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나는 자라서 모래같은 어른이 될 거야!
일곱 살 첫째는 별명이 다람쥐다. 높은 곳이면 어디든 그렇게 올라간다. 간이 서늘해지는 에미 마음을 조금만 아랑곳해주면 좋을 텐데, 높은 곳을 발견하면 '무조건 반사'처럼 그냥 올라간다. 목이 떨어져라 바라보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휘청이면 나까지 바이킹 타고 내려오는 느낌이라 결국 못 참고 고함을 지르기 일쑤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일로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준아~ 이제 그만!"
쳐다도 안 본다.
"거기는 엄마 팔 안 닿아."
한 칸 더 올라간다.
"엄마 집에 간다!"
아쉽다는 듯이 내려오는 준이.
나는 속으로 '미안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돼. 위험하잖아!' 했다.
2학기 수업 내용을 마무리하는 시점이라 책꽂이에 꽂힌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다가 메모해 둔 내용이 담긴 종이를 발견했다.
'정글짐 술래잡기 놀이'의 방법을 선생님께 가르쳐주는 '하준이'라는 어린이. 술래는 땅에 내려와도 되는데 다른 아이들은 땅을 짚으면 죽는 놀이란다. 대신에 술래는 눈을 감아야 한다는 설명.
"떨어져도 술래, 잡혀도 술래예요."
"떨어져서 다치면 어떡해?"
"밑에 모래 있으면 떨어져도 안 아파요."
그렇지, 모래가 있었다. 놀이터의 모래 때문에 뛰기 어렵고, 모래가 자꾸만 신발 속에 들어가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하준이는 바로 그런 모래를 믿고 떨어져도 다칠 걱정 없이 아찔한 정글짐을 올랐던 것이다. 나는 마치 격언인 것처럼, 하준이의 말을 그대로 외웠다. "밑에 모래 있으면 떨어져도 안 아파요."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어른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민: 엄마 여기 오야가두 때(올라가도 돼)?
나: 거기 올라가면 꽈당 떨어질 수 있어~
민: 엄마가 꽉 잡아줌먼 대자나아(잡아주면 되잖아)
민: 엄마 이거 만져바도 때?(만져봐도 돼?)
나: 근데 민아 이거 너무 날카로워. 손 아야 할 수 있어.
민: 엄마가 밴드 붙여줌먼 대자나(붙여주면 되잖아)
둘째 민이 세 살 때 이런 대화를 하면서 정말 고개를 끄덕였었다. 뭐가 그렇게 위험하고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 아이에게 계속 위험한 세상을 가르치며 행동반경을 좁혀가고 있던 그때, 민이의 그런 대답이 정말 멋졌었다.
엄마가 꼭 잡아줄게
엄마 있을 때는 더 멀리 가 봐
더 높이 올라가 봐
이것저것 탐험해 봐!
엄마가 있잖아~
"밑에 모래 있으면 떨어져도 안 아파요."
못 올라가게 하는 것이 아니다.
안 떨어지게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하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안전하게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는지
그것이 엄마인 내가 고민할 부분인가 보다.
오늘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