


준이: 그럼 내가 슬퍼.





2.

하원하러 터전에 갔다. 마당에서 무거운 물통을 낑낑 들고 친구에게로 달려가고 있는 준이. 친구가 더 떠와야 한다니까 몇 번을 열심히 물 떠다 주고 있었다. 부당해 보이고 아이가 안쓰러웠지만 그냥 모르는 체하고 있다가 집에 가자고 불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네가 가져온 물통이니까 준이 네가 갖다 놔." 했다. 준이도 거기까지는 싫었는지, 아니면 옆에 엄마가 있어서인지 쭈뼛거리며 물통을 들지 않았다. 그러자 준이 친구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초심~ 준이가 자기가 가져온 물통 안 갖다 두고 간대. 정리하고 집에 가야 되는데"

흠... 나는 준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응~ 가져온 사람이 갖다 놔도 되는데, 재미있게 놀던 사람이 갖다 둬도 돼."


집에 오는 길에 슬금슬금 부아가 치밀었다. 평소 서로 잘 노는 것도 알고, 사랑스러운 상대 아이의 품성도 잘 아는데, 시작을 모를 화가, 답답함이 올라왔다. 나는 또 가장 만만한 준이에게 화를 토스했다.


나: 준아. 너는 왜 그렇게 친구가 시키는 것만 계속했어? 네가 하고 싶은 것은 없었어?


준이: 응? 친구가 심부름시킨 거?


나: 그래. 너는 친구에게 심부름 안 시키잖아.


준이: 당연히 안 시키지. 친구가 안 해주지.


나: 근데 너는 왜 해?


준이: 에이~~(웃으며) 만날 하지는 않아.


나: 그래?


준이: 엄마도 내가 기뻐하면 기쁘지? 나도 친구가 기쁘면 기쁜 마음이 있는 거야.





3.

"엄마. 엄마 이름은 '이제 그만'이고, 아빠 이름은 '조심해'야.





4.

코스트코에 갔다가 카트에 준이를 태웠다. 주차장으로 가는 노면이 울퉁불퉁했다. 덜덜덜덜 거리는 카트 위에서 준이가 말했다.

"엄마 바닥이 울퉁불퉁하니까 귀가 간지러워."





5.

셋이 길을 가다가 뒤따라가던 내가 안 보이자 민이가 옆에 서계시는 할머니께 다짜고짜 여쭸다.

"할머니, 우리 엄마 봤어요?"

(할머니둥절) 준이가 민이 팔을 당기며 하는 말

"(답답하다) 어유 민아. 저 할머니는 너네 엄마(?) 몰라."





6.

준이: 엄마 우리 밀기 싸움 하자.

나: 그래.

준이: 엄마, 나 봐줘야 돼.

나: 싫어. 최선을 다할 거야.


준이: 나중에 엄마가 할머니 되면 한판 붙자!





7.

준이: 엄마 나 케이크 먹고 싶어.

나: 오늘처럼 밥을 남긴 날은 아무 간식도 못 줘.

준이: 그럼 엄마도 조건이 있어.

나: 뭐?

준이: 화가 나도 살살 말해. 오늘처럼 크게 말하면 간식 못 줘.





8.

준이: 아니, 왜 모기가 이렇게 안 없어지지? 겨울인데? 로봇 모기 아니야?





9.

준이: 엄마, 내가 만든 이야기 들려줄까?

 숟가락이랑 포크랑 한 그릇에 살면서 싸웠다가 잘 살기로 했어.

포크가 집을 나가니까 숟가락이 나중에 후회가 되어가지고... 그러다가 찾아가서 다시 화해하고... 어.. 거기서 만나서 사과하고 데려왔어.


나: 왜 싸웠어?


준이: 서로 그릇 많이 차지하려고





10.

나: 민이 사랑해


민이: 나는 엄마 안 사랑해


나: 왜?


민이: 엄마가 화냈잖아


나: 미안해. 그래도 엄마는 사랑해.(볼을 비비며) 으으으음. 이렇게 예쁜 사람이 어딨어?


민이: 엄마


나: 응? 엄마가 예쁜 사람이야?


민이: (퉁명스럽게)그래!





11.

준이: 엄마. 마음에 슬픔이 있으면 말이 나올 때 뾰족해져?





12.

준이: 나 아까 미니카 잃어버렸을 때 슬펐어. 엄마랑 찾아보자 이럴 수 있는데 엄마는 '물건 좀 잘 챙겨' 이랬어. 그리고 '이렇게 잃어버리면 엄마가 또 사주고 싶겠어?' 할 때는 '응 또 사주고 싶겠어.'라고 말하고 싶었어.





13.

준이: 나는 종이접기 영상 볼 때는 엄마가 혼자 접으면 좋겠어. 내가 잘 모르는 거 같으면 엄마 목소리가 화난 거 같아. 그럴 때 싫어.

나: 슬퍼?

준이: 응. 그러니까 엄마 마음이 답답하면 혼자 접어.





14.

아파트에 장 서는 날. 아이들은 늘 떡꼬치를 먹자고 한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떡꼬치와 어묵을 시켰다. 날이 추웠다.

준이: 엄마 나 쉬 마려운데 어떡해?

민이: 엄마 나 콧물 마려워.





15.

민이: 엄마, 나 물고기 세 마리 잡았어.(자석으로 된 놀잇감) 그래서 부자가 된 거 같았어.





16.

민이: 엄마 나랑 눈싸움 하자.

나: 그래

민이: 엄마. 사람은 눈을 깜빡여야 하는 거 몰라?

나: (읭?)





17.

준이: (화장실에서 일보는 나에게 다가와) 어우. 엄마 전천당에서 방귀 냄새 없애는 과자 좀 사 먹어라.

나:(억울)





18.

준이: 엄마. 나 좀 봐봐

나: 아니, 지금 운전하고 있는데 너를 어떻게 봐.

준이: 그럼 한 눈만 봐봐





19.

준이가 테이블 모서리에 머리를 꿍 부딪혔다. 못 참겠는 아픔이었는지 울음을 터뜨리는 준이

나: 어우 준아 아팠지?

준이: 어 (으아ㅠ)

나: 진짜 아픈 울음소리였어. 혁준이가 진짜 아플 때 나오는 소리야. 엄마는 알아.

준이: 다 달라?

나: 응 화날 때는 에에에이이이에에에이이 하는데 아까는 아아아야야아야으으아 했어. 그래서 아이고 우리 혁준이 진짜 아프구나 했어.

준이: 그래서?

나: 그래서 얼른 나와서 눈물 닦아주고 한참을 안고 있었잖아.

준이: 그때 울음소리 듣고 안 거야?

나: 응

준이: 오. 그럼 눈물 색깔도 달랐어?





20.

민이: 엄마 나 이제 엄마 찌찌 안 만질 거야.

         시시해. 내년이 되면 나는 형아야.





21.

민이: 엄마 쇠 같은 게 아빠 머리에 떨어져서 아빠가 아야아야아야 했고 그래서 꿰매었대. 아빠 진짜 아팠겠지?

...

...

진짜 나빴다. '바늘'





22.

민이: 엄마 우리 목에는 덜렁덜렁하는 게 있어. 좀 빨개. 그리고 딱딱한데 말랑말랑하고 뽈록 튀어나와 있어. 피랑 살이랑 피 주머니같아... 고래한테서 봤어.(목젖인가?)





23.

민이: 엄마 나 지금 팔이랑 어깨가 아프거든? 그게 형아 되는 거야. 팔 아프면 형아 되려고 하는 거래. 근데 안 돼. 거짓말이거든. 진짜는 엄청 오래 있어야 형아 되거든. 근데 형아 된다고 바로 이가 빠지는 건 아니지?(이 빠진 형아가 부러운 민이)





24.

나: 민이는 왜 이렇게 이뻐?

민이: 씻어서 그래.





25.

ㅇㅇㅅㅋㄹ 앞을 지나며

준이: 우와~~ 여기는 천국인가 봐.





26.

후진하면서 친정엄마가 나에게

친정엄마: 차 오나 봐라. 지금 나가?

나: 아니 아직

친정엄마: 지금 나가?

나: 아니 좀 기다려 봐

친정엄마: 지금이냐고? 지금?

나: 아따 잠깐만~

친정엄마: 지금?

나: 응 인자 살살 나가믄 쓰겄소.


집에 도착해서 자려고 할머니께 '안녕히 주무세요'하고 나서 준이가 묻는 말


준이: 할머니, 아까 주차가 어려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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