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말고... 엉덩이는 넣어둘게요
비폭력대화 관련하여 기록해둔 글을 읽다가 '하지만'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정리하게 되었다. '하지만'이란 말은 앞의 말은 모두 지워버리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네가 정말 멋진 아이라는 것을 알아, 하지만...
이라고 말한다면 네가 멋진 아이라는 사실은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그러나', '근데', '그치만' 정도가 있다. 결국 앞에 나온 말 모두 소용없고, 하지만 뒤에 나올 내 말이나 들으시지... 가 될 위험이 있는 말이라는 내용이었다. 재미있고 와닿았다.)
마셸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 책에서도 화난 사람 앞에는 절대로 '하지만'을 들이대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화가 난 사람에게 'but(butt 엉덩이와 발음이 같음)'을 들이대지 말라며 웃음 섞어 이야기했는데 그에 얽힌 에피소드도 상당히 감명 깊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약물중독센터에서 근무하는 한 젊은 여성이 있었다. 밤 11시쯤 마약을 한 남자가 그녀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방을 내놓으라고 위협하였다.
그녀는 '하지만, 방이 없어요.'라고 말하려던 참에 그녀의 어머니가 자주 하던 말이 떠올랐다고 한다.
"네가 말끝마다 '하지만' 하고 말대꾸를 할 때는 정말 죽여 버리고 싶다니까..."
그래서 그녀는 '하지만' 대신에
"정말 방이 필요하기 때문에 화가 많이 나셨군요."라고 말했다."
그 남자의 욕구(방이 필요하다)와 느낌(화가 났다)에 집중한 것.
그 남자는 큰 소리로
"내가 비록 중독자라도 사람대접받을 자격이 있어. 부모도 나를 사람 취급하지 않지만 나는 사람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단 말이야."
라고 말했다 한다.
그녀는 계속 그의 느낌과 욕구에 주의를 기울였다.
"사람들에게 원하는 인정(욕구)을 받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시군요(느낌)."
30분 정도 이렇게 대화를 지속하자 그녀는 더 이상 그가 괴물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느낌과 욕구에 귀를 기울이자 그도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그 남자는 필요했던 공감을 받자 칼을 거두었고, 그녀는 그 사람이 방을 구할 수 있게 다른 센터에 연락을 해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아침에 민이가 유독 일어나기 힘들어한 날이 있었다.
"엄마~ 쪼오오끔만 더 자고 싶어."
마냥 짜증을 내거나 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명확하게 이야기하고는 눈을 못 뜨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하지만, 어린이집 갈 시간이 지났어."
라고 말하려다가 이 내용이 번쩍 떠올랐다.
나는 바로 '하지만'을 거두고 민이의 느낌과 욕구에 집중했다.
"쪼끔만 더 자면 좋겠어? 엄마가 일어나라 하는데 못 일어날 만큼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구나?"
그랬더니 얼굴을 베개에 묻으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응 더 자고 싶단 말이야."
했다. 나는 오전에 온라인 강의에 접속해야 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엄청 급했다. '하지만' 말고 뭘 쓰지? 하니까 '그런데'가 마구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데'나 '하지만'이나 그게 그거였다. 계속 '아이의 느낌과 욕구에 집중하자'를 염불 외우듯이 되뇌었다.
"더 자고 싶구나. 너무 피곤해.. 우리 민이 더 자고 싶어..."
그런데 아이의 욕구를 이렇게 계속 집중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그러면'으로 옮겨갔다. 신기하게 아이의 욕구가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러면 못 일어나는 거 같으니까 엄마가 옷을 가져와서 입혀줄게. 그동안만이라도 조금 더 잘래?"
라고 말했다. 민이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옷방에서 옷가지를 챙겨 와서 민이에게 다가갔다.
"민이 너무 졸리니까 엄마가 양말 신기고 옷 입히는 동안 쪼오오끔만 더 자."
했더니 슬쩍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저리 몸을 굴리며 옷을 입히자 점점 깨어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가야 할 시간이야. 그러니까 어젯밤에 일찍 자랐지? 지금 안 일어나면 형아랑 엄마만 간다.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었는데 나에게도 다행스럽고 아름다운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