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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달빛 Dec 30. 2021

나의 유튜브 좋아요 목록이 알려주는 것들

그냥 하지 말라(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유튜브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문득 나의 '좋아요' 목록이 궁금해졌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요즘 사람들은 유튜브에서 정보를 얻는대요. '네이버'에서 찾는 사람은 옛날 사람이에요.' 하는 놀림에도 꿋꿋이 네이버만 팠던 거 같은데 좋아요 목록을 눌러보니 100개 가까이 되었다. ​


스압(스크롤 압박을 신세대는 이렇게 부르지. 옛날 사람 아님 주의)을 이겨내고 한참을 내려가자 맨 아래에 배드민턴 치는 여성이 나왔다. 와~ 이때 아이 낳기 전에 남편이랑 배드민턴에 푹 빠졌었지. (추억추억) 매일 레슨 받고 클럽 나가고... 취미가 같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 중요한 부분이야. 그때 우리 싸우고도 배드민턴 치러 함께 가려고 화해했었지...! 배드민턴을 위해 고이 접었던 나의 자존심들아. 지금은 잘 있니?


혼합복식과 여성복식 영상 몇 개를 지나니 '김어준의 파파이스', '손석희의 앵커 브리핑'에 '끝까지 판다'(?)와 같은 영상이 주욱 나왔다. 아마 최순실 님의 존재가 나를 그 세계로 다시 끌어들이셨었지 않나 싶다.


영차영차 좀 더 올라가니 '엄마가 해주는 남자아이 머리 자르기, 남편 머리 다듬기' 등이 나온다.

아이고... 기억난다, 기억나. 아이 뒷머리를 헬멧 쓴 거처럼 잘라놓았었지. 친정엄마 등짝 스매싱 손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후문이... 우리 남편은 내가 잘라준 뒤 한 달가량 안 바르던 왁스를 떡칠하고 다녔지.(왜인지 전혀 모르겠다.) 그래도 그 나름 전문가 과정 밟는 학원 강좌도 듣고 그랬다. 그땐 그랬지.


그리고 나의 사랑 정현이 언니. 롤링 인 더 딥,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등등. '나는 가수다'도 좋았고 '비긴 어게인'도 좋았는데 요즘은 티브이를 안 보네. 박정현 천상의 소리~


그리고 드디어 아이 어린이집 소개 영상.

여기까지 잠시 정리하면​


나라는 여자는 결혼하고 남편과 배드민턴을 치면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다 아이를 낳았다. 남편과 아이, 둘의 머리를 다듬으며 아이를 키워서 어린이집에 골인시켰다.

그 뒤부터는 요리 레시피다. 베이킹, 동치미, 꼬마김밥, 잡채, 고등어조림, 호떡, 갈비탕.... 아이고 많다.

휴직하고 남편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을까? 크 그때 첫 휴직 달콤할 줄 알았지... 찐 육아로 입대!


그 뒤는 '수채화'? 뚀잉


그 뒤는 '피아노 반주'? 응? 심지어 '콩쿠르 나가서 점수 잘 받기'? 오! 그러고 싶었지. 맞아. 콩쿠르 같이 생긴 거 그런 거 포기 못했었지. 내 꿈은 피아니스트였지. 30 넘어서 찾은 적성이라고 해두지. 연주하다 돋는 소름이 진짜 소름이거든.

다양한 취미를 지나니 자기 계발 코치의 영상이 꽤 많이 있다. 그분이 업로드한 책 소개, 어플 소개, 아침 운동, 감정 관찰 영상 등을 충성도 있게 성실히 시청했던 듯하다. 아이와 집에만 있으니 뭔가 후퇴하는 거 같고, 어른이랑 이야기하고 싶고 그랬을까? 그의 가르침은 떠났어도 '좋아요' 목록에 그는 남았어라.

더 위로위로 올라가니 책 읽어주는 채널들이 나온다. 다양한 책이 많다. 오디오북 대신으로 들었나 보다.


미국 주식도 중간중간 섞여 있고......

오... 미국 주식하다 슬퍼졌을까? 탈룰라 급으로 갑자기 명상 영상이 나온다. 김상운 님의 왓칭 영상과 목사님의 설교. 아~멘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음악가. 김서정 님이 등장하는 영상들.


또 내가 사랑했고 지금도 존경하는 노회찬 의원님 영상들....


​그리고 먹방 영상들이 시작되었다. 이때 둘째가 생기고 입덧 때문에 꽤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저혈압, 저혈당으로 픽픽 쓰러지고 그랬다. 맛있게 먹어주는 그 영상만이 힘이었다. 꿀~꺽. 지금은 내가 더 많이 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리고 어디 보자. 하하하. '유체 이탈'???!!!

나를 스토리텔링하는 동화에세이 작가의 발버둥이 그대로 있다. 나를 찾아라~! 마음 치유, 마음공부, 무의식 정화, 뻔한 자존감은 그만, 내면 아이 명상, 동시성 현상, 거울 명상, 에너지 주파수 올리기, 시크릿, 끌어당김...  정말 많다. 이때쯤에 공황 장애로 병원도 다녔던 거 같고... 최면 치료실도 노크했었지... 그랬었다. 토닥토닥

뺨풍선을 쓰면서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무지 받았었는데 그것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양한 도구로 다양하게 그리는 미술 영상.

(이렇게 나의 유니크한 인생에 음, 미, 체가 완성되었다!)

돌아보니 나에게 감사하고, 그때 내 곁에 있던 분들이 참 감사하다.... 눈물 닦고 몇 개 안 남은 영상으로 가보자.

남정현 선생님 분지필화사건을 비롯한 시대 상황 모음. 올해 4월 복직해서 '김수영의 시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수업하는 데 쓸 자료를 찾고 있었다.

​​

참 열심히도 살았고 참 잘도 놀았다. 이것이 나의 모든 역사는 아니지. 나의 단면이지.

나만의 서사. 딱 나만 살아본 내 삶.


아무튼.... 뭔가 되게 행복하다.



읽고 있는 이 책도 무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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