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달빛 Sep 26. 2023

유미가 듣고 싶던 말이었어

유미의 마이크 4

4

며칠 뒤 유미와 준이는 대형 마트에 들렀어. 손님들을 집으로 초대했으니 먹을 것을 준비하려던 참이었어. 유미는 뛰어다니는 준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조바심이 났어.

“준아, 마트에서는 그렇게 다니면 부딪힐 수 있어. 뛰지 마”

유미가 몇 번을 반복해서 ‘뛰지 마’를 외치던 차였어. 속도를 못 줄이고 코너를 돌던 준이가 다른 사람이 밀던 카트에 부딪혔어. 저 멀리서 카트를 밀고 걸어오던 유미는 낯선 남자가 준이 얼굴에 고개를 들이미는 모습을 보았지. 그 남자는 준이 얼굴을 이리저리로 살폈어. 유미는 불길한 예감에 빠른 속도로 다가갔어. 가슴이 두근거렸지. 남자는 준이에게 “괜찮니?”하고 묻고 있었어. 상황 파악이 된 유미는 준이를 향해 잔소리부터 시작했어.

“엄마가 뛰지 말라고 했지? 그러게 왜 뛰어다녀?”

유미는 인상 쓴 얼굴 그대로 남자에게 시선을 옮기고 말했어.

“죄송해요. 놀라셨지요?”

시선이 다시 준이에게 향한 유미는 가슴이 내려앉았어. 준이의 오른쪽 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어.

“어? 피? 준아, 너 뭐야? 피 나잖아!”

눈두덩이를 들춰 본 유미는 걱정인지 화인지 모를 감정이 올라와 울컥했어. 유미는 입술이 바짝 탔어. 유미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어.

“그러게 왜 뛰었냐고. 눈 다친 거 아냐? 너 엄마 보여?”

유미는 반대쪽 눈에 손을 올려 한 눈을 가리며 물었어. 준이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서 있었어. 유미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어.

“어서 대답해! 보이냐고!”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말했어.

“저, 병원으로 먼저 가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그래, 병원!’

유미는 좀 전까지 고른 물건이 담긴 카트를 그대로 두고 준이 손을 잡아끌었어. 유미가 앞서가자 준이는 터덜터덜 유미에게 끌려갔어. 유미는 가끔씩 준이를 돌아봤지만, 준이가 따라가기 힘들 만큼 유미의 걸음은 빨랐어.

“하아, 진짜. 아, 속상해.”

주차장에서 차에 시동을 걸며 유미는 버럭 소리치고 싶었어. 준이는 엄마 말을 듣지 않다가 이렇게 되었다는 사실에 다친 눈을 감은 채 한 마디도 못하고 있었어. 룸미러에 비친 준이는 피 묻은 얼굴로 풀이 죽어 있었지. 그 모습을 보니 유미는 안쓰러움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어.

‘울면 안 돼! 운전해야 돼.’

유미는 입술에 힘을 주었어.

잠시 뒤 병원에 도착해서 준이와 순서를 기다렸어. 평일 저녁인데 사람이 많았어. 준이의 눈이 아까보다 많이 부어올랐어. 유미의 놀란 가슴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았어. 준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유미를 보았어. 준이의 붓지 않은 다른 눈과 눈이 마주치자 준이가 작게 말했어.

“미안해, 엄마.”

유미는 더는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어. 아이를 달래지는 못할망정 누가 누구의 마음을 돌보고 있는 건지 스스로가 한심했지.

“준아, 엄마 잠시 화장실 다녀올게.”

유미는 준이에게 말하면서 아까부터 만지작거리던 가방 안 마이크의 전원을 켰어. 그러자 지난 번과 같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정지했어. 역시나 유미는 아주 작은 옷을 입은 듯 몸이 답답해졌어. 화장실로 달려가며 돌아보니 준이가 평소보다 커 보였어.

유미는 화장실 안에 들어와 마이크를 꺼내 들었어.

“2:50”

“2:49”

줄어드는 시간을 보고 있자니 병원 침대 위에 누워서 상처를 꼬매던 때가 생생하게 떠올랐어. 계단 손잡이를 미끄럼틀 타듯 한쪽 엉덩이로 걸치고 내려오는 건 몇 번을 반복해도 짜릿했어. 양팔을 비행기 날개처럼 벌리면 날아가는 것 같았지. 그때 유미도 그런 위험한 짓은 그만하라는 말을 엄마에게 몇 번이나 들었어. 그러나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미끄럼틀을 탔어. 유미는 오른손을 들어 눈썹 위를 만져 보았어. 다섯 바늘이나 꼬맨 흉터가 그대로 만져졌어. 간호사와 의사가 유미의 몸을 꽁꽁 붙들어 잡고 생살을 꼬맬 때 유미는 너무 아파 엉엉 울었어. 다친 것도 서러운데 엄마한테 혼날 생각을 하니 서러움이 더 커졌지. 엄마 말을 안 들은 것이 미안해서 더 아픈 척한 것도 같았어. 엄마가 바로 유미 옆에 서 있었는데 지금 잡고 있는 간호사 언니 손 말고, 엄마 손을 잡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득했어. 유미는 마이크를 들었어. 그리고 천천히 입을 뗐어.

“준아. 엄마가 안아줄게. 얼마나 놀라고 아팠어? 다 괜찮아질 거야. 엄마가 치료 마칠 때까지 손잡고 옆에 꼭 붙어 있을게. 괜찮아, 괜찮아.”

유미가 다쳤을 때 듣고 싶던 말이었어.     

준이는 눈꺼풀만 세 군데가 찢겼고 그 중 한 군데는 속눈썹 바로 아랫부분이었어. 그래서 눈에서 피가 흐른 것처럼 보였던 거지. 준이의 눈동자는 이상이 없었어. 유미는 이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어. 흉터는 남았지만, 준이의 상처는 아물었어.

이전 03화 내가 준이를 낳지 않았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