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간이영원하기를 Jun 27. 2022

그리움은 너무 동적이라

너를 그리워 하는 시간 D+42

또 울어버렸다. 

-

아이의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한 달이 지나서였을까. 

자꾸 찾아오는 어지럼증을 동반한 구토와 오한에 심상치 않다 싶어 

이비인후과를 방문했었다. 

그때가 이미 올해만 해도 세 번째쯤. 

머리 쪽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 MRI를 찍었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남편과 나는 이석증을 의심하고 있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진찰은 생각보다 많은 검사를 필요로 했고, 

결과는 뜻밖이었다. 

-

메니에르.

-

쉽게 말하면 귓속에 생기는 고혈압 같은 것이었다. 

고막 안쪽으로 물이 차서 생기는 압력 차이 때문에

엄청난 두통을 동반한 어지럼증과 이명, 구토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잘 자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물 많이 드셔야 해요"


그래. 이게 정석이지. 

하지만 나는 아이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루 건너 하루 우는 사람이었고, 매일 24시간을 남편과 2교대로 간병 중이었다. 

메니에르는 내 곁을 떠날 새가 없었다. 

아이가 떠나고, 나는 여전히 울고 아직도 잠을 못 자며, 

자꾸 알 수 없는 스트레스가 치밀어 올라온다. 

메니에르 역시 나아질 기미가 없다. 

아이가 떠나기 한 달 전의 감정은 그 감정대로. 

떠난 후의 감정은 그 감정대로. 

그리고 한 달이 지났으니 새로운 감정이 싹 틔우면 좋을 수도 있으련만. 

나는 같은 감정들 사이에서 맴돌고 있다. 

실내 작은 트랙 안에 갇혀버린 범퍼카처럼, 

그 안에서 맴돌고 맴돌고 맴돌다가 쾅.

부딪히는 순간 터져버린다. 

그러면 이내 울음도 터져버리고, 

다음날이면 여지없이 귀는 욱신거리면서 숙취처럼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려, 

황급히 약을 찾는다. 

그리움이 정거장처럼 머물러 있는 감정이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가고 싶을 때만 찾아갈 수 있다면, 

내가 조절할 자신이 있는 날만 방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파트 단지를 걷다가 하늘을 보는데 문득, 

바닷가에서 엄마와 아이가 조잘대는데, 

창밖으로 슈퍼마켓 주차장에 차가 드나드는데, 

어제 저녁에는 가스레인지 닦으려고 물티슈 찾다 아이가 내 품에 안겨있는 사진을 보는데, 

그리움이 시속 130으로 치고 달려와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무너지고 말았다. 

한 번만 이렇게 안아봤으면, 

한 번만 느껴봤으면, 

한 번만 만져봤으면, 

이 그리움에 '한 번만'이 붙는 순간, 더 이상 한 번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절망감에 빠뜨리면서 깊은 감정으로 끌고 내려간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어떤 걸 해야 할지 모를 상태. 

-

그리움은 너무 동적이라서 수시로 나를 치려고 달려온다. 

그러니 그때마다 무너지고 우는 수밖에. 

(한 번만 너를 품에 안아볼 수 있다면... 어제 나를 무너지게 한 사진)

작가의 이전글 내 몸이 기억하는 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