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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Jul 07. 2022

다행이어서, 부끄러웠다

너를 그리워하는 시간 D+51

세수를 하고 나오니 그는 소파에 누워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화면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뭔가 분명 빛나고 있었다.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는 거야?

왜 울어?


말이 없었다. 

물어보긴 했지만,

나는 이게 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침묵이라기보다 참음에 가까운, 

한마디라도 입을 열면 울음이 쏟아질 것 같은, 

그런 순간이었다. 


그냥, 연우 생각이 나서. 


아이 사진을 뒤적이다, 

추억들에 밀려오는 감정들에 깔려 그의 감정도 결국 터져버린 것이다. 

나는 내내 울었다. 

지난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툭하면 울었다. 

컴퓨터를 하다가, 책을 읽다가, 밥을 먹다가, 유튜브를 보다가.

시도 때도 없이 아이 생각이 나 울었다. 

그는 달랐고, 그럴 때마다 머쓱하기도, 

나만 자꾸 우는 것 같다는 민망함이 넘치다 못해

심지어는 저 사람은 나만큼 아이 생각이 나긴 할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드디어 예고 없이 남편의 눈물을 마주한 순간, 

조금 미안하지만, 나도 모르게 안도해버렸다.

 

당신도 그립구나. 당신도 나처럼 보고 싶구나. 


너무 당연한 사실을 나는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아주 작은 못된 마음으로 안도하고 말았다.


나는 항상 걱정했다.

아이가 떠나고 나면 다른 부부들처럼 우리도 멀어지지 않을까, 그러다 헤어지지 않을까, 

서로의 얼굴을 볼 때마다 아이가 생각나서 매번 슬프니까, 

유일한 연결고리인 아이가 없으니까 유대감이 없어서, 

아이의 죽음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서로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남아있다가,

그렇게 헤어지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남편과 내가 슬쩍 마음으로 멀어지게 되는 건 

서로의 슬픔을 외면하는 순간이었다. 

너무나도 다른 성격의 우리는 슬픔도 각자의 방식대로 품고, 풀고 있었다. 

그래서 툭하면 그립다고 우는 나는 나 스스로가 항상 과한 것 같으면서 

남편의 미지근한 반응이 석연치 않았고,

사는 동안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꺼내본 적이 좀처럼 없는 남편은 

자식을 잃은 그 깊은 슬픔마저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를 뿐이었다.


왜 나는 맨날 나만 슬픈 것 같지. 

저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지. 

지금 저 사람은 벌써 다 극복한 걸까. 

왜 나만 이렇게 극복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이 슬픔을 자꾸 내 눈에 보이는 유일한 대상인 남편에 끊임없이 비교하고,

끝내 남편의 눈물을 보고 나서야 알 수 없는 만족을 느낀 것이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모르겠다.


당신도 나랑 같구나, 싶은 마음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스스로가 얼마나 부끄럽던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 

내 아이가 바라는 애도는 이런 게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고, 정리해봐야겠다. 

내 슬픔과 남편의 슬픔의 크기를 비교할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 속에서 기쁨들을 찾아내야겠다. 

너를 만나고, 보내기까지 우리가 했던 그 모든 시간에 대한 기록들을 정리해보기로 한다. 

끝내 너를 보내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되지 않았던, 

우리가 했던 모든 준비를 위한 준비들을 하나하나 되새겨보기로한다. 

한심하지 않고, 미련하지 않게,

나의 이 슬픔을 조금이나마 생산적으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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