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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Aug 11. 2022

나의 최악은 너에게 최선인걸까

선택권이 없는 선택 3

"골절이 아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단순 엑스레이가 아닌

수술 전 검사로 조금 더 자세히 보니 

골절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었다. 

수술을 바로 시작하지 않고 

일단 안에서 다른 검사로 다시 확인해보겠다며 

담당교수는 다시 수술실 안쪽으로 향했고,

지금 이 상황을 기뻐해야 할지 더 걱정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아 남편과 나는 어리둥절하게 앉아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더 흘렀을까. 

담당교수는 다시 우리를 수술실 안쪽으로 불렀다.

이번에는 컴퓨터에 다른 화면을 띄워놓고 

조곤조곤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아이의 뼈 상태를 조금 더 세밀하게, 

뒤쪽에서도 볼 수 있는 3D CT라고 했다.

아주 자세히 보니 골절은 아니었고, 

뼈가 워낙 얇아져있고 약해서 

뚝하고 부러지는 상태가 아니라 

앞으로 휘어서 변형된 상태라는 설명을 덧붙여줬다.

"수술은 안 해도 되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위험천만한 수술을 안 해도 돼서 기쁘기보다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말에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더위에 늘어져버린 엿가락처럼

가늘어져 힘없이 휘어버린 뼈라,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고, 

이 상태에서 부러진다 해도 

너무 얇아진 뼈 사이에 철심을 박을 수도 없기 때문에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막막했다.


결국 심각한 분위기로 급하게 진행되었던 수술은

맥없이 끝났다. 

자정이 다된 시간,

연휴 시작 전날 밤늦게까지 곁에서 살펴보며

수술을 하겠노라 마음먹어준 담당교수의 

뒷모습을 보며 '그래도 참 고맙다.'고 느꼈다. 

환자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은 

의사에게도 분명 큰 부담이 될 것인데

용기를 내주고, 

미루지 않고 아이를 세심하게 살펴봐줘서

참 고마웠다. 

처음 봤을 때부터 냉랭했던 그 의사가 

나는 늘 불편하고 어려웠지만 

뭐라도 해주려고 늦은 시간까지 

애써주고 돌아서던 그 뒷모습을 보며 얼른 달려가

그래도 감사하다고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교수라는 이름은 왠지 모르게 보호자를 늘 위축되게 하고

조심스럽게 만들어버려서 

그날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감사합니다'

속으로 외칠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술장에서 나왔지만

수술로 인해 입원절차가 등록되어있었기 때문에

병실에서 6시간은 의무적으로 있어야 

퇴원수속이 가능했다. 

병실 역시 한 명의 보호자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나 못지않게 놀랐을 남편이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병실로 보내줬다.


그 시간까지 연우의 수술 경과가 걱정돼 기다리던

소화완화의료팀 교수가 찾아왔다. 

소화완화팀은 연우와 같은 중증환아들을 

집중적으로 케어해주는 팀이다. 

담당교수가 아이의 상태를 좀 더 빠르게 보고받고

필요시 관련 외래를 예약해주거나 

진통제나 항생제 등의 약 처방을 

불편함 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또 한 달에 한 번씩 완화팀 재택 방문 간호사가 집으로 와

병원에 자주 갈 수 없는 아이들의 상태를 체크해주고

추가할 약이 있는지도 보호자와 의논한다.

병원에 가기 어려운 중증 환아들을 위해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환자를 살펴봐주고 

보호자의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도와주는 고마운 팀이다. 


완화팀 교수는 그 늦은 시간에도 

상태가 안 좋은 환자들에 대한 연락을 받는 것 같았다. 

적막한 병원 복도에 나와 교수. 

단 둘 뿐이었다. 

대화 중간중간에도 전화를 받아

한참 반대편의 설명을 듣고는,

추가로 처방할 약에 대한 지시를 내리고

내일 어떤 검사를 더 해야겠다, 

내가 회의 끝나고 몇 시에 봐야겠다 등 

쉴 새 없이 환자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어느 정도 통화가 마무리되었을 때 완화팀 교수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시작했다. 

  

"우선 수술을 안 하게 되어 천만다행이지만

이런 상황이 또다시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이제는 연우와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미리 결정해두고 준비해야 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나는 그녀의 의견에 선뜻 동의할 수 없어 

조금 용기를 내 반박해보았다. 


"저도 지금 연우 상태가 안 좋다는 건 알지만

사실 저나 아빠나 오늘 이 일을 빼고는 연우가 골절 전에는

큰 수술도 없었고 위험한 상황도 없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수시로 폐렴 때문에 입원하거나 

병원 드나들 일도 없어서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교수는 동의하는 듯한 제스처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역시나 조금 머뭇거리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긴 해요. 

하지만 저희는 그걸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봤거든요.

별다른 문제가 없는데도 더 이상의 호전이 없었잖아요?

크게 아프거나 입원을 하거나 수술할 일이 없었는데

여전히 아무 반응이나 반사가 없다는 건 

오히려 더 안 좋은 상황으로 보여요. 

어머님이 이만큼 케어를 해서 지금 유지가 되고 있는 거지

조금만 잘못하면 연우는 금세 안 좋아질 수 있는 상태거든요.

특히 연우의 호흡이 급격이 안 좋아져서 

이제는 어떤 수술실에 들어가도 

최악의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이 어렵다는 소견은 변함이 없어요. 

또 심폐소생술로 겨우 살려내더라도

가장 힘들 사람은 연우가 될 거예요. 

연우의 몸 상태가 이미 너무 안 좋아졌기 때문에

여기서 심폐소생술을 한다면 더 안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게 

지금 가장 큰 문제거든요. 

이제는 외래 등의 적극적 치료를 중단하고 

연우의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집에서 남은 시간을 아이와

더 가깝게 보내는 것이 

어머님 아버님한테도 연우한테도 가장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 말씀드려야겠다 싶었어요. "


나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사망선고를 받는 기분이었다. 

진통제로만 연우의 통증을 조절하며 

앞으로 모든 외래 진료를 포기하고

남은 시간을 더 잘 보내는 데 집중하라. 

간단해 보이지만 너무 어려운 얘기였다. 

모든 치료를 중단하는 것. 

아이를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누구보다 연우의 상태와 

아이 옆에서 몇 년을 24시간 간병한 우리 부부의 생활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의사이기에 

우리를 걱정하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길을 

제시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아빠와 좀 더 상의해보겠다며 의사를 돌려보내고 

병실 문 앞 소파에 누웠다. 

연우와 이별할 수도 있었던 상황을 되짚으면서

또 앞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의사의 말을 곱씹으면서

새벽 1시,

긴장과 두려움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을 뉘이고 나니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 괜찮다는 안도보다 

이제 연우와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끝에 와있구나라는 절망적인 기분이 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누워 한참을 울었다. 


나에게 최악이라고 느껴지는 너와의 이별이

정말 너에게는 최선일까.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정말 너를 놓아주는 일일까. 

지금 이 순간 

내가 너를 억지로 붙잡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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