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10
지난번 남편과 받은 중재 상담 때 일이다.
중재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대화 사이사이에 이 말씀을 반복하셨다.
"지금 남편분이 한 말을 반영해 주시겠어요?"
"지금 들은 아내분의 말을 다시 말해 주시겠어요?
나는 남편이 한 말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반복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했다. 쉽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내 워딩으로 바뀌었다. 미묘하게 더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내 단어로 남편의 단어를 교체하기도 했다. 분명히 그대로 옮겼다고 자신했는데 남편에게 남편이 한 말이 이게 맞는지 물으면 '그 말을 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남편도 내 말을 반영할 때는 진땀을 뺐다.
내가 한 말과는 아예 다른 이야기를 해서
"엥? 무슨 엉뚱한 이야기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내가 의도한 대로 의미가 전달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글을 쓰고 난 뒤는 독자의 몫이라 하듯이, 말하고 난 뒤는 청자의 몫인가 현타가 왔다.
중재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평소처럼 흘렀을 것이다.
"와 내 말 진짜 안 듣는다.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내 말 듣고 있어?"
라든가
"제대로 이해 안 되니?"
그러다가
"아오 대화가 안 된다"
중재 선생님과 함께 더디더라도 더듬더듬 남편이 한 말을 찾아가니 답답한 터널을 지나 시야가 확 걷히는 기분이 들었다. 진짜 의도를 찾아가니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해졌다.
또한 남편이 내 말을 반영해주니까 내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를 확인하면서, 내 말에서 내 뜻과 일치하지 않았거나 빠진 것을 말해줄 수 있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탁'이라 부르는 것은 비폭력대화의 '행동 부탁'에 가깝다. 예를 들어 "빨랫감은 세탁기에 넣어주시겠어요?"와 같은 것이다.
비폭력대화에서는 이와 구별하여 '연결 부탁'이라는 게 있다. 연결 부탁은 '반영', '표현' 두 가지를 요청하는 부탁이다. 내 말에 대한 상대의 반응을 알고 싶을 때나, 상대가 내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 연결 부탁을 한다. 이름 그대로 상대와 나를 연결하기 위한 요청이다. 위에 언급한 부탁은 반영을 요청하는 부탁이다.
나는 중재 상담 뒤로 어색해도 조금씩 연습하고 있다. 내 이야기가 상대에게 잘 전달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연습하기 가장 좋은 상대는 아이들이다.
"내가 한 말을 다시 이야기해줄래?"
라고 말했을 때 어린아이들은
"알아 알아~ 다 알아들었어. 내가 바보야?"
하고 반응하지 않는다.
"엄마가 한 말 잘 전달되었는지 궁금한데, 너희가 들은 것 한번 이야기해 줄래?"
하면 눈을 반짝이며 내가 한 말을 되돌려 준다. 그러니 정말 좋은 대화 연습 상대이다. 아이들은 내가 아무리 책을 읽듯이 어색하게 "무엇을 들었는지 말해줄래?"라고 말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준다. 그래서 입문자 코스로 아이들이 딱이다. 이러니 아이가 어른의 스승인가?
아이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생겨서 좋다. 나를 존중하고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남편은 아이들만큼 맑고 순수하지 않다. 흐리고 더럽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아무런 평가나 판단 없이 내 말을 들어주리라는 확신이 내게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남편에게는 아이들 상대로 하는 것과는 다른 연습을 한다. 내가 먼저 평가나 판단 없이 들을 수 있을까 시험해본다.
"여보 말은 이러이러한 말이야? 이렇다는 거지? 맞아?"
그렇게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한다.
남편과 달리 나는 빨래를 건조기에 넣어 말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빨래가 구운 오징어처럼 쪼글쪼글해지면서 줄어드는 것이 싫다. 수건 끝은 고사리처럼 말리고 흐물흐물해져서 걸레라고 해도 구별 안 될 거 같다.
햇볕에 고실고실하게 말려 송곳처럼 깔깔해진 수건이 좋고, 건조할 때는 방에 널어두었을 때 그 습한 느낌이 좋다.
남편: 여보, 이거 빤 거지? 목도리에서 쉰내가 나.
나: 아 그거 세탁기 돌린 건데... 목도리가 좀 덜 마른 거 같아.
남편: 실내에서 말리니까 쉰내가 나는 거 같아.
나는
"빨래 건조기에 돌리라는 말이지?"
라고 말하려다가
"목도리를 실내에서 말리면 쉰내가 난다는 말이지?"
라고 말해 보았다.
그러니 남편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남편: 응. 이렇게 두꺼운 건 실내에서 말리면 안 되겠어.
나: 아 목도리처럼 두꺼운 건 실내에서 말리니까 쉰내가 난다고.
나는 이어서 말했다
나: 그럼 목도리처럼 두꺼운 것은 방에 널면 안 되겠지?
남편: 응. 후드티랑 목도리같은 것은 밖에서 말리거나 건조기에 돌리거나 해야될 거 같아.
나: 알았어. 그건 건조기에 돌릴게.
남편도 나처럼 고슬고슬하게 마른 것이 좋은 것이지, 건조기가 좋은 건 아니었다.
그게 그 말이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뭐랄까? 시작하는 마음이다. 1+1부터 하는 마음.
그리고 남편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
내가 아이들이 내 말에 귀 기울여준 것에 감사함을 느꼈듯이, 남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음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
오늘은 머릿속으로 반영을 요청하는 시뮬레이션을 해보면서 갑자기 '복창'이 생각났다.
복창: 남의 말을 그대로 받아서 다시 욈.
명령이 중요한 곳에서 복창을 요구하는 것은 이미 '반영'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물론 복창과 반영 둘은 분명히 다르다. 반영은 연결을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영 실시!
세탁기 돌린 후 잘 마르지 않는 남편 후드티나 목도리는 건조기로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