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9
남편이 잘하는 말이 있다.
"나중에 한꺼번에 하는 게 편해."
"나는 시간 날 때 몰아서 하는 스타일이야."
나는 남편의 그 말을 들으면 머리가 쭈뼛하고 서는 느낌이다. 좌절스럽고 슬프기까지 하다. 머릿속에 줄줄이 이런 생각이 따라온다.
1. 화장실 거울 앞에 쌓여가는 치실을 내가 계속 치우든가, 그렇지 않으면 계속 보게 될 것이다.
2. 화장실 앞에 샤워하러 들어가면서 쌓아둔 빨래를 내가 세탁기에 넣지 않으면 계속 쌓여갈 것이다.
3. 남편의 귀를 판 면봉이 내 발에 채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3은 목격했을 때의 타격은 제일 크지만 빈도수에서는 1, 2보다 훨씬 떨어지므로 차치하고, 1은 아이들에게 '아빠와 양치할 땐 치실을 쓰레기통에 넣어달라'는 부탁을 해두었기에 나에게 남은 것은 2번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였다.
나의 욕구를 들여다본다.
나는 깨끗한 집을 원하나? 그런데 치우기는 싫은가?
그렇다면 쾌적한 공간에서 청소가 아닌 다른 할 일을 하고 싶은가? ok
이제 수단을 생각해 본다.
1단계: 쾌적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방법
-> 내가 볼 때마다 치운다.
-> 남편이 바로바로 치운다.
-> 청소도우미가 와서 치운다.
2단계: 내가 여유가 있으려면?
(여기에서 1안이 탈락한다.)
-> 남편이 바로 치운다.
-> 청소도우미가 매일 와서 제때 치운다.
오 좋은데? 하핫. ㅠㅠ 아니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불공평하고 불가능하다. 남편에게도 여유의 욕구는 있을 텐데? 그 여유의 욕구 때문에 나중에 한꺼번에 치우고 싶은 것 같은데?
게다가 청소도우미께서도 맨입으로 오시지는 않을 텐데? 매일 매시간 모시지 않는 한 청소도우미가 올 때까지 달라지는 게 없을 걸?
(좌절) 내 창의력은 여기까지인가?
그렇다면 다시 1단계: 쾌적한 공간 -> 내가 바로 치운다. / 남편이 바로 치운다.
와... 나는 여기에서 막혀버렸다. 둘 중 한 명의 욕구가 좌절되어야 가능한 것인가?
아닌데... 내가 배운 비폭력대화에서는 분명히 서로 욕구를 충분히 이야기하고 공감하다 보면 창의적인 방안이 떠오른다고 했잖아.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례를 수없이 봤고, 경험도 했고.
나는 일단 시작인 관찰과 느낌을 떠올렸다.
- 당신이 빨래를 화장실 앞에 쌓아놓으면(관찰) / 나는 힘이 빠져.(느낌)
훅 생각을 방해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요즘같이 날도 추운 때에 베란다에 있는 세탁기까지 어떻게 매번 갖다 두냐'라고 울부짖던? 아니 설명해주던! 남편의 모습. '화장실 앞에 빨래 바구니를 두면 거기에 넣을게.'라고 덧붙이기도 했지. 그런데 그 빨래 바구니도 내가 옮기지 않으면 계속 빨래가 충만하게 넘쳐흐른다. 결국 빨래를 모아서 내가 세탁기로 옮겨야 한다는 점은 변화가 없었다.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했겠지... 내가 함께 사는 동안 세 번은 말한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내가 싫어한다는 것을 몰라서 안 하지는 않을 테고, 저렇게 대답했던 남편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남편은 "나는 지금 마음에 여유가 없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건가? 나는 갑자기 남편이 짠해졌다.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마음에 사랑이 (빨래처럼) 넘칠 때.
나는 남편의 욕구를 중요하게 따라가다가 내 나름대로의 창의적인 방안을 생각해냈다. 역시 욕구에 집중하니 되는구나! 하루 할 일 중 제일 먼저 재빠르게 빨래를 하는 것이었다. 위의 모든 안을 제치고 '나에게 생각할 틈을 안 주고 등원하고 돌아오면 바로 화장실 앞의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기'로 한 것이다. 오전에 최대한 빠르게 이 일부터 처리하고 나면 그 뒤 나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복병이 있었다. 이것저것 벌여놓은 일이 많은 나는 바깥에서 하루 종일 일이 있는 일이 잦았고, 그럴 때는 하원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도 집에 들어오면 바로 겉옷은 걸고 벗은 옷은 세탁기에 넣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기 때문에, 집에 오면 남편 옷만 화장실 앞에 흩어져 있는데 그걸 보는 마음이 내내 괴로웠다.
그뿐이 아니었다. 분명히 내 욕구를 위해서 내가 움직이고 있는 아침에도 그 빨래를 안아 올릴 때마다 뭔가 유쾌하지 않고 초라해지는 느낌을 씻을 수 없었다.
나는 대체 이 화장실 앞 빨래랑 무슨 원한이 진 걸까?
어릴 적에 빨래 아무 데나 둔다고 엄마한테 죽도록 맞았나? 아빠한테 질리도록 잔소리를 들었나?
아니면, 작은 불똥이 튀었는데 화장실 앞에 쌓아둔 빨래에 불이 붙는 바람에 그만 집이 홀랑 타버렸다거나, 화장실 앞에 쌓인 빨래를 밟고 미끄러져 뒤통수를 크게 다쳐 구급차에 실려갔다거나 하는 뉴스를 어릴 적 보고 트라우마가 생겼나? 그것도 아니면 전쟁 때 노예로 붙잡혀 가서 적국 장수의 빨래만 평생 하다 죽은 귀신이 붙었나?
하아... 나는 그게 신경 쓰이는 내가 미워졌다. 네네.. 나를 향한 비극적인 욕구의 표현.
그래 비극적이다.
별 수 없지... 다시 욕구로...
그럼 내 욕구는 대체 뭐야? 엉? 왜 내가 치워주는데도 마음이 깨끗하지 않고, 어? 깨끗한 공간 원한다고 해서, 어? 치우는데? 어? 왜 그래? 엉?
놓친 욕구가 있었을까?
쾌적한 공간에 머물고 싶은 마음보다 더 큰 욕구가 있는데 내가 못 본 거 아냐?
으아. 알았다. 나야, 미안해. 알 것 같아.
나의 욕구는 '협력', '배려', '존중'이었어. 협력, 배려, 존중을 쓰는데 긴장이 풀린다. 남편이 내 욕구를 소중히 돌봐주기를 바라고, 나의 욕구 자체는 잘못이 없다는 인정도 바라고 있었어.
그럼 그때 나는 왜 이런 나의 소중한 욕구를 못 본 거야?
아, 나는 이제야 그것도 알겠다.
그때 앞섰던 욕구는 남편에게 집이 마음 편한 공간이 되는 것, 남편을 평안한 공간에서 쉬게 하는 것, 그리고 남편과 내가 진심으로 소통하고 연결하는 것, 그런 가운데 아이들이 저절로 얻게 되는 평안함. 단란하게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그런 내 모습에 대한 자신감. 이 욕구도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었지.
내 안의 소중한 욕구들. 이것들은 많다, 지나치다 할 수 없다.
모미나 선생님께서 욕구와 욕망의 차이를 설명하시는데 한 방에 이해가 되었다.
우리가 잠을 자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욕구가 심하다고 내려놓으라 하지는 않는다.
잠을 자는 곳을 화려하게 꾸미고 싶어 할 때 그것은 욕망이 되는 것이다.
욕구는 뭐가 됐든, 얼마가 됐든 모두 소중한 것이고, 하나하나 아기처럼 돌봐줘야 하는 대상이라는 건 진짜 알겠다. 하지만 제대로 된 부탁까지 가는 데는 쪼렙인 나는 이렇게 시간이 걸린다. 욕구 파악이 명확히 되어야 상대에게 제대로 된 부탁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끝판왕인 '부탁'이 제일 마지막에 있는갑다.
남편의 이야기를 내가 방어적으로 듣지 않고, 남편에게 강요하지 않고 진심으로 부탁할 수 있는 그 레베루로 성장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나에게 먼저 공감하러 가야지, 별 수 있나, 뭐....
남편 9에서도 너무 잘 지내는 바람에 남편이랑은 고민이 없고, 그래서 쓸 게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 그것도 나의 욕구였던 거 같은데?
그래도 그때는 좋았어~ 일희일비하고 축하하고 애도하고 그렇게 계속 살아볼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