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죄졌냐? 똥이 돼도 내 결정, 내 인생이다.
죽기살기로 야근을 한다. 죽기살기로 술을 마신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부당한 강요와 상명하복식의 일방적 업무지시를 견뎌내기가 너무 벅차다. 탈탈 털릴대로 털린 기운마저 쪽쪽 빨리는 기분이고, 묘연하게만 느껴졌던 나의 임종, 나의 수명이 빛의 속도로 줄어들고 있음이 온몸으로 느끼며 퇴사를 결심한다. 학부시절 가졌던 임원에 대한 목표일랑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떠나보내고, 내 사지와 멘탈이 온전히 보호받을 수 있는 공기업으로의 이직을 결심한다. 그리고, 야근과 회식에 굴하지 않고 악다구니있게 준비한 결과 최종합격을 거머졌다.
사수를 필두로 피라미드식 위계에 따라 퇴직에 대한 결심과 이후의 거취를 설명해야 한다. 곧바로 인사팀 또는 부서장이나 팀장에게 직속으로 이 사실을 알릴 경우 괘씸죄가 가중 적용될 수도 있다. 조직은 절차와 위계를 목숨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임, 횡령, 회사의 파산 등으로 내뺄 때도 위계 순서대로 튄다. 상위 티어로 갈수록 그 속도가 겁나 빠르다.) 언제, 어떻게 이 이야기를 시작할지를 고민하다 1주일을 보냈다. 결국, 이직을 위해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되어서야 불편하고, 껄끄럽고, 죄스러운 맘으로 퇴직이라는 운을 뗀다.
사수를 시작으로, 과장님, 부서장까지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간다. 사수와 과장님은 '섭섭하다, 이럴 줄 몰랐다, 이미 결정한거냐, 그럼 어쩔 수 없지, 얘기 잘하고 가서 잘해라'라는 순서를 거쳐 잘 넘어갔지만. 부서장 레벨은 만만치가 않다. 대체 면접은 언제 어떻게 보러갔는지를 시작으로 배신자, 의지박약자 취급을 하기 시작했고, '연봉은 얼마를 받느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냐. 전문성을 키울 수 없다.' 등 온갖 근거없는 허언을 뱉어내며, 내 의지와 계획을 폄훼하기 위한 공격을 퍼부었다.
이 회사에서 말하는 전문성이란 복사나 팩스, 스캔을 할 때 쓰는 말이었고, 이 회사의 미래는 커녕 현재 조차 칠흙같은 어둠에 휩싸여 뒤안길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심지어, 회사를 떠난 선배 중에 한 명은 코스피 시가총액 15위권 내의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도 차장으로부터 '너 거기가면 네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냐'라는 주제의 핍박을 3시간 동안 귀가 빠지도록 들어야만했다. 그 선배는 그렇게 사양산업에서 미래 신사업 분야로, 적자기업에서 흑자기업으로, 연봉 1천만원을 더주는 굴지기업에 이직하기 위해 갖은 수모와 허언을 이겨내야했다.
대한민국에서 퇴사는 유독 불편하다. 내가 내 미래를 설계하는 것임에도 퇴사라는 단어를 속에 품는 것 만으로도 불편함을 느끼고, 면접 한 번 보러가기 위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치밀한 뻥을 찾아 학교 커뮤니티를 기웃거린다. 퇴사를 알릴 때가 되면 원인 모를 죄책감을 느끼고, 때로는 응큼한 놈으로, 때로는 배신자로 날 바라보는 시선도 이겨내야 한다. 혹시라도 퇴사 못 시켜주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트집을 잡아 사인을 안해주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에 회사를 나가는 순간까지 노심초사, 안절부절 못한다.
외국계 은행에 다녔던 모 후배는, 퇴사를 결심하고 팀장과 면담하기까지 3주의 시간이 걸렸고, 그제서야 앞으로 3주 후에 퇴사가 가능하다는 유예기간을 통보 받았다. 퇴사일을 받았으면, 인수인계를 준비하고, 업무를 마무리하는게 정상이지만, 어차피 나갈사람이라며 팀원들이 힘을 모아 일을 몰아주며 단결력을 과시했고, 후배가 나가기 전 이제껏 떠나지 못했던 휴가를 몰아쓰기에 여념이 없었다. 신입사원에 불과했던 후배는 행여 퇴사 후 직원들로부터 좋지 않은 평을 받고, 손가락질 당할까 염려되어 퇴사날도 밤10시까지 야근을 했다.
학부시절부터 을의 입장에서 죽을 둥 살 둥 취업 5종세트 패키지를 준비하고, 해맑게 웃으며 갖은 수모를 이겨낸 끝에 내 힘으로 입사한 회사지만, 자유의지로 퇴사를 결심하고 회사를 떠나는 순간까지도 을, 병의 입장에서 눈치를 봐야만 하는 곳이 바로 헬조선이다. 내 인생 내가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입사할 때부터 계약된 복지, 연봉을 제공하는 것 외에 나의 불만도, 나의 미래도, 나의 개인사도 관심 없던 조직은 직원들이 '퇴사'라는 말을 꺼내자 그제서야 급관심을 보이는 '척'하기 시작한다. 때로는, 너는 우리 회사에 굉장히 필요한 핵심인재다, 모든 불만사항을 들어주겠다는 사탕발림으로 발목을 잡지기도 하지만 딱 그 순간 뿐이다. 갑의 연애를 하다 을의 갑작스런 변심에 당황한 갑은, 을을 위해 뭐든 다해 줄 것처럼 얘기하지만 딱 그 순간일 뿐 금세 언제그랬냐는 듯 본래의 갑의 태도를 견지한다. 오로지 지금을 모면하는 것이 목적이다.
행여 내가 나가면 정말 업무가 마비되고 남은 사람들이 고생하는 건 아닐까 걱정도 해보지만, 그야말로 기우이다. 내가 맡았던 업무는 금세 주인을 찾아 분배되고, 금세 새로운 직원이 내가 비운 자리를 메운다. 직원들과 살을 부비며 쌓은 미운 정, 고운 정, 그리고 관계들은 퇴사와 함께 자연스레 포맷되어 기억에서 삭제된다. 직원들을 부속품의 일부로 생각하고 거침없이 굴리고 구박하면서, 자신의 인사고과를 위해, 새로운 직원을 교육하는 불편함을 덜기위해, 진심-less 멘트로 퇴사하는 직원들의 발목을 잡고자 궤변을 늘어놓는다.
회사 피라미드의 최상위 층에 사시는 분들은 왜 수많은 젊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변화에 대한 의지가 없다. 사내의 케케묵은 악습들을 찾아 근절하고, 쾌적하고 건강한 조직문화와 환경을 조성할 생각이 없다. 그들에게는 기존의 체제가 곧 답이고, 따르지 않는 이들은 쉽게 대체 가능한 부적응자일 뿐이다. 그래서, 한국의 회사는 외국 기업들과 달리 개인의 역량보다는 '인성'을 중요시 한다. 체제에 도전하지 않을 수 있는 인내와 케케묵은 관습들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수용력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
그래서, 그게 싫어서 빼았겼던 자신의 꿈을 되찾고, 새로운 미래를 추구하고자 퇴사를 하겠다고 얘기하는 순간에도 그 의지를 침해하고 폄하하려 한다. 월급을 덜 받고 덜 힘든 직장으로 옮길 수 있는 권리, 꿈을 위해 분야를 바꾸고 도전할 수 있는 권리, 거리낌없이 자신있게 퇴사를 외칠 수 있는 권리도 모두 개인의 자유이다. 이유가 무엇이건,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참견하고, 폄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고, 그 상황에서 개인이 죄책감을 느끼고, 눈치를 보면서 퇴사를 간곡히 부탁할 이유도 없다.
어차피 헤어질 사랑이라면 쿨하게 보내주고, 다음 사랑에게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노력할 수 있는 그런 회사, 그런 아재들이 필요하다. 사람 있고 회사가 있는 것이지, 회사가 있고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의 목표를 따라 떳떳하게 '퇴사'를 외칠 수 있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똥이 되든 뭐가 되든 내 인생이니까.
Oh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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