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달빛 Mar 16. 2022

둘째 어린이집 편입 적응기

사실은 엄마의 적응 이야기


첫째 준이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남편과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대안학교를 선택하였다. 거리가 멀어 등하교가 가장 문제였는데 갑자기 학교 근처에 있는 집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운명적인 느낌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가장 마음이 힘들 사람은 민이었다. 형아와 함께 다니던 어린이집을 떠나, 형아 초등학교에서 가까이 있는 어린이집으로 편입을 하게 되었으니 또다시 적응을 해야 했다. 그곳에는 친한 친구도, 민이를 잘 아는 선생님도 없다. 형아마저 이제 없다. 내 마음이 너무 안쓰러웠다. 민이는 워낙에 애교도 많고 눈치도 빨라서 어디서든 잘 적응할 것을 안다. 그런데 괜찮은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늘 관심을 못 받는다. 나는 그 마음을 살펴주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잘 적응한 어린이집에서 꺼내어 생전 모르는 사람들 사이로 풍덩 던져놓은 기분에 죄책감이 있었다. 이와 동시에 새로운 어린이집에 있는 엄마 아빠든, 선생님이든 우리를 반겨주고, 세심하게 챙겨주고, 상세하게 안내해 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났다. 바로 내가 작년에 이전 어린이집에서 교육이사를 하면서 신입을 대하는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말이다.




신입은 맥락이 없이 이해를 해야 한다. 배경이나 문화, 사람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는 전혀 모른 채, 던져진 말과 행동만으로 사이사이를 채우며 그 걸음을 따라가야 한다. 같은 이야기라도 기존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평지지만 신입에게는 징검다리가 된다.




공동육아 4년 차인 내가 신입이 되니 '세심하게 챙김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어난다는 경험이 참 소중하다. 그리고 작년에 세심하게 챙기고 소통하려고 했던 노력을 했던 나 자신이 참으로 대단하게 여겨졌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신입으로서 너무 감사할 거 같아서 말이다.









민이가 오늘은 처음으로 낮잠을 자는 날이었다. 나에게는 의식을 치르는 느낌도 있었다. 이제는 두 아이 모두가 자랐다는 것. 빈 둥지까지는 아니지만, 낮에는 내 손을 떠나서 잠도 자고 밥도 먹는 아이들이 되었다는 것이 애틋했다. 환한 낮에 아이를 재우고 나서 온몸에 긴장이 풀린 채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주말도 있고 쉬는 날도 꽤 많고, 언제 자가 격리할지 모르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 있지 않은가? 뭐....




하루 전날부터 민이에게


"민아, 내일은 낮잠 자고 일어나면 송편도 만들고 그럴 거래. 잘 자고 일어나면 엄마가 짠하고 나타날게."


이야기했다. 아침에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집을 나섰고.


담임 선생님과는 좀 친해진 거 같으니 담임선생님께 아이를 맡기고 나오면 안심이 될 거 같았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 준비해야 할 방 모임이 있어서 민이의 담임선생님은 오늘 늦게 출근하시는 날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때부터 혼란스러웠다. 마음속 계획이 어그러지면서 속상했다. 나는 아이를 누구에게 맡기고 가야 할지 모른 채 서성이다가 그냥 담임 선생님께서 오실 때까지 함께 있기로 했다.




선생님께서 오시고 하원을 어떻게 할지 이야기했다. 이때 나는 하원 시간을 잘 맞춰서 민이가 잠에서 깨자마자 짠하고 나타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내가 이번 학기에 한 휴직은 민이 어린이집 적응에 지분이 많다. 어린이집이란 곳이 있어야 하니까 엄마 떨어져 있는 공간이라기보다, 그 공간이 편안해지고 그곳의 사람들이 좋아지면서 엄마와 떨어져 있어도 재미있어지는 것. 그러다 보니 잠도 자고 싶고 오래 머무르고 싶고 그런 곳이 되는 것. 뭐 환상일 수도 있겠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까지 내가 충분히 기다려줄 마음도 있고 시간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송편 간식이 잼빵으로 바뀌어서 송편 만들기도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자고 일어나 잼빵을 먹고 나면 그때쯤 하원하라는 말씀을 들었다. 일단은 송편으로 꼬신 낮잠인데 송편이 없어진다니 날벼락같았고, 자고 일어나면 바로 나타나 주라고 신신당부하던 이전 어린이집과 달리, 일어나서 30~40분 흐른 후에 오라는 설명이 못 미더웠다. 나는 민이에게 엄청 미안해졌다. 뭐가 이렇게 다 바뀌고 뭐가 이렇게 다른지, 민이보다 내가 적응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마음에 묻은 채 아이와 안녕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무거워지더니 이전부터 쌓였던 서운함들과 함께 감정이 올라와 차 안에서 눈물이 났다.




내가 항상 좋은 엄마는 아니지만 이번 적응은 정말 천천히 어린이집에 스며들 때까지 온전히 기다려주고 싶었는데... 그래서 낮잠 잘 때 이런 식으로 자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좌절감도 느껴지고, 민이는 또 괜찮고 잘할 거라 더 미안하기도 했다.




내가 다른 방식으로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슬프지 않았을 거 같다. 나도 이사하고, 초등학교와 어린이집 두 군데의 새로운 곳에서 배우고 적응하고 하다 보니 확실히 에너지가 없는 거 같다. 어린이집에서 나 대신 좀 아이를 살펴주기를 원한 마음도 있었나 싶기도 하고.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역시나) 밝은 얼굴이긴 했다. 선생님 말씀에 잘 자고 일어나서 간식도 많이 먹었다고 했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네' 짧게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조금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선생님을 잘 모르고, 선생님께서도 저를 잘 모르시니까 빨리 서로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이야기가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시간 내어 충분히 나눌 수 있다고, 위에 선생님들 많이 계셔서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해도 좋다고 했다.




나는 내가 민이의 적응과 관련해 생각했던 소중한 욕구와 내가 부여한 의미들에 대해 선생님께 이야기하고 싶은 만큼 이야기했다.


"민이는 잘 적응할 걸 알아요. 제가 그런 마음인 거지."


선생님께서는 "그러니까요. 민이는 잘 적응하는데 어떤 게 걱정이 되세요." 하셨다.




민이가 어디서든 잘 지내서 오히려 더 잘 챙겨주고 싶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했다. 그리고 일정이 변하거나 새로운 일이 생길 때 자세한 안내를 받고 싶다는 이야기도. 이야기를 해 나가는데...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정말 신기했다. 선생님께서 내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시고, 내 말과 행동의 의미에 대해 이해해 주시니 가슴에 있던 돌덩이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사를  했을까, 거기  지내는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다시 이렇게 적응하게 하다니. 집에서도 '무터워 무터워' 하면서 혼자서는 옆방도  가는데. 응가할 때도 의자 가져다 놓고 앞에 앉아있으라 하는데..."


바로 전까지 이런 마음이었는데 마법처럼 다 괜찮을 거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 말씀도 귀에 들어왔다. 적응 기간을 아주 길게 가져가도 아이들은 다 '어린이집에 있는 것보다 엄마와 있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신입이기는 하지만 공동육아를 4년이나 겪고 온 사람이기 때문에 뭔가 자세히 일러주고 안내하는 것이 필요할까 하는 고민을 다른 엄마와 아빠들이 할 수도 있다는 것'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불안감이나 서운함도 내려갔다.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세상을 다시 보게 되는 게 맞는 거 같다. 나는 그렇게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이번 일로 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민이는 지금도 신나서 잘 논다.


다.. 엄마인 나의 불안이고 내 욕구다.





어떤 사람이


나를 판단하지 않고,

나를 책임지려 하거나 나에게 영향을 미치려 하지 않으면서

내 말을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들어줄 때에는

정말 기분이 좋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이해해 주면, 나는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암담해 보이던 일도 누군가가 진정으로 들어주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일도 누군가가 잘 들어주면 마치 맑은 시냇물 흐르듯 풀리곤 한다.


- 칼 로저스






어린이집을 옮기면서 나의 별명을 '바람'으로 바꾸었다.

한 지인은 나를 보고 자유로운 사람이라서 '바람'이라 했느냐 물었다.

사실은 좀 다르다.

정현종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좋아하는데, 그 시에 등장하는 '바람'같이 살다 가고 싶어서 지은 별명이다.




오늘


어찌 보면 투정에 가까운..


그렇지만 내 안에서는 소중하게 일어난 일들


그것에 귀 기울여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ㅡ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Being으로는 모자라 DoingDoingDoin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