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의 마이크 5
5
유미는 마이크에 대해 생각했어. 자신이 아이로 변하면 어른으로 돌아오게 해주니 고맙고 안심은 되었어. 어릴 적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려 주니 신기하고 놀랍기도 했어. 그런데 유미는 왠지 걱정이 점점 커져 갔어. 마이크가 생기고 나서 더 울 일들이 많아지는 것 같았으니까. 아니, 자기가 너무 쉽게 우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다고. 내가 너무 마이크를 믿고 자꾸 우는 거 아니야? 아이로 변하는 일은 애초에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마이크가 고장이라도 나면...?’
유미는 마이크에 기대는 자신이 불안해졌어. 그리고 며칠 뒤 걱정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어.
준이는 멀미가 아주 심한 축에 속했어. 차를 좀 오래 탔다 싶으면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고개를 무릎 사이에 파묻고 겨우 버티곤 했어.
그날은 준이와 준이 친구가 함께 공원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어. 유미는 준이와 공원으로 갈 채비를 했어. 놀이터도 있고, 분수도 있고, 아이들이 자전거와 씽씽이를 탈 수 있을 만큼 넓은 공원이었어. 버스로 두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에 있었지. 유미는 며칠 전 일을 떠올리며 준이에게 물었어.
“준아, 이틀 전에 차 오래 타고 나서 밥 먹다가 토했잖아. 준이 그때 절대 절대 차 안 탄다고 했는데 오늘 차 없이 어떻게 가면 좋을까?”
“음, 오늘은 괜찮을 거 같아.”
“정말? 차 타고 가도 되겠어?”
“어. 대신에 차에서 옛날이야기 들려줘.”
유미와 준이는 계획대로 약속 시각을 20분쯤 남기고 도착해서 여유로웠어. 오는 길에 맛집에 들러 사 온 김밥을 먹으면 딱 약속 시간에 맞추겠다 싶었지. 준이는 잠깐 동안 낮잠에 빠졌는지 도착하자 일어났지. 유미는 앞자리 조수석에 김밥이 담긴 상자를 먹기 좋게 펼쳐놓았어.
“준아, 이리 와. 김밥 먹자! 일어나!”
그런데 그때였어. 뒷자리의 카시트에서 내려와 김밥을 향해 다가오던 준이가 며칠 전 모습 그대로 아침 식사를 뿜어내고 말았어. 자동차 핸들, 앞의 의자 두 개의 틈새, 에어컨 바람 입구, 각종 버튼 틈은 물론, 새로 구입한 빳빳하던 책과 처음 꺼내 입은 유미의 하얀 바지, 까만 가죽 가방에까지 자국이 남았어. 온통 튀었고 차 안은 흥건했지.
‘맙소사!’
유미는 막막했어. 약속 시각도 잘 맞춰 도착했고, 먹음직스럽던 김밥을 먹고 차에서 내리기만 하면 모든 것이 완벽했는데, 유미는 준이와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어.
‘꼬르륵’
하루 종일 굶은 유미의 배에서 소리가 났어. 일부러 들러서 사 온 맛집 김밥을 못 먹고 버리게 되었지.
‘하아, 배고파. 내 책, 한 장도 못 열어본 새 책이 완전히 젖어버렸어. 차 안은 언제 어떻게 청소해? 그게 문제가 아니지……. 씻고 옷을 갈아입으러 집으로 갔다가 다시 이 길을 와야 하잖아.’
유미는 가방을 들고 차 문을 열어 묻은 것을 툭툭 쳐서 털어내며 말했어.
“준아!! 어휴.. 어떡해. 어떡해! 어휴 어떡하냐, 어떡하냐고.”
앞자리에 다시 내려놓을 공간이 없어 뒷자석 발밑에 가방에 내려놓으며 준이를 돌아보았어.
“어? 뭐야? 너 왜 그래?”
준이는 또 한 번 토할 기세였어.
“내려! 내려! 내려서 해, 내려서!”
유미의 목소리는 몹시 커졌어, 마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준이는 고개도 못 들고 비틀거리면서도 차에서 엉거주춤 내렸어. 그때였어. 유미의 가방끈이 준이 신발에 걸려 가방 안 물건들이 밖으로 우르르 쏟아졌어. 가방 위에 묻어있던 구역질의 흔적이 안에 있던 물건들에도 떨어졌지. 유미와 준이는 동시에 한숨을 쉬었어.
“아, 미치겠다. 어떡하지?”
유미는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어떡해’가 계속 맴돌았어. 준이는 다행히 다시 올리지는 않았고 혼잣말 비슷한 목소리로 계속 중얼거렸어.
“엄마, 이거 내가 주울까? 이거 내가 주워야겠다.”
“됐어. 저기 가서 앉아 있어. 바람이나 쏘이고.”
“근데, 어... 어... 엄마, 책을 물로 씻을 수 있어?”
유미는 김밥집에서 넣어 준 물티슈 봉지를 뜯으며 대꾸도 하지 않았어. 물티슈로 의자 시트를 벅벅 닦을 뿐이었지.
“어, 엄마... 나 옷 다른 거 입으면 되지?”
준이는 유미가 반가워할 만한 해결책을 머릿속에서 찾아 헤맸어. 유미는 건조하게 이야기했어.
“준아, 일단 집으로 가야 돼. 다음에는 토할 거 같을 때 이야기해야 돼. 얼른 타.”
유미는 자기가 한 말이 스스로도 말이 안 된다 생각했어.
‘나도 참 매정한 엄마네. 토할 거 같다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토하는 거를 봤으면서...’
유미는 대충 정리를 마친 후 최대한 차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집 주차장으로 돌아왔어. 차 안 사정은 미뤄둔 채 창문만 열어놓고 준이를 데리고 집으로 올라왔어. 차보다 몸이 급했기 때문이야.
씻는 동안 준이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어.
‘그래. 배가 고플 거야. 먹은 것도 없는데 다 토해 버리고 당연히 배가 고프겠지.’
유미는 씻기다 말고 누룽지를 불에 올려놓았어. 준이를 마저 씻긴 후 유미는 자신도 후다닥 씻었어. 화장실에서 나온 유미는 준이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힌 후 누룽지를 먹였어. 준이가 누룽지를 후루룩후루룩 먹는 동안 유미는 차를 처리할 채비를 했어. 다 먹었나 싶어 나가려는데 준이는 어지간히 먹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어.
“엄마, 응가.”
‘그래, 먹었으니 마려울 수 있지.’
잠시 후 준이는 설거지하고 있는 유미를 향해 목을 길게 빼고 불렀어.
“엄마, 응가 다 했어.”
엉덩이를 닦이기 위해 유미는 준이 옷을 벗기고 다시 씻겼지. 이제 차가 남아 있었어.
“준아, 엄마랑 주차장 내려가야 해”
“나 씽씽이 가져갈래.”
“혼자 타야 돼, 엄마 같이 못 있어, 괜찮아?”
“응”
“후, 그래, 엄마는 차 닦아야 하니까 조심해서 천천히 탈 수 있겠어?”
“알았어. 차 오나 안 오나 볼게.”
유미는 준이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어. 지하 주차장에서 준이는 씽씽이를 타며 몇 번이나 넘어졌지만 신이 났어. 유미는 잠시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았어. 그러고는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꼈지. 휴지 한 통, 물티슈 두 통으로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겨우 마무리가 되었어. 온몸이 땀으로 젖었어. 그제야 유미는 자기 배의 꼬르륵 소리도 들을 수 있었어. 유미는 화가 난 것은 아니었어. 그저 녹초가 되었고 지쳤어. 억울한 것도 없고 속상할 것도 없는데 그냥 너무 힘겨웠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이를 키우면 이런 일이 있는 건지 궁금했어. 다들 조용히 잘 키우는데 자기만 요란하게 키우는 것이 한심했어. 힘들었고, 힘든 것이 창피해서 또 힘들었어. 코끝이 찡했어. 그때 준이가 씽씽이로 자동차 앞을 지나가며 유미를 보고 활짝 웃었어. 눈물이 쏟아졌어.
“어?”
가방 안에 손을 넣어 뒤적이던 유미가 불현듯 가방을 뒤집어 털며 물건을 쏟아냈어.
“난 몰라!”
아까 가방에서 쏟아진 물건을 손으로 거칠게 휘저으며 뒤적거렸어. 마이크를 못 챙긴 것이 그제야 떠올랐어. 보이지 않아 가방에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없었어.
‘뭐야, 분명히 바닥에는 없었는데... 바퀴 아래로 굴러 들어갔나?’
유미는 머리에 쥐가 나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어. 꾹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어.
‘어쩌자고 울어대는 거야. 왜 우냐고, 이게 울 일이야?’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몸이 답답해지더니 유미의 몸은 준이만큼 작아졌어. 유미는 이제 시간을 멈출 수 없었어. 그냥 이대로 아이로 살아야 하나 싶었지.
‘준이는? 그럼 준이는 누가 보살피지? 우리 가여운 준이. 결국 나같은 엄마 만나서...’
유미는 무릎을 세워 일어나 차창밖으로 멀리서 넘어졌다 일어서는 준이를 보았어. 눈물은 그쳐지지 않았고 유미의 흐느낌이 커졌어. 이제는 소리 내어 울며 다시 눈으로 준이를 찾았어.
‘헉!’
준이가 차로 다가오는 게 보였어. 유미는 얼른 문을 잠갔어. 준이가 차에 다가와 문을 열었다가 잠긴 걸 확인하고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댔어. 유미는 고개를 숙이고 손바닥으로 벌어진 입을 가렸어.
“얘!”
바깥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 유미는 깜짝 놀랐어.
“얘야. 너 여기서 혼자 노는 거냐? 여기 차가 다녀서 위험해. 내가 저쪽에서 아까부터 봤는데, 그렇게 빨리 달리다가 부딪히면 큰일 난다.”
유미는 속으로 ‘외부 차량을 확인하는 경비아저씨인가?’하고 생각하며 슬며시 고개를 들어 밖을 보았어.
“아, 저 엄마랑 같이 있어요. 혼자 아닌데?”
“엄마? 엄마 어디?”
“차 안에요. 청소하고 있어요.”
경비아저씨가 차 안을 살폈어. 유미는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지. 아저씨가 안이 보이지 않는지 아까 준이처럼 창문에 얼굴을 바짝 댔어. 유미는 문을 벌컥 열어버렸어. 그리고 무작정 차에서 내려 말했어.
“아, 준아. 엄마 물티슈 가지러 올라갔잖아.”
유미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준이를 못 본 채하고 경비아저씨게 말을 이어갔어.
“아저씨, 감사합니다. 걱정 마세요. 저희 올라갈 거예요. 준아. 엄마가 한 번만 더 타고 올라오라고 했는데 이제 다 탔으니까 얼른 가자.”
경비 아저씨는 잠깐 동안 유미와 준이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 조심해서 올라가라. 애들끼리 여기서 그런 거 타면 안 돼. 차 안에도 혼자 있지 말고”
경비 아저씨의 뒷모습이 작아지자 유미는 준이를 쳐다봤어. 그런데 대뜸 준이가
“엄마”
하고 불렀지. 유미는 눈이 동그래졌지.
“나?”
“어, 엄마.”
“......”
“엄마, 엄마는 원래 내 친구야, 아니면 내 엄마야?”
“그게 무슨... 말이야?”
유미는 어리둥절했어.
“아니, 궁금해서. 원래 내 친구인데 내가 필요할 때 나를 사랑해주려고 어른이 되는 거야, 아니면 원래 어른인데 나 심심할까 봐 어떨 때는 내 친구가 되어주는 거야?”
“어? 그...”
유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어. 그제서야 유미는 준이가 자기와 함께 정지된 3분의 시간을 기다려 왔나 생각해 보았어. 그런데 준이가 멈춰 있었는지가 기억나지 않았어. 제대로 확인한 적이 없었지. 유미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어.
“음, 그런데 상관없어. 나는 다 좋아. 엄마니까.”
준이는 유미에게 손을 내밀었어. 유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어. 그저 크게 느껴지는 준이의 손을 가만히 잡았어.
유미는 준이를 바라보았어. 준이의 머리가 땀에 젖어있어. 그 모습을 보니 씻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마이크’ 생각이 났어. 어서 마이크를 찾으러 가고 싶었지만 지금 몸으로 운전은 불가능했어. 이미 3분은 모두 흘렀겠지만 유미는 준이에게 설명할 말을 찾고 싶었어. 그리고 마이크 없이 이 상황에서 자신이 무얼 해야 할지도 몰랐지. 그저 마이크를 찾아야 뭐든 해결이 날 거 같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