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5
"여보, 나도 출장 갔다가 바로 가야 해서 차 가져갈 거 같아."
퇴근길 남편의 문자에 나는 무언가 훅 올라옴을 느꼈다. 답답함을 넘어서... 표현을 더 극적으로 치닫게 하자면... 지겨움 같은 것?
어린이집 방학 주간이라 아이들은 시댁에 가 있고 나는 홀로 집에서 한가한 밤을 보내고 있던 어제,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남편: 대전에서 지금 끝나 이제 서울 가고 있어. 내일 비폭력 갈 때 차 가져가?
나: 응 가져가려고. 학교에서 짐도 좀 가져와야 하고 차편이 너무 안 좋더라고.
남편: 응 알았어. 난 대중교통으로 가려고 해
나: 아, 그럼 올 때 같이 오자.
남편: 근처 주차할 곳 없던데 주차 어떻게 하려고?
나: 글쎄, 그 생각을 안 했네. 주차 공간 있는 줄 알았는데.
남편: 응 없더라고... 근처 아파트에 방문 주차해야히나?
나: 아.. 알아볼게. 안 되면 놓고 가야겠다.
저리 이야기했지만 사실 걱정은 되지 않았다. 중재 선생님 다리에 깁스한 상황이라 선생님 댁 근처 스터디 카페로 가는 거니, 선생님 아파트에 주차하면 되지 않을까? 안 되면 좀 멀더라도 공영주차장에 대면 되지. 정 안 되면 어디 음식점에서 밥 먹고 대지 뭐, 유료 주차라도 있겠지. 그런 생각.
드디어 삼자대면의 날이 밝았다. 중재를 신청하면 중재자가 먼저 남편, 아내와 각각 사전 대화 시간을 갖고 그 뒤 남편, 아내가 중재자와 함께 만나 본 대화를 나눈다. 우리는 따로 시간 맞추기가 어려울 거 같아 사전 대화와 본 대화를 하루에 하기로 했다. 또 나는 이미 선생님과 전화로 이야기를 좀 나눈 상황이라 가능한 일정이기도 했다.
출근길 중재 담당자께(이하 선생님) 문자를 드렸다.
"선생님 죄송한데, 근처에 혹시 주차할 곳 있을까요?"
곧바로 선생님 댁 동 호수를 알려주시면서 아파트 주차장에 대라고 하셨다. 감사히 차를 가져가면 되겠다 생각하고 남편에게도 그 문자를 공유했다.
"여보 혹시 차 쓸 거면 참고해."
몇 주 전 NVC2 교육을 받으러 간 첫날 일이다. 이상하리만큼 긴장이 안 되었다. 새로운 장소에 모르는 사람들과 둥글게 둘러앉아 눈을 마주치고 있는데 말이다. 보통 긴장하고 조금씩 적응해가는 게 패턴이었는데 그냥 우리 집에 앉아 있는 마음, 집에서 아이들과 대화하는 마음, 백 번 정도 만난 사람하고 이야기하는 마음 그 정도였다.
워크숍을 시작하기 전에 강사분께서 혹시 배려받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달라고 하셨다. 이날 그 워크숍의 목적에 엄청 충실했다. 느낌과 욕구에 집중하기로 너무 마음먹은 상황이었나 보다.
"저요, 히터 소리가 너무 커서 강사님 말씀이 잘 안 들려요. 그리고 히터가 얼굴로 내려오니까 건조하고 눈이 아파요."
속으로는
'그래도 추운데 어떻게 꺼? 그리고 그렇게 크게 불편한 건 아니잖아? 강사님 목소리도 집중하면 아예 안 들리진 않고. 다들 건조한데 꼭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아 일단 말이라도 해보자. 연습 삼아 말해보는 거지. 여기는 안전한 공간이니까.'
의 목소리를 선택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강사님께서는 히터를 꺼주셨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대화할 때는 히터를 꺼도 괜찮을까요? 여기 따뜻한 전기난로 몇 개가 있으니 그것을 활용하면 어떨지 제안드려 봅니다. 창문 열고 환기할 때, 우리가 쉴 때 그때 히터를 틀어서 온도를 좀 높이도록 해볼게요. 담요도 있으니 쓰시면 어떨까 하는데 다른 선생님들 괜찮으세요?"
이후로 워크숍 참가자 한 분이 어깨에 점퍼를 걸쳤을 때 미안함이 조금 느껴졌던 거 빼면, 히터의 불편함에는 조금도 에너지 쓰지 않고 집중할 수 있었다. 참 감사한 기억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워크숍 프로그램 중 경청하는 연습을 위해 일대일로 경험을 나누는 시간 있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그대로 상대에게 반복해서 들려주는 것이다. 반영이라고 하던가. '반영'하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 옆자리에 앉은 남자분과 1:1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게 싫었다. 남자분은 자신을 소개할 때 '책도 많이 읽고, 상담 비슷한 일 하고 있어요.'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마음속에서 신뢰가 안 갔다. 상담이면 상담이고 아니면 아니지 왜 말씀을 저렇게 하실까 하고 공감도 못 했다.
그런데 히터 빚(?) 이후에 파트너를 바꿔달라고 하는 것은 못 하겠기에 '이것도 연습이고 나에게 도움이 될 거다, 해보자' 했다.
예상대로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없었고, 내 이야기도 겉 이야기만 대충 나누고 있음을 발견했다.
대화를 마치고 후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경청하는 연습을 했으니 '그동안 내가 했던 것은 경청이 아니었어요.'에서 시작해서 '그대로 반영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어요'등의 반성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계속 떠올라서 그런 거 같아요.' 등의 훈훈한 자가진단 소감이 이어졌다. 내 차례가 되었다.
조금 망설였지만, 날 잡았는지 또 이야기했다.
"저는 옆자리 선생님과 1:1로 대화하는 것이 좀 불편했어요. 남자분이 저를 얼마나 공감해주실까 하는 편견도 있고, 아직 래포도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저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좀 집중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내 평생 '프로 편러'로 살았는데 '프로 불편러'로 등극하는 날인가요? 불편 세포가 긴긴잠에서 깨어나고 있어요.' 살려주세요!)
옆자리 상대분께서 말씀을 더하셨다.
"오 저도 그대로 느꼈어요. 이분이 '내가 싫나' 생각했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옆자리 계신 분은 '신부님'이셨고, 선입견 없이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일부러 숨긴 것이었다. 나는 검은 옷 입은 분이 뭐 하는지 자꾸 숨기는 것이 미심쩍었던 거고. 다른 분들은 이미 NVC1을 함께 듣고 온 분들이 많아서 신부님인지도 알고 있었고 어느 정도 래포도 서로 형성된 상황이었다. 대면으로 교육받은 분들은 이렇게 1:1 대화 연습이 된 상태인데 반해, 온라인으로 들어서 강의식으로만 접했던 나는 충분히 어색하고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긴 했다.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그런데 그렇게 불편함을 표현하고 나니 뭐랄까 엄청난 힘이 내 안에서 샘솟는 게 느껴졌다. 그때도 참고 넘어가면 참을 수 있었고, 당연히 그 정도 불편함은 나의 배움을 위해 감수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지나 보낼 수 있는 그냥 평소에도 접하던 일상이었다.
'다 편할 수는 없지.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하자.'
감지덕지 마인드.
내가 엄청 세진 이 느낌이 뭔지 집으로 돌아가면서 느꼈다.
나에 대한 고마움.
스스로에 대한 신뢰.
내가 내 편이라는 찐한 연결
자신감이 샘솟는 게 이런 느낌인가?
아이들 중에도 자기 불만을 잘 표현하는 아이가 있고, 우물쭈물하면서 이야기하는 아이가 있다. 나에게 히터 이야기와 신부님 이야기를 한 아이는 후자에 속했을 거 같다. 그런데 내가 그 속삭이듯 한 이야기를 들어줬기에 얘가 좀 큰 거 같다.
오 너는 나를 진짜 도울 마음이 있구나.
나의 안위가 다른 무엇보다 너에게 중요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나에게 드는 감사함.
활기차고 생기 있고 에너지가 도는 느낌.
퇴근길 남편 문자에 좀 과한 화가 나는 내가 의아했다. 뭔지 모르겠는데 내 입에서는
"또 이래, 또 이래."
가 튀어나왔다.
중재 선생님께 가는 차 안에서 머릿속에 튀어나오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았다. 의외의 이야기가 들렸다.
이봐. 자기도 주차장 필요했잖아.
내가 물어봐줘서 자기도 편하잖아.
그럴 때 자기가 먼저 좀 물어볼 수도 있지 왜 나만 해야 돼?
나만 또 센 여자가 되는 거 아니야?
나에게 또 이기적이라고 하겠지?
남은 돕는 걸 즐기는데 왜 남이 나를 돕는 건 그렇게 불편해?
왜 나만 또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거야?
왜 만날 불편함을 다 참고, 그러다 내가 이야기해서 불편함을 해소하면 거기에 무임승차 해?
자기는 못하면서.
불편함의 경중을 누가 이야기할 수 있어?
이 정도 불편함 정도는 참아도 된다고 누가 그래?
서로 느낌이 다른데, 불편 무게를 잴 수도 없고.
머릿속에서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내가 히터 이야기를 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구나 하면서 스스로가 더 안쓰러웠다. 남편만큼 나에게도 불편함을 표현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구나. 그런데 하고 있구나. 이야기하면서도 스스로 이기적이고, 이것도 못 참는다고 탓하고 있었구나.
"사실은 선생님께 주차장 물어보는 것도 그렇게 어려웠어? 큰 용기 낸 거였구나." 아이구 토닥토닥
남편은 정말 부탁을 하지 않는다. 혼자 싸매고 해결하고 말지 불편 끼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사람이다. (남편에 '나'를 넣어도 아주 잘 읽힌다.) 그럴 때 소외되는 건 자신이다. 불편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지겠지. 그러다 나중에는 안 들리는 게 아니라 못 듣겠지.
에구 어쩌겠어.
그래도 내가 먼저 첫걸음마를 떼었으니 배밀이하고 있는 남편의 작은 목소리를 들어주어야지. 토닥토닥
(그러다가 "왜 나만 걸어...?? 다리 아픈데?" 할 수 있음 주의.)
예전에 '푸름 아빠 거울 육아'라는 책에서 인도 거지에 대해 읽은 기억이 있다.
예전에 나는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감사하게 받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
...(중략)...
의식이 성장하면서 나는 인도의 거지 같은 마음이 됐다. 인도 거지는 구걸할 때도 비굴하지 않다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 때 ‘내가 당신에게 선을 베풀어 열반으로 갈 기회를 주었으니 당신이 돈을 주고 싶으면 주세요’라는 마음으로 구걸한다고 한다. 돈을 주면 감사함을 표현하고 돈을 안 주어도 괜찮은 것이다. 돈을 주는 사람도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주어 자신이 사랑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둘 다 하나가 되는 마음이고, 그것이 끝이다.
누구나 서로에게 기여하는 것을 기뻐한다는 믿음이 있다. 그게 진짜 비폭력대화(NVC)에서 이야기하는 연결이기도 하다.
요런 인도 거지 마인드가 작은 목소리를 듣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