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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달빛 Nov 26. 2021

엄마, 나 안 무섭거든!

그냥 안아달라고 말해! 아니 내가 그냥 안아줘도 될까?


며칠 전 네 살 민이 하원 하러 터전에 갔을 때였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터전이라 부른다. 네 살부터 일곱 살까지 함께 산다.


일곱 살 졸업반 형아들 셋이서 민이를 공격하고 있었다. 길이가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형님들이 민이에게 밀치기 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 위험해 보였다. 그래도 선생님도 함께 마당에 계신 상황이었고, 터전 푹신한 마당이니 아이들이 크게 다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도 있어서 나도 지켜보기로 했다. 민이는

 "안 무서운데? 괜찮은데?'

하면서 불안한 엄마 마음은 모른 채 형님들의 코털을 자꾸만 건드리다가 급기야 막 뽑아대고 있었다. 형아들은 결국 온 힘을 다해 준민이를 밀었고 준민이는 진짜 완전히 벌러덩 넘어지면서 바닥에 대 자로 뻗었다. 나는 내 아이를 구조(?)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아아아~~~ 형님들이 셋이서 한꺼번에 아랫방 동생한테 그르기 있냐~? 한 사람씩 해도 형님이라 민이가 어려울 거 같은데 셋은 너무한 거 아니냐~?"


말했다. 그리고 민이를 안아 일으켜 세우려는데 다가가려 하니 그 사이 민이는 벌떡 일어나 신발장 앞에 앉아있었다. 나는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민아, 안 아팠어?"


그러자 민이는 내 손을 탁 쳐서 밀어내고 고개를 휙 돌렸다. 나는 달려와 안겨도 모자랄 판에 너무 이상하다 느꼈다.

그때 같은 네 살 방 엄마가 옆에서 물었다.


"저런 모습 보면 어때요? 원(민이 친구)이는 지금 쫄았는데 민이는 겁이 없나 봐요. 친구들은 민이를 멋지다고 생각할 거 같아요."


했다. 순간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속마음은 눈물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음... 좀 짠하죠...."


이렇게 말했다. 그 엄마는 따뜻하고 마음을 잘 읽어주고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엄마다. 내가 좋아하는 엄마이기도 하다. 그 말도 맞았다. 우리 준이 키울 때는 '저런 깡 좀 있으면 좋겠다. 그래도 한번 덤벼라도 보지...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제발 목소리라도 내 보지' 생각했으니까... 정말 맞는 이야기다. 근데 그냥 최근 내 마음은 그렇다.


집에 오면서 차 안에서 민이에게 물었다.


"민아, 오늘 형아들이 밀치는데 안 무서웠어?"


또다시 고개를 휙 돌리며


"안 무서워!!!"


하는 민이.

나는 마음이 싸하게 불편해졌다.

이그~ 내가 형아한테 조금만 큰 목소리로 이름 불러도 잽싸게 와서 '으헝헝 무써워'하고 안기면서... 불 꺼져 있으면 '엄마 나 무터워 불 켜죵' 이러시면서... 민이가 얼마나 겁 많은 아이인지 이 에미가 아는데 왜 구래...


다음날 터전 독서 모임에서 책을 두 권을 추천해줬는데 나는 바로 구입했다. 나와 준이와 민이가 함께 읽고 싶은 책이었다.

 

아홉 살 마음 사전/박성우/창비 출판사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이현정/달달북스


 아침에 톡 보고 주문했는데 퇴근하니 집 앞에 있는 무섭게 감사한 퀵배송!


일단 민이를 데리고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을 읽었다. 마지막 부분에 반전은 아니지만 심쿵 울컥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 건 말하는 거 아니니까 패스하고...


요 부분을 펼치고 읽을 때였다. 내가 '싫어'를 읽자마자 와락 달려들어서 나를 꼭 안는 것이다. 천둥 칠 때 그랬듯이 말이다.  머리를 내게 파묻고 고개도 못 들고 있는데 계속 읽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잠시 있다가


"민아, 엄마가 민이한테 하는 거 같아? 엄마 그럼 벽 보고 할게. 여기 벽에 점 있지? 여기다가 말해볼까?"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는데 궁금한 표정이었다. 나는 최대한 살살 부드럽게 감정 빼고 '싫어 미워 안 해'를 했다. 조금 조용히 말하니 민이 마음이 괜찮은 듯 보였다. 뒤로 넘어가서 '힘내, 주세요, 할 수 있어' 등은 내가 읽자 쉽게 따라 했다.

끝까지 읽으니 또 읽어달라며 아까 그 페이지를 펼치는 민이


이번에는 내가 벽에 대고 조금 힘줘서 읽어 보았다. 그리고 민이도 한번 따라 해보라 했다. 그러자 씨익 웃기만 했다. 잠시 뒤 입을 둥글게 모으고 장난치면서 시로~~ 미우어~~ 아안해애~~~ 했다. 웃음기가 좔좔 흘렸다. 또 이 잔소리 병이 줄줄줄 나오려는 것을 '쫌 앞서 가지 말자~'하며 애써 참았다.


그러고는 그 부분을 또 읽어달라는 민이. 나는 아까와 비슷한 톤으로 읽었다. 오! 그러자 또렷하게 따라 하는 민이.


싫어, 싫어

안 해, 안 해

미워, 미워


그러고는 다시 읽어달라고는 안 했다. 아니 누군가와 내가 전화기로 뭔가 이야기를 나눠서일 수도 있다. 우리는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누워서 민이에게 이야기했다.


"민아, 무서울 땐 무섭다고 하는 게 진짜 멋있는 거야."

"왜? 그럼 다른 사람이 더 쎈 거잖아?"

"무서울 때 무섭다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 왜냐하면 어려운 거니까. 그 어려운 걸 하는 사람이니까 멋있지 안 멋있겠어?"


조용한 민이.


왜 이렇게 미안함이 올라오는지...

나는 왜 이렇게 미안했을까...

아이의 기질과,

아이의 친구들과,

가정 아닌 아이의 다른 환경도 ...

영향이 없지 않을 텐데

오늘은 다 모조리 내 탓 같다.

내가 엄마라서 미안한 마음.


무섭거나 슬픈 상황에서는 화가 날 때가 있고

화가 날 상황에는 괜찮지 뭐~ 할 때도 많은 내가

이런 내가 엄마라서...


오늘 우리 민이 덕분에 엄마가 엄마한테 이야기해줬어. 안 괜찮은 건 안 괜찮은 거라고...

라떼 가수-가창력으로 승부하던-'진주'가 부른 이런 노래가 있었지.

'안 괜찮아~ 안 괜찮아~~~~'


하아...

내게 없는 걸 아이에게 정말 줄 수가 없구나 하고

오늘 또 절실히 깨닫고...

나부터 애끼자 한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언제나 더 고마워. 준아 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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