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남편

퇴근하는 아버지가 손에 든 건 사탕이 아니라 사랑이다.

남편 6

by 오달빛

남편이 한 번도 알려준 적은 없지만, 남편에 대해 확실히 안다고 자부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아내인 내가 언제 제일 미운지'에 대해서다.

눈빛과 목소리가 달라지고, 여파도 오래간다.






며칠 전 일이다.

딩동댕 초인종 소리에 얼른 문을 열었더니 그토록 기다리던 아빠가 문 앞에 서계셨..고~

아빠가 반가운 아이들은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오늘은 뭐 사 왔어?"


"너희 양치했어? 안 했으면 오늘은 '와다닥'이야. 사탕 같은 건데 입 안에서 톡톡 튀는 거야."


'엥, 와다닥?'


나는 이를 꽉 깨문다. 으드득


'무슨 이 밤중에 사탕이야. 그것도 그렇게 자극적인 걸.'


첫째도 첫째지만 형이 먹는 건 무엇이든 따라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둘째가 더 걱정이다. 워낙 오동통해서 과체중이 걱정되기도 하고 치아 상태도 좋지 못해서다.


"우와. 아빠 지금 먹을래, 우리. 먹고 다시 양치하면 되잖아."


아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얘들아. 양치했으니 내일 먹어."


아이들이 내 눈치를 살피며 아빠에게 구조요청의 눈빛을 보낸다.


"알았어. 아빠가 양치해줄게, 하나씩 먹어."






오늘은 가족 넷이 아차산에 다녀왔다.

아이들과 하산길, 다리가 풀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낮잠 시간이 지나 졸린 민이와, 동생만 많이 업어줘서 울적한 준이 모두 살짝 지쳐있었다. 차를 타기 전에 우리는 화장실에 들렀다. 여성인 나는 가벼운 몸으로 재빨리 마치고 나왔는데 남성팀은 조금 걸리는 듯했다. 잠시 후 손에 물이 묻은 아이들과 남편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아빠~ 이제 젤리 줘."


"알았어. 이따가 줄게."


"아아 왜애애? 손 씻으면 젤리 준다고 했잖아. 지금 줘."


"아니, 근데 우리 만둣국 먹으러 갈 거니까 그거 먹고 줄게"


"아아 싫어어! 손 씻으면 준댔잖아."


아이들은 차로 가는 길 내내 졸랐고, 만둣국 먹으러 가는 차 안에서도 졸랐다.

나는 심기가 불편했다.


'아니, 보상은 빨리, 즉각적으로 모르나? 아이들이 사탕의 노예가 되고 말 거야'


참다못한 나는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여보, 그냥 얼른 주는 게 어때? 보상은 바로바로."


남편은 잠깐 망설이다가


"알았어. 애들 밥 안 먹을까 봐 그랬지."


하고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알았어. 대신 가서 밥 많이 먹기다."


하며 가방을 뒤적였다. 젤리를 입에 넣은 아이들은 그제야 만족한 얼굴로 고요해졌다.


나는 마음이 편안해지려다가 '아차' 싶었다.


"으, 남편이 이런 거 싫어하는데..."








오늘 책을 읽다가 '협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남편과 자주 일어나는 '나의 끼어들기' 상황을 떠올릴 때 남편이 참 내게 협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몇 번을 돌이켜보니 '협력'이라는 말이 새롭게 와닿았다.

나는 '내가 시키는 대로' 혹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협력이라 여겼던 거 같다. 그래서 '양치 다 했는데 사탕을 사 온' 남편이 참 비협조적이라 생각했고, 아이들이 잘 자라게 하고 싶은데 '젤리를 나중에 주는' 남편이 육아에 있어 나에게 협력하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런데 협력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그 순간에 협력할 마음이 없던 사람은 남편만이 아니라 아내인 나도였다.


남편은 아이들과 무엇을 도모하는데 내가 이렇게 끼어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물론 '끼어든다'는 것은 남편의 워딩이다.

남편이 '왜 끼어드냐'라고 말하면 나는 그에 대한 대응으로 주로 권위에 호소하고는 한다. 내가 또 '무슨 강의에서 들었네', '어느 책에서 보았네' 등으로 접근하니 '너 정말 틀렸어'로 들었을 것이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하는 엄마 덕분에 아이들이 요동하면서 남편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적도 있어서 더 싫었을 것이다.

이제야 알았는데 아내는 나를 진짜 안 도와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더 생각해보니 '남편이 아이들에게 젤리를 나중에 주겠다고 한 것'은 나를 생각해서(라고 쓰고 '내 눈치를 살피느라'라고 읽는다.) 그랬을 수도 있다.

'밥 먹을 건데 또 웬 젤리냐'라고, '아이들을 젤리의 노예로 만들 셈이냐'라고 하겠지? 이러면서.

한 번은 남편이 '밤에 손에 뭔가 들고 들어오는 아버지에 관한 로망'을 들려준 적도 있던 거 같다. 아버님께서 퇴근길에 사 오셨던 '매머드맘모스 빵'의 추억도 들었던 거 같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아내가 참 비협조적이었네.






아이를 함께 키우는 부부인 우리는 대부분 같은 욕구에서 만난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부족함 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며, 자유롭게 세상을 탐색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은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날 것이다. 서로 다른 것을 원해서 부딪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욕구는 언제나 다양한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다. 즉, 여러 방식으로 충족할 수 있다. 그 방식은 다르더라도 욕구는 일치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와 연결되고 사랑을 나누고 싶은 욕구는 사탕을 주는 것으로도, 사탕을 주지 않는 것으로도 충족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협력이다.

내가 깨달은 협력이란 욕구를 충족하는 상대의 방식(도구, 수단)을 먼저 존중하는 것이다. 어떤 욕구를 충족하는 데는 나의 방법만 한 게 없다는 접근은 가장 비협조적인 태도일 것이다. 상대의 방법을 소중하게 다뤄주고 그 가치를 높이 살 때 비로소 협력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비폭력대화 강의에서도 욕구는 꼭 쥐고, 수단은 언제든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게 살살 쥐라 했는데 그게 이제야 찐하게 와닿는다.






하루를 돌아보니 그래도 남편과 내가 날을 세우던 예전과 달리 대화가 젤리처럼 말랑해진 거 같다. 서로 물어보기도 하고, 상대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용서할 수 없는 게 있다.





"왜 만날 내 사탕이랑 내 젤리는 없는데?"(그래서 화난 거 아니다! 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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