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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달빛 Dec 06. 2021

엄마, 또 까먹었어?

자나깨나 기억하자.

자나깨나 기억하자!

1.


"엄마, 나 쉬 마려워"


화장실에서 혼자서도 일 잘 보는 네 살 민이가 웬일인지 나를 붙잡고 칭얼댄다.


"민이 혼자 잘하잖아. 엄마 설거지 중이니까 얼른 가서 하고 와."


"엄마 그런데 나 무서워."


"불 켜져 있잖아. 가면 훤한데 괜찮을 거야. 엄마 이거 얼른 하고 같이 놀자."


발을 질질 끌며 가더니 다시 돌아온다.


"엄마 무서워, 저기 빨간 거가 있어. 빨간 거 치워줘.

아니면 바가지에 쉬 받아줘."


그날따라 귀찮은 마음에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민이는 내 옆에 서서 기다릴 모양이었다.


"아이참! 얼른 가서 혼자 누지 그래. 그러다 배 아파!"


"엄마 무섭단 말이야."


순간 핑계를 대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나는 결국 고무장갑을 벗고 아이 손을 잡고 화장실로 갔다. 민이 말대로 진짜 빨갛고 무시무시한 새끼손톱만 한 과자가 떨어져 있었다! 그것도 화장실 변기 바로 옆에! 그게 딱 벌레처럼 보이기 좋은 모습으로. 웃기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치워주니


"그것 봐! 빨간 거 있다고 했지?"


"응. 이거 무서웠어? 이제 혼자 할 수 있지?"


바지 내리며 고개 끄덕이는 민이

톡 나온 배가 너무 귀여워서 둘이 자주 주고받았던 대화를 먼저 시작했다. 대화랄 것도 없이 내가 '예쁜 사람아' 부르면 민이가 '네' 하고 대답하는 것이다. 내가 내는 다양한 목소리에 맞춰 민이도 '네''를 다양한 목소리로 답하는데 민이의 싱크로율 100%라 자부한다. 그러고 나서 둘이 낄낄거린다.


"(굵은 목소리로) 예쁜 사람아~"


"(더 굵은 목소리로)네~~~!"


"어이구, 잘하네 내 보석!"


"엄마, 근데 왜 보석인데 아까 빨간 거 치워달라니까 화냈어?"


"어?"


"나 보석인 거 몰랐어? 까먹은 거야??"





2.


"민아! 엄마가 침대 위에서 뭐 먹지 말라고 했지? 과자 부스러기 떨어지면 우리가 잘 때 불편해!"


과자 먹고 있던 민이가 흠칫 놀라더니 이내 안 놀랐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엄마가 치우면 되지!"


"싫어! 엄마도 안 치우고 싶어. 그냥 침대에서 안 먹으면 되잖아."


"엄마, 그래도 소용없어. 나는 먹을 거야!"


"(눈을 부라리며)민이 마루로 나와서 상에서 먹어. (큰 목소리로) 얼른."

나이 많은 게 유세(?)로 결국 내가 이겨버리고 말았다. 민이는 서러웠는지 과자를 마다하고 침대에 점프 슬라이딩하며 얼굴을 파묻었다. 엉엉 소리 내어 울더니 갑자기 고개 들고 소리쳤다.


"엄마가 와서 달래줘야 돼!"


"알았어 어떻게 달래줘?"


"미안해 하고 안아줘야 돼."


"뭐가 미안한데?"


"치! 그럼 나는 응가야."


"그게 무슨 뜻이야? 응가라니!"


"나는 응가라고."


"준민이가 왜 응가야?"


"(따지듯이) 내가 보석 아니니까! 내가 응가지?!! 엄마가 나 미워하면 나는 응가야."


"아니야~~~. 안 미워. 제일 사랑해."


"그럼, 아까 왜 소리 질렀어"

"......."


"엄마 나 오늘도 보석이야?"


"그럼!"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그럼 아까는 또 까먹은 거야? 내가 보석인 거 까먹었어?"


"(ㅠㅠ) 미안해. 민이가 '엄마가 말해도 소용없어'하니까 엄마 말 안 들어줄까 봐 화가 나서 큰 목소리로 말했어."


"나도 화가 나니까 소용없다고 말했지!"


"아... 민이가 먼저 화가 나서 그렇게 말했던 거야?"


(끄덕끄덕)

"까먹지 말기다, 이제~?!!!"


"알았어. 미안해."


"진짜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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