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 약속(?)의 땅 카이로에서 생긴 일
거울 앞에서 물었다. "너, 지금 행복하니?" 이 질문의 답은 '사표'였다. 배낭을 멨고,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며 길을 나섰다. 좌충우돌 세계일주 여행기를 연재한다.
[이야기1] 이집트 여행, 배고픈 무슬림의 짜증과 응징
여행자를 대상으로 절정의 사기행각이 벌어지고 있는 약속(?)의 땅 카이로에 도착했다. 퉁퉁 부어오르고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택시기사들이 몰려들었다. 여행은 케이블TV에서 줄기차게 방송하던 '2002년 한일월드컵 하이라이트'를 보는 것 같이 매번 똑같은 장면으로 시작됐다.
택시기사는 목적지인 따흐리드광장까지 20파운드를 불렀다. 결과적으로 목적지까지 10파운드에 합의했다. 중간에 택시기사는 미터로 가자며 전략을 바꿨지만 어림없는 소리였다. 길을 모르는데 미터로 갔다가는 딱 당하기 십상이었다. 이 경우 길을 빙빙 돌아 원하는 가격을 맞추는 경우가 다반사다. 다 보이는 게임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따흐리드광장은 이집트에서 정치적 상징성을 갖는 곳이지만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에겐 숙소 밀집지역으로 더 유명하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이스마일리아 호텔과 썬 호텔도 바로 이 광장 근처에 있다. 우리는 일단 이스마일리아 호텔을 목적지로 잡았다.
택시에서 내려 배낭을 메는데 동포여행자들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재빨리 그들을 쫓아가 주변 숙소정보에 대해 물었다. 이런저런 정보를 듣고 최저가 숙소인 다합 게스트하우스로 목적지를 급변경했다.
야간 이동은 체력적으로 부담을 준다. 배낭을 메고 광장 주변을 헤매고 다니는 게 짜증스럽고 힘이 들었다. 그렇다고 나이 어린 준섭이 앞에서 이런 기분을 대놓고 내색할 수도 없었다. 준섭이는 요르단 와디 무사에서 내 여행계획을 듣고는 "형! 저 이집트 따라가도 돼요?"란 한마디를 잘못 내뱉어 고생을 같이 하고 있는 둘도 없는 동지였다. 형답지 않은 형이었지만 형 노릇은 해야 했다.
어렵사리 다합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밤새 이집트식 버라이어티 이동에 시달린 우리는 병든 병아리 같았다. 뱃속을 채워야 다운된 기분이 살아날 것 같았다.
"근처에 레스토랑이 있나요?"
이집션 청년에게 물었다.
"라마단 기간에 이집트에 왜 왔죠?"
그는 질문을 질문으로 받으며 빈정거렸다.
"문 연 레스토랑이나 상점이 있으면 가르쳐 줄래요?"
다시 한 번 차분히 부탁했다.
"라마단에는 저녁이 돼야 상점들이 문을 여는 거 몰라요?"
"여기 오다 보니까. 문 연 상점이 있던데, 그건 뭔데?"
슬슬 나도 열이 받기 시작했다.
"당신이 잘못 본 거겠지!"
"아니, 난 잘못 보지 않았어. 분명히 문을 연 상점을 봤다고."
"라마단 기간에 낮에 문을 연 상점이 있다니... 난 당신 말을 믿을 수 없어요."
난 분명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라마단 기간에 제대로 먹지 못한 건 이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그 짜증을 내게 내고 있는 듯했다. 짜증 대 짜증의 싸움으로 번질 기세였다. 공복 상태에서의 싸움은 위험천만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 세치 혀는 그만 선을 넘고 말았다.
"내 말을 못 믿는 게 아니라 당신이 거짓말을 하는 거야. 무슬림은 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니?"
난 그동안 이집트에서 당한 울분을 토해내고 말았다. 참았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무슬림은 거짓말쟁이가 아니야!"
빈정거리던 얼굴이 흥분과 당혹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 그럼 내가 나가서 먹을 걸 사와 볼게."
그리곤 보란 듯 밖에 나가 비스킷과 음료수를 사 들고 돌아왔다. 그리곤 그 청년 앞에서 비닐봉지를 흔들어댔다.
"봤지! 날 못 믿는다고? 문 연 곳이 있잖아! 라마단! 풉."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우리 모두 기분이 좋지 못했다. 다음날 안 사실이지만 다합 게스트하우스는 아침 식사(유료)가 제공되는 곳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는 배고픔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그 청년이 더욱 괘씸했다.
'그래, 라마단에 이슬람 국가를 여행하는 내 잘못이지.'
일단 모자란 잠을 청했다. 카이로의 더위가 선풍기를 무용지물로 만들 때쯤 눈이 떠졌다. 목덜미에는 상쾌(?)한 비지땀이 흥건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다행히 에어컨 방이 딱 하나 남아 있었다. 10년은 족히 넘었을 골동품 에어컨이었지만 집 나간 강아지를 찾은 것처럼 기뻤다. 땀이 식자 허기가 밀려왔다. 줄곧 더운 나라를 여행하면서 체력도 바닥이 난 상태였다. 여행의 질은 음식의 질과 비례한다. 삼계탕 한 그릇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요르단에서 확인해 본 몸무게는 68kg이었다. 그때보다 2~3kg이 더 빠진 느낌이었다. 여행 출발 전 몸무게는 74kg이었다. 배낭의 무게는 갈수록 버거워지고 있었다.
우린 주린 배를 제대로 채워 보기로 했다. 이날만큼은 허리띠 풀고 돈 걱정 없이 원 없이 먹어보자며 전의를 불태웠다. 검색 결과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식당이 있었다. 택시를 타고 나일강의 여의도 격인 '자말렉'으로 방향을 잡았다. 운 좋게 '한 큐'에 한식당을 찾았다.
메뉴판에는 내 꿈의 9할을 차지하던 '산해진미'가 전부 모여 있었다. 메뉴 선택이 무척 어려웠다. 짜장면과 짬뽕 사이의 갈등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또 언제 한식을 맛볼지 모를 일이었다. 허리띠 풀고 돈 걱정 없이 먹어보자고 했지만,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은 그리 많지 않았다. 메뉴판에 적힌 가격은 사악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혼이 나간 상태였다. 현지 길거리 음식의 수십배에 달하는 가격이 제대로 보일 리 없었다.
"삼겹살에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 주세요. 짬뽕은 이따 주시고요."
이성을 상실한 주문이었다.
"형 괜찮겠어요?"
"아 몰라."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소주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소주 한 병이 무려 100파운드나 했다.
우리 돈 2만 원이었다.
"먹기로 한 거 눈 딱 감고 마셔! 뒤처리는 형이 할게."
한 번의 선택이 '엥겔지수'를 순식간에 폭등시켰다. 직장생활 중 수없이 조제했던 폭탄주를 '황금 비율'로 정성스럽게 말았다. 목구멍에 기름칠이라도 한 것처럼 폭탄주 한 잔이 그대로 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캬~아~"
위장이 소맥을 흔적조차 없이 흡수해 버렸다. 빈속이었지만 알싸한 느낌조차 받지 못했다. 열린 식도 속으로 두 번째 알코올이 흘러 들어갔다. 게 눈 감추듯 술이 '술~술~' 들어가는 날이었다.
"달다! 달어!"
여기다 노릇하게 바싹 구워진 삼겹살 한 점을 쌈장에 찍어 구운 마늘, 무생채 등과 함께 쌈 위에 올려 먹어 보니 이건 필시 '황홀경'이었다. 몇 순배 잔이 돌자 기분 좋게 취기가 올랐다.
그리곤 요르단부터 준섭이가 노래를 하던 짬뽕으로 입가심을 했다. 해물 건더기의 식감과 시뻘건 국물이 주는 자극은 또 한 번 우리를 무아지경으로 몰아넣었다.
이마는 송골송골 맺힌 기분 좋은 땀방울로 반짝였다. 돼지고기의 육즙과 짬뽕의 얼큰함이 이런 큰 기쁨을 줄지 미처 모르고 살았다. 꼭 고향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여행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한편으론 한식에 길들여진 내 저주받은 혀가 밉기도 했다. 이때였다. 테이블 한쪽에 계산서가 놓였다.
'헉!'
여행에서 한식은 '등골브레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다.
[여행 정보] 카이로 추천 여행지
1. 무함마드알리 모스크
이스탄불의 사원을 모방해 만든 무함마드알리 모스크에는 연필 모양으로 높게 솟은 2개의 첨탑과 웅장한 돔이 있다. 이슬람교의 전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곳은 관광객의 필수 코스다.
2. 카이로 시타델
시타델은 살라딘이 1176년 무캄마 언덕 위에 지은 요새로, 십자군에 대항하는 거점이었다. 시타델에는 무함마드알리 모스크가 있으며 마무르 왕조, 오스만 왕조 시대의 건축물, 감옥, 탑 등 역사적인 볼거리들로 가득하다.
3. 이집트 박물관
이집트 박물관에 가면 사진으로만 보던 투탕카멘을 볼 수 있다. 미라 전시관은 따로 관람료를 내야 한다. 이집트 박물관은 역사 자료가 많아 천천히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넉넉하게 시간을 잡으면 종일 머물 수 있다. 또 이집트의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장소로도 제격이다.
[이야기2] 피라미드 관람기 "경계를 늦추지 마라!"
유적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집트에 와서 피라미드를 놓칠 순 없었다.
다합 게스트하우스에서 영국 친구 톰과 함께 택시를 대절해 카이로 인근 피라미드 3곳을 한 번에 둘러보기로 했다. 택시 대절비용은 200파운드였다. 약간 비싼 감이 있었지만, 톰이 먼저 계약을 해놓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톰의 협상력은 우리 식의 철수란 이름만큼이나 특별할 것이 없었다.
스핑크스가 있는 기자 피라미드는 카이로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페트라만큼은 아니었지만, 피라미드가 주는 아우라는 기대 이상이었다. 택시가 카이로 도심을 빠져나오자 멀리 사막 위에 우뚝 솟은 기자 피라미드가 눈에 들어왔다. 엄청난 크기라는 걸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입장권을 구매한 뒤 피라미드 입구에 들어섰다. 스핑크스가 지그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핑크스는 발굴 전까지는 모래에 묻혀 머리 부분만 내놓고 있었다고 한다. 나폴레옹군의 사격으로 코가 떨어져 나갔다고 알려진 스핑크스 앞에 서보니 이상하게도 만감이 교차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피라미드 앞에 서 있다는 게 약간은 믿기지 않았다.
유적지는 하나같이 전율은 고사하고 충격이 없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피라미드의 풍채는 범상치 않았다. 잠시 스핑크스를 올려다봤다. 그때였다.
"티켓!"
멋들어지게 이집트 전통복장을 차려입은 한 노인이 우리를 보고는 티켓을 요구했다. 노인의 언행은 당당했고 기품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주섬주섬 티켓을 찾아 내밀었다.
"모두 날 따라오세요!"
절도 있고 품격 있는 모습이었다.
정체불명의 노인을 따라 스핑크스로 향했다. 그는 간략하게 자기 소개를 한 뒤 스핑크스의 역사적 배경 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유창한 영어였다. 톰은 귀를 쫑긋하고 노인의 설명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했다.
"톰, 톰. 잠깐만. 저 사람 누군지 알아?"
"아니? 너는 알아?"
"몰라. 이상하지 않아?"
"그러게."
톰은 그때야 낌새를 차린 듯했다. 노인은 스핑크스에 대해 열을 다해 설명을 계속해 나갔다.
"저기, 잠깐만요. 그런데 누구세요?"
톰이 말했다.
"저는 여러분의 가이드입니다."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란 말인가.
"톰, 너 가이드 고용한 적 있어?"
"아니."
"준섭이 네가 했니?"
"당근 아니죠."
피라미드 입장티켓에 가이드 비용이 포함돼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무슨 가이드요? 우리는 가이드 필요 없는데요."
내가 거들고 나섰다.
"아 그게. 그냥 수고비만 조금 주면 됩니다."
그는 간사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집션의 웃음은 항상 같은 느낌이다. 순간 노인의 절도 있고 기품 있는 모습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내가 선창을 했다.
"NO!"
노인은 사기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뻔뻔함과 당당함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인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이 주는 여운은 온데간데없었다.
다음은 쿠푸왕 피라미드(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피라미드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이 피라미드는 기원전 265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가장 크고 오래됐다. 원래 높이는 145m로, 수 톤 무게의 석재들만 200만 개를 쌓아 만들었다고 한다. 건설 기간은 20년 정도인데 10만 명의 인원이 동원됐다.)를 둘러볼 차례였다.
스핑크스에서 쿠푸왕 피라미드까지 가는 길에는 낙타 몰이꾼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 사진을 찍자고 했다. 사진을 찍으면 100% 모델료를 요구하는 고전적인 상술이었다.
그들을 뒤로 하고 쿠푸왕 피라미드 앞에 섰다. 엄청난 크기에 감동을 받는 것도 잠깐. 이 더위에 저걸 만든다고 20년간 고생했을 인부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그리 편치 못했다.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에서 피라미드의 무수한 돌을 보고 프랑스 국경에 장벽을 세울 수 있겠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피라미드 앞에서도 낙타 몰이꾼들의 유혹은 계속됐다. 그러다 흰색 제복 차림의 경찰이 다가왔다.
"같이 사진 찍을까요?"
경찰이 말했다. 그의 제복은 내 경계심을 한순간에 무장해제시켜 버렸다.
"오케바리죠."
현지 경찰과 추억을 남기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돈을 주셔야 하는데..."
"뭐! 무슨 돈!"
"사진 값!"
여행자의 피골을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경찰이 내 앞에서 노골적으로 뒷돈을 요구하고 있었다.
"당신 경찰 아니야?"
"맞지."
"당신 경찰 아니냐고?"
"응 그래 맞아!"
"당신 경찰 맞지?"
"아~ 아, 알겠어, 알겠다고."
정색을 하고 그를 쏘아보며 경찰 신분을 상기시켰다. 그는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가 너무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 여긴 이집트야, 이집트. 정신 차려!' 도저히 이 어이없는 상황을 감당할 수가 없어 혼잣말을 내뱉었다.
피라미드는 뙤약볕 아래 불신과 탐욕으로 이글거렸다. 그리고 중국 리탕에서 본 천장이 떠올랐다. 어쩜 이리 다를까.
여행 정보
이집트에서 첫손에 꼽히는 관광지는 역시나 피라미드다. 특히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쿠푸왕 피라미드는 제일 인기가 높다. 하지만 피라미드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호객꾼들의 상술에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능력이 있어야 한다.
알고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가장 악명 높은 장소이기도 하다. 호객꾼들이 원하는 건 100% 돈이다. 피라미드에서는 아무리 친절한 현지인을 만났다고 해도 결국 나중에는 돈을 요구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야기3] 아직도 믿음이 남았던가?
피라미드 3개를 둘러보는 강행군의 여파는 컸다. 다음날 우리는 계획했던 박물관 관람을 전격 연기했다. 카이로의 열기를 고물 에어컨으로 맞서며 어서 해가 넘어가길 기다렸다. 이집트의 더위는 내 모든 의욕을 집어삼켜 버렸다.
라마단 기간 중 현지인들은 오후 7시부터 식사를 했다. 우리는 이집션의 식사시간에 맞춰 거리로 나섰다. 외국인을 상대로 조금 일찍 문을 여는 레스토랑이 있었지만, 이 눈치 저 눈치 안 보고, 먹으라는 시간에 먹는 게 마음 편했다.
이날 찾은 음식점은 이집트 전통음식으로 유명한 '펠펠라'란 레스토랑이었다. 식당 안은 일본 여행자들이 이미 꽉 들어차 있었다. 그들은 음식을 먹고 있었고 현지인들은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있었다. 극명한 대조였다.
우리는 이 집에서 유명하다는 '코샤리' 등을 주문했다. 코샤리는 스파게티 같은 맛에 파스타와 쌀이 함께 들어가 있는 음식이었다. 맛은 요르단에서 먹어본 팔라펠 같았다. 그 사이 이집션들이 엄청난 속도와 양으로 하루 동안 주린 배를 채워나갔다.
간단히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키모'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그는 길가의 작은 화랑에서 걸어 나오던 참이었다. 키모는 이틀 전 숙소 앞에서 같이 차를 한 잔 마신 이집트 청년이다. 당시 그는 우리를 아침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웬 아침 식사 초대인지 어리둥절했는데 알고 보니 라마단 기간 중 아침은 저녁을 뜻했다. 하루에 첫 번째 먹는 끼니라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누구의 초대인가? 이집션의 초대가 아닌가. 호의를 호의로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래저래 전화번호를 받고 시간이 되면 연락을 하겠다고 했었다. 키모는 우리를 보고 "왜 식사 초대에 오지 않았냐"며 "지금이라도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저게 너네 가게니?"
"어, 삼촌 가게야."
"저기서 밥을 먹는 거지?"
"응."
웃음이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순순히 공짜로 저녁 식사를 베풀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는 가게로 들어가자고 했다.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이렇게 집요하게 밥을 먹자고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키모를 따라 들어간 가게는 며칠 전 그가 말한 삼촌이란 사람을 따라 들어간 적이 있던 화랑이었다.
1층에선 직원들이 한창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 어서 와서 저녁을 들라며 자리를 내줬다. 키모는 이미 저녁을 먹었다는 내 말에 우리를 2층으로 안내했다. 그는 따뜻한 차를 내왔다. 그리고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진 속에는 '무하마드 알리'와 키모의 할아버지가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가 가게를 운영할 때 알리가 여길 방문했다"고 말했다. 분명히 사진 속에 덩치 좋은 청년은 알리가 맞았다. 그런데 그 옆에 서 있는 노인이 키모의 조상인지 알 길이 없었다. 2층은 향수를 전문으로 파는 상점이었다.
"이 향수는 무알콜이어서 몸에 좋고 자연원료여서 유통기간도 없어."
닳고 닳은 상품 설명이 유창하게 이어졌다. 늑대인간이 보름달을 만난 것처럼 키모의 본색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제일 작은 병에 향수를 담으면 얼마냐?"고 물으니 키모는 우리 돈 3만 원쯤을 불렀다. 물론 네고를 하면 반도 안 되는 가격에 절충되겠지만 어디 향수가 필요한 시점이던가. 대충 설명을 듣고는 가게를 빠져나왔다.
"오늘 정말 이집션한테 실망했어요!"
숙소로 돌아와 준섭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준섭이는 그간 수많은 이집션을 상대하고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나 보다.
"왜?"
"키모 말이에요. 정말 그럴 줄 몰랐어요."
"풉."
"에이 ×자식들 정말..."
준섭이가 허공에 대고 욕을 퍼부었다.
준섭이는 터키로 떠났고, 난 에티오피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카이로 공항으로 향했다. 준섭이를 따라 터키에 가고 싶었지만, 터키에서 아프리카로 내려가는 항공료가 만만치 않았다. 아쉬운 이별이었다.
엑스레이 검사를 위해 배낭을 검사대에 올렸다. 검사원은 기계에서 빠져나온 내 배낭을 열라고 했다.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거기서 맥가이버칼을 찾아냈다. 그리곤 칼을 압수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에서 한 번도 문제 된 적이 없는 소지품이었다.
"아놔. 뭔 압수!"
"저기 친구..."
"뭔 친구!"
"방법이 있긴 한데 친구..."
"뭔 방법! 짐으로 보내는 배낭에 들어가 있는 게 왜 문제가 되는데?"
"친구, 저기 있잖아..."
검사원은 나를 보고 간사하기 짝이 없는 눈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칼을 돌려줄테니 약간의 적선을 하라는 뜻이었다. 이집트는 이토록 일관성 있는 나라였다.
'모든 꽃이 시들 듯이 청춘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생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깨달음도 그때그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영원하진 않으리.
삶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은 슬퍼하지 않고
새로운 문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이별과 재출발의 각오를 해야만 한다.
무릇 모든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그것이 우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공간들을 하나씩 지나가야 한다.
어느 장소에서도 고향에서와 같은 집착을 가져선 안 된다.
우주의 정신은 우리를 붙잡아 두거나 구속하지 않고 우리를 한 단계씩 높이며 넓히려 한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그러면 임종의 순간에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향해
즐겁게 출발하리라.'
-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중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김동우 시민기자가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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