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간이영원하기를 May 29. 2022

너의 빈자리

너를 그리워하는 시간 D+13

아이가 쓰던 목욕의자를 치웠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중증장애인들은

목욕시키는 일이 가장 큰 일 중 하나다.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거나 제대로 가누질 못하니,

누워있는 채로 목욕해야 하고

이 때문에 물이 빠지는 목욕의자가 필요한데,

이 물건은 보기엔 간단한 물건 같아도

가격은 몇 백만에 달하는 고가다.  

나역시 가격 때문에 구매를 망설이던 차에 운이 좋게도 중증장애아를 키우는 맘카페에서 나눔받았고,

그뒤로 2년 가까이 요긴하게 쓰면서, 

손이 가장 많이 간 나만의 육아템 중 하나가 되었다.


저 큰 의자를 대각선으로 욕실에 눕혀 자리잡고,

다시 그 위에 아이를 눕힌다.

목욕을 마치면

곳곳에 낀 아이의 실오라기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고,

남아있을지 모르는 바디워시를 마저 헹궈서

잘 마르도록 욕조에 안에 의자를 세워두곤 한다.   


오늘 이 목욕의자가 우리집을 떠났다.  


약기운에 낮잠을 자고 난 직후여서 그랬던가.

이 목욕의자를 받아가서 쓰겠다고 한 아이 아빠가

시간맞춰 도착했고,  

센스있는 아이스커피 두잔과 맞바꿔 왔을 때까지는 별생각이 없었다.

저녁 한그릇 뚝딱에, 약간의 맥주까지 마시고,

실컷 드라마를 보고 웃다가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욕조 속 텅빈 자리를 보는 순간,  

동시에 마음 속에서, 뭔가,

쿵하고 내려앉아 커다란 구멍을 뚫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이의 발인을 마치고 이틀 뒤에

아이가 있던 자리를 정리했다.

몇 달을 손도 못대는 엄마도 있다는데,

아이의 죽음을 제대로 실감하기도 전에,

그 빈자리를 느끼기 두려워서,

황급히 아이가 누워있던 거실의 가구배치를 바꿔버리고나니,

그동안 아이의 빈자리를 물리적으로 느낄 새는 없었던 셈이다.

욕조 안 반쯤은 세숫대야가 차지했고,

남은 반쪽에 늘 높게 세워져있던, 꽤 큰 초록색 목욕의자.

언제나 우리집 거실 화장실을 꽉 채우고 있던 느낌의

그 의자가 사라지니, 유히 욕조가 텅비어보인다.


저게 너의 빈자리구나.


몸을 가누기 어려운 중증 환아들은 몸집이 커갈수록,

간병하는 입장에선 아이를 씻기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 가정에서 아빠가 출근했을 때

엄마 혼자 족히 10kg이 넘는 아이들을 안아서 옮기고,

씻긴후, 다시 말리고 또 다시 옮기는 과정은

엄마의 몸에 굉장히 무리가 가는 과정일 뿐 아니라,

자칫하면 아이까지도 다칠 수 있는

상당히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또래에 비해 유난히 작고 마른 나의 아이는  

네살의 나이에 8키로도 되지 않은, 아주 여린 몸이었지만,  

그런 아이를 들어 옮기는 일도

하루하루 날이 지날수록 쉽지 않다고 느껴졌다.  

주렁주렁 달린 인공호흡기와 산소발생기의 코드를 뽑고,  

산소포화도 센서를 떼고,

코에 달린 콧줄은 오염되지 않게 잘 감싸고,  

옷을 벗기고 옮겨서, 씻기고, 다시 옮기고,  

중간중간 아이가 불편함에 가래나 침이 올라오면

석션을 해줘야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목욕에 걸리는 시간은 두시간 남짓.  

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힘조절을 조금이라도 잘못한 날에는

허리가 미친듯이 아프고,

정신없이 맞춘 다음 수유시간이 되면

이미 진이 다 빠져 너덜너덜한 상태가 되곤 한다.


한번은 아이의 목욕 과정을 알게된 지인이,

밖에 나가지도 않는 아이를 뭘 그리 자주 씻기냐며,

쉬엄쉬엄하라는 말을 한 적 있다.  

물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안쓰러움에 한 말이겠지만,  

틀린말 하나 없는 그 말이 내 맘을 아주 날카롭게 베었다.  
나는 내 아이가 아픈 아이라고 해도

늘 깔끔하게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좋은 냄새가 나게, 누가 봐도 예쁘게,

그리고 언제 떠나도 후회없을 모습이게.


죽고난 뒤의 팬티가 더러울까 걱정했던 한 시인의 시구가 학생시절 충격을 안겨줬었다.

그뒤로 나는 언제나 죽음을 준비해둔 사람이고 싶었는데,

막상 내 아이가 항상 죽음과 삶의 아주 얕은 경계에 서있자,

목욕 하나도,

너무나도 절박한 심정으로,

마치 나만의 의식처럼 행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목욕의자가 생긴 이후로 일주일에 매일,

아이가 7kg을 넘어섰을 때는 두번에서 세번이상,

꼬박꼬박 목욕을 시켜주었다.

몸이 너무 아파서 서럽기도 했고,  

빠듯한 하루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면

늘 사고가 발생하는 법,

넘어져 다치기도 했고,

멘붕에 빠지게 만드는 순간들이 수도 없이 찾아왔지만,

재활운동조차 하지 않는 나의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스킨십이라는 나의 신념은 굳건했다.


목욕을 시켜주며,

듣지 못하는 아이에게 수없이 많은 말을 건넸다.

아이의 몸 곳곳을 살펴봤고,

부유방이 생긴 것도, 팔뚝에 지방종을 발견한 것도,

고관절의 변형을 알아낸 것도 모두 그 의자에서였다.

그리고 연명치료 중단일 전 마지막 목욕시간 역시

그 의자에서 함께 했다.

마지막으로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정성껏,

아이의 몸 구석구석을 씻겨주며 살펴보았다.


남들보기에 허름하고 거대하기만 한,

얼핏보면 그저 그물로 된 비치의자 같은 저 의자가 남기고 간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놀랐다.


감히 그 크기를 비할 바는 못되지만,

이게 너의 빈자리구나.

아주 크지도, 그렇다고 그저 작지도 않은.

그래도 분명히 그 빈자리가 표가 나는, 딱 이 만큼.

너의 빈자리가

욕실에 들어설 때마다 자꾸 마음을 아리게 한다.


작가의 이전글 악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