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달빛 Sep 26. 2023

마이크는 완전히 꺼진 듯 보였지

유미의 마이크 6

6

지하주차장에서 나오니 밖은 캄캄해져 있었어. 유미는 준이와 함께 공원으로 가보고 싶었어.

“준아, 공원에 가볼래?”

“밤산책? 좋아!”

둘은 나란히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어. 조용히 걷기만 하던 준이가 갑자기 멈춰서서 말했어.

“엄마, 내가 멀미해서 미안해.”

유미는 그 말에 자기가 더 미안해졌어.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엄마, 나는 왜 토할까? 싫어.”

“토하는 거 힘들지?”

“아니, 그건 괜찮은데 엄마가 힘들어.”

준이가 다시 걷기 시작했어. 유미는 따라 걸으며 말했어. 늘 뒤에서 따라왔고 목소리가 작은 준이라 유미는 항상 허리를 숙이고 걸음을 멈춰 이야기를 들어야 했는데, 지금은 달랐지. 유미에게 준이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고 둘 다 걷는 속도가 편했어. 이번에는 유미가 이야기를 시작했어.

“준이가 엄마 닮아서 그런가 봐.”

“뭐가?”

“엄마도 멀미 많이 했어.”

“진짜?”

“응. 나도 생각해 보니까 어릴 때 만날 토했어. 차 타고 가다가 ‘으웩’하고 다시 타고 가다가 ‘으웩’하고 또 내려서 ‘으웩’하고 그랬어.”

준이가 놀란 눈으로 유미를 바라보았어.

“진짜야.”

유미가 크게 토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어. 준이가 못 믿겠다는 듯 씨익 웃었어.

“엄마가 초등학교 때 엄청 멀리 캠프를 다녀왔거든? 그런데 차에서 내렸는데도 한참 동안 토할 거 같은 거야. 바닥이 막 빙글빙글 돌아서 집에 도착해서도 변기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어. 화장실 바닥에 털썩.”

“헤에? 진짜? 그래서 할머니가 뭐라고 했어?”

유미는 잠깐 기억해내려 애썼어.

‘그러고 있다고 속이 괜찮아지니?’

유미는 생각났지만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어. 그때 준이가 말했어.

“아, 말하지 마. 나 알아.”

“오, 뭔데?”

“유미야, 멀미하느라 너무 힘들었지? 엄마가 안아줄까?”

유미는 마음이 뭉클해졌어. 준이의 바로 그 말이 그때 유미가 듣고 싶어 한 말이었음을 깨달았어. 유미는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모른 척하고 웃으며 말했어.

“와, 비슷한데?”

“아, 아, 진짜 알겠다. ‘뭐 마실 거 줄까?’ 음, 아니면, ‘등 좀 문질러 줄까?’, 맞지?”

유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     

유미는 그때를 떠올렸어. 유미가 캠핑장에 갔다가 사진기를 잃어버리고 왔어. 사진 찍는 것에 관심이 많은 유미 엄마의 소중한 사진기였어. 대절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경유지에서 버스에 두고 나갔다 왔는데 돌아와 기사님께 여쭤도 사진기는 못 보았다고 했지. 함께 갔던 캠프 강사들은 서울 가서 한 번 더 알아보자고 했고, 유미는 그 말만 믿고 잠자코 있었지. 그런데 정작 서울에 도착하자 강사들은 별다른 말 없이 아이들을 해산시키기 바빴어.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던 유미는 거기에서 카메라를 더 찾아 나서지 못했어. 도움을 요청할 계제도 못 되어 그냥 그렇게 멍하니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어. 정작 유미의 엄마는 잃어버린 사진기에 대해 유미에게 아무 것도 나무라지 않았어. 그 카메라가 좋은 거라 아마 버스에 있었어도 되찾기는 어려웠을 거라고만 덧붙였지.

그런데 유미 마음에서 일어난 일들이 그랬어. 엄마의 소중한 카메라를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엄마에게 미안했고, 카메라 잃어버린 주제에 엄마 앞에서 멀미로 힘들다고 티내고 있는 것이 스스로 뻔뻔하게 느껴졌어. 누군가 이런 말을 해주기를 간절히 기다린 거 같다는 생각도 이제는 들었어.

“유미야, 자책하지 않아도 돼.”     

유미는 준이를 불러 세우고 마주 보았어. 유미의 눈에서 따뜻한 눈물이 흘러내렸어.

“준아, 아까 준이가 토했을 때 엄마가 '어떡해, 어떡해' 그래서 준이 탓하는 거 같았지? 준이 잘못 아닌데 미안해. 그때 엄마가 얼른 안아주고 물도 주고 그랬어야 했는데, 엄마가 잘 몰랐어. 정말 미안해. 속이 많이 안 좋아서 힘들었는데 엄마도 속상해하니까 미안하고 그랬지? 근데 봐봐~ 엄마가 차 안도 깨끗이 치웠고 준이 깨끗이 씻기고 옷도 새로 입혀줬지? 이렇게 엄마는 다 도와줄 수 있어. 어른들은 원래 아이들을 도와주는 거야. 엄마가 앞으로는 큰 봉투를 차에 둘게. 준이 토하고 싶을 때는 언제든 거기에 토해. 그리고 차에 또 튀어도 엄마가 지금처럼 다시 깨끗이 청소해 줄 수 있어. 엄마한테는 책보다, 차보다, 옷보다 우리 준이가 제일, 제일 소중해. 너는 엄마의 소중한 보석이야.”

유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어.

“엄마는 준이를 보살펴주는 어른이야. 혹시 아이로 변해도 준이를 보살펴주고 사랑해주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걸 잊지 마.”

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유미의 목을 꼭 안았어.

갑자기 안고 있던 준이가 유미에게 아주 작게 느껴졌어. 놀랍게도 유미의 몸은 어른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어.     

둘은 공원에 도착했지만 유미는 이제 마이크가 필요 없었지.

“엄마, 나 그네 탈래.”

“그래, 밀어줄까?”

“아니, 나 혼자 탈 수 있어.”

유미는 벤치에 앉아 그네 타는 준이를 바라보았어. 주차했던 자리를 돌아보니 역시나 마이크가 떨어져 있었어. 약간의 얼룩이 묻은 채로. 유미는 손수건으로 조심스레 얼룩을 닦아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전원을 켜고 버튼을 눌렀어     

“엄마인 당신은 이제 눈물을 흘리면 준이 또래의 아이로 변하게 됩니다. 이 마이크를 한번 켜면 지금부터 안내하는 방법 외에는 엄마로 돌아올 수 없으니 주의하세요. 당신이 만약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아이로 변했을 때는 지금처럼 초록 버튼을 누르세요. 전원이 들어오면 3분간 시간이 멈추고 아이의 마음을 당신에게 보여줍니다. 그동안 당신의 아이가 듣고 싶은 말을 찾아 마이크에 대고 말하세요. 그 말이 아이의 마음과 일치하면 다시 엄마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단, 3분 이내에 답을 찾지 못하면 24시간을 아이의 모습으로 지내게 됩니다. 또한, 이 마이크를 고장 내거나 잃어버리게 되면 영원히 엄마로 돌아올 수 없으니 주의하세요.”

유미는 마이크를 처음 보았을 때가 기억났어.

‘응? 그럼 나는 지금 왜 어른으로 돌아왔지? 24시간이 지난 거 같지는 않은데?’

그때였어. 마이크가 이어서 이야기를 했어. 

“다만, 3분의 시간 동안 아이가 원하는 말을 찾지 못했다면 어릴 적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을 찾는 것도 유효합니다. 그리고 그 말이 부모님이 내게 하고 싶었던 말과 일치하면 완전히 어른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유미는 놀랐어. 성급하게 전원을 끈 탓에 듣지 못한 설명이 뒤에 남아있었다는 것을 알았어.

“유미야, 엄마는 카메라보다 우주보다 네가 훨씬 더 중요해. 너는 엄마의 소중한 보석이야.”

‘딸깍’

마이크가 반짝이던 불빛을 멈추었어. 마이크는 완전히 꺼진 듯 보였지.

이전 05화 유미의 마이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