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 이상한 나라, 파키스탄 여행의 하이라이트
거울 앞에서 물었다. "너, 지금 행복하니?" 이 질문의 답은 '사표'였다. 배낭을 멨고,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며 길을 나섰다. 좌충우돌 세계일주 여행기를 연재한다.
훈자에 온 지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요일을 따지지 않고, 날짜를 세지 않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행 시작과 동시에 생겨난 변화이지만 훈자에선 특히 더 시간 개념을 잡기가 힘들었다. 이곳에선 모든 게 느렸다.
밥을 주문하면 사람부터 찾고 쌀을 씻는다. 그럼 어림잡아 한 시간은 족히 흘러간다. 오늘 아침엔 어젯밤에 샤워하고 난 물이 내려가지 않아 배수구를 뚫는다고 부산을 떨었다. 숙소 주인과 종업원 그리고 내가 화장실에 옹기종기 모여 펌프질을 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전기가 들어오면 밖에 나갔다가도 서둘러 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충전해야 할 기기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날은 불행하게도 훈자에 딱 하나밖에 없는 PC방이 문을 닫았다. PC방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발전기를 돌려 만든다. 발전기 소리로 영업 중임을 알리는 곳이다. 그것도 매번 가서 발전기 소리를 들어봐야 알 수 있다. 24시간 영업은 먼 나라 이야기다. 인터넷은 연결이 끊기기 일쑤다. 밤에 외로움을 못 참고 이웃 숙소로 마실을 갈 때면 헤드 랜턴을 들고 엉금엉금 돌담길을 걷는다. 훈자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은 '느림'이다.
며칠 전에는 카스에서 야반도주한 뒤 연락이 끊긴 정훈이가 훈자로 왔다. 그도 훈자의 매력에 푹 빠져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늘어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겐 트레커란 본업이 있었다. 울타르메도우는 훈자에서 가장 손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마을 꼭대기에 우뚝 서 있는 발티드성 뒤쪽으로 나 있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3~4시간이면 울타르메도우에 닿을 수 있다.
애당초 트레킹은 나와 히로(일본인) 그리곤 훈자에 한 달 넘게 장기체류 중인 '윤'이란 친구가 함께하기로 했다. 그런데 히로는 트레킹 당일 배탈이 났다. 그 바람에 윤과 둘이 울타르메도우 트레킹에 나서게 됐다.
길을 모르는 나를 위해 윤이 일일가이드를 해주고 그 대신 난 샌드위치를 사기로 했다. 윤이 묵고 있는 카리마바드인에서 샌드위치와 김치볶음밥을 챙겨 트레킹을 시작했다(참고로 카리마바드인에서는 간단한 한식을 주문할 수 있다). 말수가 적은 윤에 대해서는 집이 인천이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우린 서로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훈자에선 그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사람도 풍경도 모두 비현실적이었다.
울타르메도우로 향하는 길은 전혀 쉽지 않았다. 발이 푹푹 빠지는 자갈과 모래가 섞인 길은 체력 소모가 심했다. 딱 설악산의 오색~대청 코스 수준의 난이도였다. 거기다 곳곳이 절벽이라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바로 객사할 수 있는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윤은 바로 하산할 계획이었지만 난 울타르메도우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세끼 식사와 텐트·버너·매트리스·침낭 등을 챙기고 밤을 즐겁게 해줄 '훈자워터'로 불리는 밀주도 배낭 깊숙이 넣어 두었다. 이슬람교에서는 술을 마시거나 제조하는 걸 금지하고 있지만 훈자지역에선 로컬 증류주가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었다.
배낭이 생각만큼 무거웠던 건 아니지만 만만치 않은 경사가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가벼운 배낭을 멘 윤에 비해 자꾸만 뒤처지는 게 신경이 쓰였다.
'얼마나 멋진 풍경이기에... 젠장.'
마지막 오르막이었다. 낑낑거리며 마지막 한 발을 내디뎠다. 숙소를 출발한 지 3시간 15분 만이었다. 순식간에 시야가 열렸다.
울타르메도우의 상징 레이디핑거가 구름 사이로 수줍게 얼굴을 내밀었다. 그 아래로는 푸른 목초지가 펼쳐졌다. 순토시계는 해발 3100m를 찍었다.
소와 양들이 유유자적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은 '에덴동산'이라도 되는 것처럼 평화롭고 한가로웠다. 올라오면서 수십 번도 더 되뇌던 '내가 이 짓을 왜 하지?'란 반문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초원 한쪽에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목동과 수로 공사를 하는 마을 사람들이 신기한지 인사를 건네 왔고, 소와 양들도 내 주위에 몰려들었다. 겁 없는 양 한 마리는 음식 냄새를 맡고는 텐트 안을 뒤졌다.
이번 여행에서 첫 번째 야영이 주는 느낌은 남달랐다. 그간 애지중지한 장비들이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물을 끓였다. 그리고 아끼고 아끼던 커피믹스를 꺼냈다. 달콤한 커피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지금 기분에 커피 한 잔은 여러모로 부족했다. 훈자워터를 꺼내 이른 주안상을 차렸다. 잠시 뒤 큰 울림이 계곡을 때렸다.
"저기 폭포 같은 거 보이시죠. 눈사태가 나서 눈이 흘러내리는 거예요."
윤이 말했다.
"눈사태요?"
멀리서 하얀 눈이 큰 폭포를 만들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사태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다음날, '휘~ 후두둑! 후두둑! 휘~잉.' 텐트가 심하게 요동쳤다. 비를 동반한 바람이 텐트를 이리저리 할퀴고 있었다. 시계는 오전 7시를 가리켰다. 비가 멈추길 기다렸다 텐트 문을 열고 나갔다.
'이런 맙소사!'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 아래 레이디핑거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 있었다. 푸른 초원은 금세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이런 황홀한 절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쪽에선 소와 양들이 사이좋게 풀을 뜯고 있었다.
레이디핑거를 반찬 삼아 아침을 먹고 있자니 수로 공사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들은 내게 짜이(밀크티) 한 잔을 내밀었다. 생각지도 못한 후식이었다. 백패킹에서 빠지면 안 될 바비큐를 하지도 못했고, 말벗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혼자라서 더욱 좋은 아침이었다. 이날만큼은...
여행 정보
훈자에서는 비교적 손쉽게 '훈자워터'로 불리는 로컬증류주를 구할 수 있다. 몇몇 상점에서는 맥주를 팔기도 하지만 현지 물가에 비해서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다.
훈자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외국인과 타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곳이다. 술에 대한 이들의 생각도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는 듯했다. 그렇다고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 처음부터 술을 내미는 곳은 절대 아니다. 일단 현지인과 친해져라. 그리고 이렇게 살짝 부탁해보자.
"오늘 밤 한잔할 수 있을까요?"
훈자를 떠나기 전 정훈이, 히로와 함께 근처 온천에 다녀오기로 했다. 셋이서 왕복 1500루피를 주고 지프를 대절했다. 지프를 운전하는 아민은 온천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온천으로 향하는 네 명의 남자 모두 초행길을 달리고 있었다. 비포장도로의 먼지가 여과 없이 온몸을 뒤덮는 지프 여행은 생각보다 이색적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사파리를 하면 이런 느낌일까?
훈자에서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어렵사리 온천으로 이어지는 아담한 마을을 찾았다. 마을 주민이 말하길,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야 온천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고 했다. 잠시 뒤 내 얼굴은 사색이 됐다. 온천으로 이어지는 길은 성인 한 명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가파른 절벽이었다. 이런 길을 걸어야 하는 줄 알았으면 절대로 슬리퍼를 신고 오지 않았다.
난 아민에게 "이 길이 맞냐?"고 수차례 물었다. 그럴 때마다 아민은 자신있게 "맞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미끄러운 슬리퍼를 신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내려가다 보니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겁이 났다. 나름 산을 많이 탔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 공포감을 주는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되돌아가고 싶었다. '차에서 기다릴게'라는 '찌질한' 말을 내뱉고 싶었다.
하지만 정훈이와 히로는 이런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바짝 힘을 주며 아민의 뒤를 쫓았다.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절벽 길은 돌멩이가 하나만 빠져도 그대로 무너질 것 같이 위태위태해 보였다. 온천을 가는 길인지 황천을 가는 길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밑을 내려다보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왔던 길을 다시 올라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난간도 없는 벽에 손을 대고 몸을 최대한 바짝 안쪽으로 붙여 조심스럽게 절벽을 내려왔다. 어떻게 내려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아민을 쫓아 왼쪽으로 꺾어진 길을 따라가 보니 이번에는 산사태로 길이 끊겨 있었다.
"진짜 이 길 맞아?" 다시 아민에게 물었다.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가만 보니 한쪽에 희미하게 길이 나 있었고 작은 폭포가 나왔다. 폭포는 폭포인데 마을의 생활용수가 그대로 쏟아지는 개운치 않은 곳이었다. 폭포수가 튀지 않길 기대했지만, 폭포의 물줄기는 우악스러웠다. 머리 위로 물이 쏟아지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폭포를 지나자 드디어 온천이 등장했다.
"뭐야 이게!"
"뭐긴, 여기가 온천이야."
"어디서 목욕해?"
"저기 보이는 돌담."
"헐~"
약간 유황 냄새가 나는 것이 온천이 맞긴 했는데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온천의 개념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강변 한쪽 온천수가 솟아나는 곳에 동네 사람들이 돌담을 만들어 수시로 목욕을 하는 장소였다. 탕은 고사하고 온천이란 푯말조차 없었다.
온천수는 24시간 365일 그대로 강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목욕을 하고 싶으면 입장료 대신 목숨을 담보로 맡기면 됐다. 그 대가로 온천수를 무제한 공급받을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몸을 가릴 수 있는 돌담이 세워져 있어 볼품없는 나체가 자연과 하나 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돌담 안에는 각종 일회용 샴푸 껍질이 나뒹굴고 있었다. 확실히 온천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파키스탄의 온천은 목욕하고 싶은 마음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작렬하는 햇빛으로도 열은 충분했다. 이런 날씨에 펄펄 끓어오르는 물에 샤워라니 일사병 내지는 열사병에 걸릴 것만 같았다.
"난 목욕 안 할래!"
결국, 참고 있던 한마디를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모두 날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강렬한 햇빛 아래 모두 말이 없었다. 그늘 한 평 없는 이곳이 싫었다. 어서 빨리 훈자로 돌아가고 싶었다. 정훈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인 듯했지만 여기까지 온 게 아깝다고 했다.
정훈이는 대충 몸에 물을 찍어 바르고 서둘러 목욕을 끝내버렸다. 다음은 히로였다. 깔끔한 성격의 히로는 예상과 달리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 샤워를 시작했다. 온천의 나라 일본 출신다웠다.
"오호! 베리~굿!"
"히로! 진짜 좋아?"
"응. 최고야!"
히로의 한마디는 내 우유부단한 마음에 불을 지폈다. 새털 같은 가벼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난 히로가 목욕을 다 끝낼 즈음 신발을 벗고 있었다. "나 목욕할래." 아민은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었다. 옷을 다 벗고 파이프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천수에 몸을 적셨다. 따끈한 물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챙겨온 미니 거울을 꺼내 면도부터 하고 머리를 감고 제대로 온천욕을 즐겼다. 온천수는 생각보다 몸을 개운하게 해주었다. 그 사이 정훈이는 원탕에 넣어 둔 날달걀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뜨겁게 데워져 껍질을 벗기기조차 힘들었다. 달걀 하나를 꺼내보니 제대로 완숙이 돼 있었다. 흰자위에 준비해 간 소금을 뿌려 한입 먹어보니 별미 중에 별미였다.
일단 목욕을 했으면 개운한 맛이 좀 오래가야 하는데 다시 생활용수 폭포를 지나 '헉헉'거리며 절벽을 올라야 했다. 목욕을 하자마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디 그뿐인가. 다시 창문 없는 지프에 오르자 이번에는 흙먼지로 온몸이 뒤범벅 됐다. 숙소에 도착해 다시 샤워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12일간 훈자에서 스포츠카를 탄 거북이처럼 시간을 보냈다. 훈자는 이번 여행 중 가장 안락하고 편안한 휴식처였다. 성격 급한 내가 이곳에 열흘을 넘게 있었다. 훈자의 돌담길을 걷고 있으면 동네 꼬마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한 손 가득 자기 집 마당에 열린 체리를 따다 주었다. 그리곤 내 손을 잡고 살구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아이들의 미소가 좋았다. 고향에 온 듯 따뜻했다. 저녁을 먹곤 쏟아지는 별빛 아래 누워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시 올 것 같지 않은 마법 같은 하루가 훈자에서 일상처럼 흘러오고 흘러갔다.
여행 정보
2013년 6월 탈레반이 낭가파르바트 베이스캠프에서 등산객 11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페리메도우는 파키스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다. 세계 9위 봉 낭가파르바트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목이자, 아름다운 풍광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페리메도우에 머물던 시간이 너무나 인상 깊어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곳과 가까운 베이스캠프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다니... 사실 처음에 이 기사를 접하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 사건이 꽤 유명해진 모양이다.
파키스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 가운데 "정말 파키스탄이 위험하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훈자·페리메도우가 위치한 길기트 지역은 여행자들에게 위험한 곳이 아니다. 탈레반의 활동 거점은 더더욱 아니다. 내게 파키스탄 훈자 등은 위험이 비껴가는 마술과도 같은 장소였다. 여행을 계획했다면 나로서는 취소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그러다 파키스탄 가서 사고 나면 책임질 건가요?"
"책임 못 집니다! 낯선 여행지에서 길 가던 아주머니를 붙들고 길을 물었죠. 그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곳으로 걸어가다 넘어져 다치면 아주머니에게 치료비를 내라고 하나요?"
선택은 자기 몫이다. 용기 있는 자만이 남이 못 본 걸 볼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자문해 본다.
"내게 훈자가 위험한 곳이었나?"
저 멀리 마을 아래 훈자강이 굽이쳐 흐른다. 체리나무가 붉은색으로 물들어 간다. 길을 가다 탐스러운 체리를 입속에 넣으면 그만이다. 나뭇가지들은 바람을 벗 삼아 그들만의 소리로 대화한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설산이 여행자들을 반겨준다.
옆방에 두 달째 머물고 있는 파키스탄 청년 조헵은 매일 감미로운 기타 소리로 아침을 깨운다. 저녁이면 그의 방은 '사랑방'이 된다. 음악 소리에 맞춰 난 노트북을 연다. 그리곤 담배 한 대를 물고 그의 방문을 두드린다. 답례로 박수 이상 좋은 선물은 없었다. 검은색 도화지를 가득 채운 별들이 음악에 맞춰 초롱초롱한 빛으로 화답한다.
이 시간만큼은 감상에 빠져도 좋다. 전기는 하루에 채 한 시간이 안 들어온다. 방안 곳곳에 초가 타오른다. 숙소 방명록 한 구석에 한글로 적힌 '앉으나 서나 전기 생각'이란 문구가 무척 반갑다.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마을 사람들과 친근한 인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뒷짐을 지고 느린 걸음으로 마을 산책에 나선다. 빨리 걸을 이유가 없다. 가지각색의 표정들이 날 반긴다. 하루 사이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여인네의 웃음소리가 담을 타고 넘어온다. 호기심이 발동한다. 담장 너머로 시선을 옮긴다. 한 아이가 나를 보곤 눈을 떼지 못한다. 아이들이 펜을 달라며 쫓아온다. 그 뒤로 수줍은 듯 설산이 구름으로 장막을 친다. 걷다 힘들면 찻집에 들어가 '짜이' 한 잔으로 여유를 부려도 좋다. 카메라 렌즈 안의 훈자는 동화 속 작은 왕국 같다.
매일 마법 같은 일상이 흐른다. 평화롭고, 조용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내일의 계획도 없다. 마음이 내키면 길을 따라 산을 오르면 그뿐이다. 이 모든 게 훈자에선 가능하다. 단 하나 아쉬운 게 있다. 아니 안타까움이다. 혼자인 것이. 인샬라~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김동우 시민기자가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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