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여행 ①] 하루 경비 250달러, 자유여행 금지... 그래도 간다
크기는 남한 면적의 반 정도, 인구는 70만 명 정도이며 1인당 국민소득 6500달러, 왕정을 포기하고 입헌군주제를 선언한 나라, 산림의 60%를 보존해야 하는 나라, 신호등을 거부하고 수신호로만 교통정리를 하는 나라… 행복하면 떠오르는 나라, 은둔의 왕국 부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부탄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네팔이나 방콕과 인도를 경유하는 방법인데 부탄 국적기인 드룩에어와 부탄 에어라인을 이용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부탄으로 가는 직항은 없다. 여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네팔을 경유하면 히말라야 산맥을 보다 또렷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총 비행시간과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든다. 이 때문에 히말라야 뷰 대신 시간이 적게 들고 비용 부담이 적은 방콕 경유를 선택했다. 방콕에서 드룩에어를 타고 인도 캘커타를 경유해 약 3시간 반을 날아 부탄 파로공항에 도착하는 코스다.
드룩에어에 오르자 부탄 전통의상 '키라'를 입은 승무원이 반갑게 맞아 준다. 키라는 긴 치마와 위에 입는 저고리 개념의 옷(안과 겉 두 가지 종류)으로 구성된다. 아침마다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부탄의 여성들도 키라의 색깔을 어떻게 맞춰 입을지 생각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또 남녀 승무원 모두 왼쪽 가슴에 국왕 부부 사진이 박혀 있는 브로치를 차고 있다. 여행시작부터 국왕 부부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이 느껴진다.
멀리 어렴풋이 만년설을 덮고 있는 설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사이 비행기는 도착이 임박한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서서히 고도를 낮추던 비행기는 산과 산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계곡을 기습했다. 히말라야 산맥 속에 숨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 부탄 파로 국제공항이 가까워졌단 이야기였다. 급격하게 좌우로 산맥의 흐름이 바뀌자 비행기는 협곡 안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손엔 식은땀이 흘렀다. 아찔한 비행은 착륙 직전까지 계속됐다.
부탄에서 유일한 국제공항의 활주로는 흡사 우리나라 자동차 전용도로와 같은 모습이었다. 공항청사도 우리나라 지방 소도시 시외버스터미널 느낌으로, 모든 입국객이 비행기에 내려 청사까지 걸어 이동하는 게 특징이다. 여행 중 가장 느린 입국 광경이었다.
입국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5대 국왕 부부의 사진이었다. 행복해 보이는 국왕 내외는 멋들어진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있었다. 부탄을 여행지로 선택한 건 바로 이들의 행복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행복'은 부탄이란 나라를 떠올릴 때 자연스레 생각나는 단어이기도 했다.
부탄은 국민총생산(GNP)을 버리고 GNH(Gross National Happiness; 국민총행복도)를 선택한 유일한 국가다. 4대 국왕인 지그메 싱게 왕추크는 1972년 17세 나이에 GNP가 빈부격차를 심화하고 자연을 파괴하며 인간을 황폐하게 만든다고 판단, GNH 개념을 내놓았다.
이후 그의 아들이자 5대 국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옐 왕추크 역시 아버지의 이념을 이어받아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정책들을 수립하고 추진해나가고 있다. 지속가능하고 공평한 사회경제 발전과 생태계 보전 및 회복, 부탄의 전통과 정체성을 실현하는 문화의 보전과 증진,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좋은 협치 등이 5대 국왕의 정책이다.
입국장은 한가롭다. 이곳에선 길게 늘어선 줄, 삭막한 검색대, 짐을 찾기 위해 혈안이 돼있는 여행객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듯 여행의 시작은 편안하고 순조로운 듯했다. 짐을 찾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이드를 만나기 위해 막 입국장을 빠져 나가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부탄 입국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있었으니... 부탄에선 2004년 말부터 담배의 수입과 판매,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이 전면 금지됐다. 담배를 외국에서 갖고 들어올 수는 있지만 무려 200%의 관세가 붙는다. 배낭 속 담배들을 지키기 위해선 20달러가 넘는 관세를 내야했다.
부탄여행ⓒ 김동우
그렇게 조금은 씁쓸하게 부탄에서의 5박 6일을 안내해 줄 가이드와 드라이버를 만났다. 20대 초반의 페마 유딘(가이드)과 30대 초반의 페마 도지(드라이버)가 부탄 여행의 동반자였다. 유딘과 도지 역시 부탄의 전통의상 키라와 고를 입고 있었다. 고구려 수렵도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의 전통의상을 입은 두 명의 안내자는 밝은 미소로 방문자를 반기며 환영의 의미로 흰색 스카프를 목에 걸어 주었다.
부탄은 외국인의 자유여행을 정책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부탄을 여행하기 위해선 부탄 정부에서 공식 승인한 현지 여행사를 통해야만 한다. 물론 반드시 전 일정을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관광객 1인당 하루 비용으로 200~250달러가 든다. 여기에는 호텔, 식사(주류 비용 제외), 가이드, 드라이버, 차량, 입장료 등이 모두 포함된다.
우린 파로 공항을 떠나 부탄의 수도 팀푸로 향했다. 부탄의 수도 팀푸는 히말라야 산맥, 해발 2400m 장소에 세워진 도시다. 파로에서 팀푸로 가는 길은 마치 일본 같기도, 티베트 같기도 한 전통 가옥들이 눈길을 잡아 세웠다. 갑자기 부탄은 국토가 좁아 이민이나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렇게나 널찍널찍~ 여유로운데? 부탄 정부 사람들을 서울 한복판으로 데려오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팀푸로 가기 위해선 꼬불꼬불 낭떠러지 길을 1시간 가량 가야 했다. 시속 40km~60km가 제한 속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IF YOU ARE MARRIED DIVORCE SPEED' 중간 중간 재미있는 속도제한 문구가 눈에 띈다.
팀푸에 도착해 처음으로 향한 곳은 '쿠엔셀 포드랑 자연공원(Kuensel Phodrang Nature Park)'. 매력적인 부탄의 바람을 맞으며 15분 가량 언덕에 오르니 팀푸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뷰 포인트가 나왔다. 곳곳에서 불교 경전이 적혀 있는 룽다가 흩날린다. 이제야 가슴이 탁 트이는 게 '부탄에 오긴 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해발 2500m의 산중턱,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만들어진 최고 높이(62m)의 좌불상 앞에 서니 들뜬 여행 기분은 배가 됐다. '도르덴마', 혹은 'Buddha Point'라고 불리는 이 불상은 온통 금빛으로 뒤덮여 있는데 한 손엔 풍요로움과 자비를 뜻하는 밥그릇이 들려있다.
두 번째 행선지는 'National Textile 박물관'. 부탄의 옛날 전통 무늬에서부터 최신 트렌드에 이르기까지 모든 직물 기술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이 박물관은 4대 왕의 네 번째 왕비가 기부해 세워졌다. 검소한 생활과 기부의 생활화, 그로 인한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 3박자가 고루 갖춰져 있는 부탄 지도자상이 왠지 모르게 부러워졌다. 유딘의 휴대폰 배경을 채우고 있는 국왕 부부의 사진이 '어쩜 가식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내 의심이 슬그머니 부끄러웠다.
기하학적 무늬와 전통 나무 조각으로 가득한 팀푸의 숙소는 생각보다 깨끗했다. 특히 로비 소파에 앉아 올려다본 호텔 천장은 부탄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통에 대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부탄은 신축 건물을 전통식으로 짓도록 하고 있다.
호텔에서 부탄 맥주인 'druk Lager'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간단히 한 뒤엔 조심스레 숙소를 나섰다. 외국인들의 자유여행을 금지하고 있는 부탄인 만큼, 처음엔 혹시나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나선 팀푸 거리에서 가장 먼저 마주친 건 수 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의식을 치르고 있는 장면이었다. 멈칫멈칫, 군중들 뒤에서 사진을 찍을까말까 눈치를 보는 내 모습을 보고 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오셨어요."
"네, 한국에서 왔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사진 찍고 싶으시면 찍으셔도 돼요."
"무슨 행사죠."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거예요."
유창한 영어실력과 친절한 마음씨에 놀랐고,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 또 한 번 놀랐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김동우 시민기자가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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