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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Jul 05. 2022

산 자들의 퍼포먼스

너를 그리워하는 시간 D+49

아이의 49재다. 

의식 없이 누워 지낸 채,

얇은 튜브에 의존해 환자식만 먹어본 나의 아기를 위해, 

나와 남편은 종종 아이의 변비를 해결하고자 먹이던 주스, 

생전에는 먹어보지도 못했던 빵과 아기 과자, 

혀에 자극을 주겠다며 한 두 번 시도하다,

결국 아무 소득 없이 포기했던 무설탕 사탕을

초라하게 상에 올려두었다. 

워낙 잘 먹지 못하고 떠난 아이였으니, 

마지막 가는 길마저 굶고 가지 말라는 의미였으나, 

생전 먹어보지도 못한 음식이 의미가 있을까, 

남들은 좋아하는 음식을 올린다는데, 

푸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생전에 먹던 환자식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이 상차림이 나는 영 맘에 들지 않았았다. 

넓은 제례실에 아기 사진을 띄워놓고, 남편 그리고 나. 

덩그러니 앉아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있자니,

해야 해서 하긴 하는데, 뭘 해야 할지는 모르는, 

이런 의식도 다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애니메이션 코코를 참 좋아한다. 

사진으로 가족들이 기억도 해주고, 맛있는 음식도 차려줘야지. 

그래야 영혼이 신나게 금잔화 길을 건너와,

음식도 맛보고 가족들을 살펴보겠지.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 

지금 이 순간,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서까지 내 행위의 정당성을 찾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건 아닌지,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아이를 간병하던 어느 날, 

정신없는 일과 중 갑자기 문득, 

눈 하나 깜빡이지 못하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을 때면,

자주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의 아기는 살아있는 걸까?. 

나는 이미 죽은 아기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둔 것이 아닐까. 


더 이상 아이의 상태가 생명유지조차 버겁다는 의료진 판단 하에 

남편과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할 즈음에, 


연명치료 중단이 정말 아이를 위한 길일까?

이 아이가 혹시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데 표현할 방법이 없다면 어쩌지?


매 순간 의심이었고, 모든 순간이 믿음의 영역이었다.  


의식 없이 태어나 인공호흡기를 달고, 

스스로 원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는 나의 아이를 간병하면서 살려냈던 시간부터, 

아이를 위한 마지막을 결정하고, 

그 마지막 위한 모든 준비의 과정들, 

그리고 죽음 이후의 의식들까지. 

어느 것 하나 내 아이의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 없었다. 

이 모든 건 남겨진 자, 산 자들의 퍼포먼스였다. 

그리고 이것을 산 자들의 퍼포먼스라고 느끼는 것은 나의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너의 모든 걸 내 마음대로 결정해서 미안하다.


아이가 갈아입을 옷까지 마련해주고 저녁 늦게 돌아온 나에게 친정엄마는, 

고생했다며, 

아이는 좋은 곳으로 갔을 테니, 이제 편히 잠 좀 자라는 말도 빼먹지 않는다. 

그래, 이 역시 산 자들의 살아가기 위한 위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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