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남편

다음 이야기는 과연?

남편 8

by 오달빛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매거진을 하나 만들고 '남편'이라 써넣었을 때는 허영자 시인의 '자수' 속 시적 화자와 같은 마음이었다.


마음이 어지러운 날에는 '금실 은실 청홍실 따라서 가면 가슴속 아우성은 절로 갈앉고' 그러다가 '머언 극락정토도 보일 상 싶다'라고 했듯이, 남편과 싸운 날 한자한자 모아 글을 써내려 가면 가슴속 아우성은 절로 가라앉고, 그렇게 글이 쌓이다 보면 먼 훗날 남편과 손 잡고 극락정토에 나란히 골인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남편에게 서운한 일이야 발에 차였고, 가슴에는 억울함이 상주하고 있었으니 '먼 훗날까지는' 얼마든지 쓸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매거진을 만들고 나니 이게 웬일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속에서 아우아우하던 아이가 사라졌다.

그 아이는 남편이 두통으로 드러누우면

"비상사태! 비상사태! 남편의 일을 내가 다 떠맡아야 한다! 모든 집안일을 내가 해야 한다! 남편은 허구한 날 두통이다! 남편 두통과 결혼설!"

하고 아우성을 쳤다. 그런데 마침 오늘 두통이라고 누워있는 남편을 보는데도 조용하다. 두통이라는 좋은 기회를 글 쓸 소재도 없이 넘기게 되다니... 게다가 오히려 남편이 짠하다니. 주말인데 나 혼자 늦게까지 아이들 둘을 건사했으나 억울하지도 않다. 열심히 가슴에 귀 기울이니 뭐라뭐라 하는 거 같아서 옳다구나 들어보는데

"남편 피곤이 쌓였나..." 하고 앉아있다.


아니 그럼 소는 누가 키우고, 글은 무얼 쓰나, 글은.


이럴 수는 없다. 이유를 찾아보자.






내가 변했나?

변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조금 생각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어제는 인테리어 업체와 급히 상담을 잡아둔 날이었다. 퇴근이 늦는 남편은 잠깐 외출하여 인테리어 사무실에 들른 뒤 회사로 재빨리 복귀해야 했다. 나도 오후 일정을 마치고 인테리어 사무실로 갔다. 남편은 열심히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상담을 마친 남편이 하원한 아이들과 나를 지하 주차장에 데려다주고는 짐이 많으니 함께 올라가자 했다. 나는 정중히 사양하면서 남편의 빠른 귀사를 위해 여기서 이만 헤어지자고 말했다. 차에서 아이들의 낮잠이불과 옷가지 등의 짐을 쓸어내린 뒤 어여 가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고마워'를 남기고 떠났다. 앞이 겨우 보일 만큼 짐을 쌓아 들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앞서 달려간 아이들이 나를 불렀다.


"엄마 '점검 중'이 무슨 뜻이야?"


으악. 11층에 사는데 엘리베이터 점검? 나는 이 짐을 들고 올라갈 수 있을까 잠시 망설였다. 일단 내 짐을 두 아이들의 고사리 손에 배분하려 했다. 그런데 둘째 민이를 생각하니 중간에 안아주든 업어주든 해야 할 거 같았다. 혹시 첫째 민이도 중간에 힘들어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엘리베이터 점검 중인데 어떡하지? 주차장 안 빠져나갔으면 짐 좀 차에 실어둘 수 있을까?"


남편은


"아니야. 같이 올라가면 돼."


했다. 그러고는 짠하고 나타나서 내 손의 짐을 착착 가져가고 아이들 손에서도 짐을 척척 빼서 자기 짐 위에 얹더니


"얘들아, 가자"


하며 앞장섰다. 어찌나 늠름하던지... 아이들은 등산이라도 하듯 신나서 따라 올라갔다. 내 걱정과 달리 모두 11층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나만 빼고. 나는 뒤에서 연신


"얘들아, 안 힘들어? 괜찮아?"


를 외치며 제일 마지막으로 집에 도착했다. 헥헥. 바쁜 남편은 인사를 나누고 유유히 계단으로 사라졌다.



여느 때라면 남편이 바쁜 걸 아니까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여행 삼아 천천히 올라갔을 수도 있다. 아니면 짐을 모퉁이에 두고 아이들과 먼저 올라갔을 거 같기도 하다.(세상 사람들은 지혜로워서 낮잠 이불이나 빨래가 든 아이 옷 바구니를 훔쳐가지 않는다.) 그런데 돕겠다는 남편을 굳이 보내 놓고 그렇게 쉽게 다시 불렀을까?

애착이든 신뢰든 안전함이든 뭔가가 남편을 향해 피어나고 있는 것일까?



남편이 변했나?

주차장에 다시 나타난 남편은 흔쾌했다. 나에게


"애들 올라가는 거 문제없을 걸?"


하면서 신나게 올라갔고 아이들은 그 덕분에 게임이라도 하듯 즐겁게 올라갔다. 가라고 해놓고 오라 가라 한다느니, 바쁜데 난처하다느니 그런 기운은 조금도 알아채지 못했다. 게다가 며칠 전에는 변기 고쳐달라는 부탁을 두 시간만에 처리해주지 않았던가. 도구까지 사 와서는.(성은이 망극)

배려든 협력이든 기여든 뭔가가 남편에게서 피어나고 있는 것일까?






매거진 발행 때문인가?

생각이 언어화하면 처음 생각했던 논리의 공백이 드러나게 마련이라 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나의 욕구를 깨달았고 그 욕구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음을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남편에 대한 마음을 적는 것은 나를 돌아보고 다독이는 것에 도움이 된다.


매거진을 만든 행위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내가 의도했든 아니든 '남편'이라는 매거진은 내 삶에서 남편이 중요한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의식이 된 기분이다.


"당신은 내 삶에서 소중합니다."

"내가 당신을 미워했던 이유는 그만큼 징그럽게 당신의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를 인정해버리고 끌어안은.








아우성치는 나를 만나도 쓸 거리 많아서 그냥 좋고

아우성 없이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 나를 만나면 그냥 좋고

극락정토든 천국이든 떠나서

자수하는 그 과정 자체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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