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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달빛 Dec 24. 2021

빛이 나는 우리 둘째

나중에 꼬옥 보여줘야지

준이 민이 어린이집은 공동육아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방모임이라는 게 있다.


'방모임'


연령별 교사와 부모가 모여 우리의 아이들에 대해 밤늦도록 이야기하는 모임.

선생님들께서는 아이들이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개별 이야기, 아이들 간 관계 이야기를 상세히 나눠주신다. 아마들은 집에서는 어땠는지 이야기를 주고받고, 등하원 때 본 서로의 아이 모습에 대해 느낀 점을 더하여 아이에 대한 퍼즐을 맞춰간다. 그러면서 교사와 부모가 모두


'아, 그 아이가 그래서 그랬구나.'

혹은

'아, 혹시 그럼 이래서 이런 거였을까?'

등을 논의한다. 물론

'그럼 우리가 함께 그 아이를 이렇게 도와보자.'

까지 이른다.

한 달에 한번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아이에 대해 부부처럼 가족처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첫 아이를 입학시키고는 방모임 때마다 울었다. 다른 엄마들 이야기를 들으면 어쩜 그렇게 아이들의 마음을 잘 살피고 말투도 다정한지 늘 우리 아이가 나의 아이인 것이 안쓰러워지고는 했다. 이런 안타까움이 나를 많이도 성장하게 한 것 같다. 교사회의 아이를 기다리는 시선을 배우고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같은 방 부모의 도움을 받으면서 나는 아이를 그 아이 자체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음... 되어 가는 중이다.








며칠  일곱  준이의 방모임이 있었다. 워낙에 조심스러운 성향에 속마음도 쉽게 털어놓는 아이가 아닌지라 방모임에 가서 뒤늦게 퍼즐 맞추는 일이 많기에 준이는 신경이 쓰인다. 그날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터전(우리는 어린이집에서 함께 살기 때문에 터전이라 부른다. 어린이집보다 익숙해서 터전이라는 단어를 쓰게 된다.)에서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온 친구들이 있는데 사실은  친구들이 아닌 다른 친구인 훈이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준이는 훈이가 자신을 몹시 싫어할 거라 생각해서 감히 다가가지를 못했다. 훈이 엄마와 준이와 훈이의 마실을 계획하고 이후 상황을 나누기로 하고 마무리.








  준이의 방모임은 가도 너무나 여유롭다. 내게 가르침을 주던 선배의 자리에 이제는 내가 있다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이미 겪은 일을 나눠주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의 시행착오를 나눌  있어 감사하고, 첫째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의 마음이 너무  느껴져서 저절로 응원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째 민이의 성격  걱정이  된다. 눈치 빠르고, 사랑도 많아서 친구들과도  지내고 선생님들도  도와주겠지 싶어서다. 생각해 보면   준이의 힙시트가 되었던 우리 민이는 준이랑 씨름하는 것이 태교였는데 뱃속에서도 어찌 이리 빨리  컸는지...  그렇게 둘째는 알아서 저절로   같다.








그런데 어젯밤에 민이 선생님께 톡이 왔다.


"초심~

요즘 민이 집에서 어때요?

이번 주 내내 민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서요..

많이 웃지도 않고요...ㅠㅠㅠㅠ

낮잠 때도 예전 같으면 옆 친구랑 좀 키득키득하다가 바로 잠이 드는데

요즘은 그냥 두면 두 시(1:20 경부터 누워요) 넘어서까지 그냥 깨어 있어요.ㅠㅠ"



'많이 웃지도 않는다'는 말에 가슴이 덜컹했다. 요즘 학기말이라 생활기록부 마무리로 바쁜 데다가 이사 관련해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계약 진행한다고 마음이 붕 떠있었는지 아이의 웃음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가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기억을 마구 뒤적이며 이유를 찾았다.


최근에 코가 막혀서 밤에 자주 깨더니 그래서 그럴까

친정 엄마가 영상을 보여주셔서 그럴까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가 없어서 그럴까


아이가 할머니와 나눈 대화도 생각났다.


"할머니, 할머니는 아기 때 누가 돌봐줬어?"


"응, 할머니는 할머니 엄마, 민이 왕할머니가 돌봐줬지!"


"음, 그럼 삼톤(삼촌)은?"


"아, 내가, 할머니가 돌봐줬지."


그날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나에게


"엄마, 나빠!"


하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돌보게 하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일까? 터전 안 가고 엄마랑 있고 싶을까? 터전에서는 잘 지내는 거 같았는데.


아, 그러고 보니 잘 때 더 품에 파고들었던 거 같기도 하고...





뭐지? 왜지? 하고 있는데 그때 선생님께 다시 톡이 왔다.








초심~

민이가 '엄마, 나 좀 봐~' 하는가 봐요.


어제 동지제도 그렇고

곧 다른 어린이집에 가는 것도 그렇고

감기 기운도 있고 등등 복합적인 이유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게 아닐까요?

민이가 '나 좀 들여다 봐줘'하는 신호를 보낸다고 생각하고 잘 보면 좋을 거 같아요.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이네요.

따뜻하고 즐겁고 충만한 크리스마스이브 보내시길요.









'아 큰일 났다 큰일 났다' 좌로 달리고 우로 달리던 마음에 긴 숨이 들어갔다.





민아~

그래그래 내가 바라는 바다.

우리 눈 마주하고 더 많은 이야기 나누자.

우리 민이랑 대화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는데.

오늘 마침 준이 형아 훈이 형아한테 마실 가는 날이니 우리 둘이    마시면서 찐하게 데이트하자.

엄마가 얼른 갈게.

그리고 정말 정말 사랑해~
다른 사람 말고 엄마가 우리 민이 돌볼게!


2021.12.24. 민이를 최고로 사랑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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