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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달빛 Sep 26. 2023

조금은 울어도 될지 몰라

유미의 마이크 2

2.

심한 코감기로 준이가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어. 유미는 준이를 유모차에 태웠어. 아파트 주변을 돌며 준이를 재울 생각이었지. 아파트 창문의 켜져 있던 등 하나가 마지막으로 꺼진 무렵에야, 준이는 잠들었어. 유미는 놀이터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주먹으로 허벅지를 두드렸어. 귀뚜라미 소리 말고는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지. 유미는 졸음이 쏟아졌어.

“에고. 푹 좀 자봤으면......”

유미가 팔다리를 쭉 펴며 크게 하품을 마쳤을 때였어. 쭉 뻗은 발 앞에 시커먼 물체가 유미의 눈에 들어왔어. 그 물체는 유미가 발견하자 불빛을 반짝이기 시작했어.

“뭐지?”

유미는 상체를 구부려도 잘 보이지 않자 ‘끙차’하고 일어나 깜빡이고 있는 검은 물체에 다가갔어. 무언가 길쭉했어.

‘장난감 마이크잖아? 누가 놓고 갔나?’

마이크를 들어 올리자 갑자기 마이크에서 말소리가 났어.

“유미.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사용을 시작하려면 버튼을 3초간 길게 누르세요.”

“유미?”

유미는 고개를 갸웃했어. 마이크를 살피니 불빛을 내고 있던 초록 버튼이 눈에 띄었어. 다시 한번 마이크가 말을 걸었어.

“유미.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사용을 시작하려면 버튼을 3초간 길게 누르세요.”

유미는 마이크를 이리저리 돌려 살펴보았어. 버튼은 깜빡거림을 멈추고 어서 누르라는 듯 초록불이 들어와 있었어. 유미는 손에 든 마이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뒷걸음질 쳐 벤치에 앉았어. 그러고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버튼을 꾸욱 눌렀지.     

“아이로 변했을 때 엄마로 돌아오는 방법.”

‘어?’

“엄마인 당신은 이제 눈물을 흘리면 준이 또래의 아이로 변하게 됩니다. 이 마이크를 한번 켜면 지금부터 안내하는 방법 외에는 엄마로 돌아올 수 없으니 주의하세요. 당신이 만약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아이로 변했을 때는 지금처럼 초록 버튼을 누르세요. 전원이 들어오면 3분간 시간이 멈추고 아이의 마음을 당신에게 보여줍니다. 그동안 당신의 아이가 듣고 싶은 말을 찾아 마이크에 대고 말하세요. 그 말이 아이의 마음과 일치하면 다시 엄마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단, 3분 이내에 답을 찾지 못하면 24시간을 아이의 모습으로 지내게 됩니다. 또한, 이 마이크를 고장 내거나 잃어버리게 되면 영원히 엄마로 돌아올 수 없으니 주의하세요.”

그때였어. 준이의 쌕쌕거리는 소리가 커졌어. 

“으헝.”

준이가 또다시 코가 막혀 불편했는지 잠이 깬 거지.

“어, 그래, 엄마 여기 있어”

유미는 마이크를 급히 가방에 넣고 일어나 준이를 토닥였어. 그리고 유모차를 밀며 생각했어.

‘유미? 분명히 유미라 불렀어. 그리고 내 비밀도 알고 있잖아?’ 

가방의 열린 틈으로 보이는 마이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불이 꺼져 있었어. 

집에 돌아와 잠든 준이를 눕히고 조심스럽게 마이크를 꺼냈어. 초록 버튼이 또렷하게 유미 눈에 들어왔어. 핑크색 플라스틱 마이크에 셔츠 단추만 한 초록 버튼. 그걸 들고 긴장하고 있는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어.

“에이, 말도 안 돼.”

유미는 초록 버튼을 한 번 눌러보았어.

“삐- 아이로 변했을 때 누르세요.”

‘삐-’ 하는 소리가 생각보다 커서 유미는 흠칫 놀랐어. 준이는 다행히 자느라 못 들은 듯했어.

“뭐야, 진짜인가 봐.”

유미는 가슴이 두근거렸어. 이 마이크가 자기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한 가닥 몸을 쓰다듬고 지나갔어. 밤공기가 제법 시원했어.

“이제 조금은 울어도 될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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