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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Aug 08. 2022

B가 없는 A

선택권이 없는 선택 2

진료실로 들어가자,

며칠 전에 만났던,

이제는 너무 자주 봐서,

그 많은 환자 중에도 연우를 기억하는 담당교수가

조금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리고 조금은 허탈한 웃음을 섞으며 말했다.

 

"골절이네요!"

 

대퇴부와 골반을 연결하는 뼈에 금이 갔다. 

예상치 못한 진단이었다.

나는 여태 내가 정말 두려워했던 고관절탈구와 

재수술의 가능성만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다리 깁스를 푼 지 며칠 되지도 않아

골절이 왔다는 말을 다시 듣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 

순간 정신이 멍해지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대퇴부 연결부위 골절은 

내가 선뜻 떠올린 골절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이것을 그냥 두면 

골반에서 다리로의 혈류 흐름이 온전치 않아 

최악의 경우 다리가 괴사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응급수술을 잡으려 한다. 

하지만 이미 약해질대로 약해진 뼈의 상태로 봐서 

수술 자체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아이의 호흡 상태도 너무 안좋아져서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인지 소아과나 호흡기내과까지

다른 분과의 선생님들과 의논해야겠다. 

최악의 경우, 수술 중 심정지가 온다면,

심폐소생술 자체가 연우의 컨디션에서는 어려운 상태. 

즉 수술장에서 그냥 그대로,

연우를 보내야 할 수도 있다


는 것이었다. 

담당교수의 말에 우리 부부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일단 이 수술을 할 수 있을지 조금 더 보겠다며

나가서 대기하라고 했다. 

진료실 밖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부러워졌다.

차라리 나도 저렇게 진료실로 들어가기 전이었으면,

아무것도 모르던 조금 전으로 돌아갔으면 했다.

내 예상에 전혀 없던 이 상황이 너무 황당하고 막막하고 

두렵기까지 해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괴사라니...'


그대로 두면 괴사가 될 것이라는 끔찍한 말이 계속 맴돌았다.

제대로 쓰지도 못해 근육이 굳을 대로 굳어버리고, 

경련과 강직 때마다 힘을 주다가 

이제는 아예 아치형으로 휘어가고 있는,

볼때마다 너무 안쓰럽고 미안한 연우의 다리.

아파트 단지 앞 놀이터를 지나면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볼 때면 

마음 한쪽이 찡하고 아려오는 걸 느꼈다.

우리 아이는 가지지 못하는 즐거움에 대한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매번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이 다리로 함께 손을 잡고 걸어봤으면,

언젠가 내 품에 달려와 안겨줬으면. 

수없이 그려보고 다시 슬퍼하고. 

아무것도 해볼 수 없는 아이의 두 다리였지만

그렇다고 잃는 것이 당연한 것도 아니었다. 

엄마인 나에겐 어느하나라도 포기할 수 있는,

소중하지 않은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수술을 하자니, 이대로, 정말 이대로,

아무 준비 없이 갑자기 연우를 떠나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의사는 우리에게 수술을 하겠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어쩌면 수술을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도 없는 

무조건 수술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의사는 우리에게 수술을 시키겠냐고가 아닌

자신이 수술을 할 수 있는지 여부를 살펴본다 했을 것이다.  

아주 약해진 뼈와 호흡으로 아이가

수술장에 들어갈 수 있느냐를 판단할 문제였다. 

아이의 생명이 위험해지는 것을 감수하고도 

의사 자신이 수술을 시도할 수 있는지 선택할 문제였다.

그래서 이 중에 남편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를 잃을지도 모르는 수술 결정을 

의사들 손에만 맡기고 아무 생각없이 따를 수도 없었다.


진료실의 간호사는 자꾸만 우리를 찾았다. 

응급수술을 하기로 했으니 수술 전 검사를 급히 해야한다고 했다. 

담당교수는 이제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정말 이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인가. 

수술을 거부해야 할까, 이대로 수술이라도 해봐야 할까.

도대체 어떤 게 최악의 경우인가. 

다리 한쪽이 아예 괴사 되어 버리는 경우. 

괴사로 인한 그다음 일들을 알지도 못했지만, 

알고 싶지도 않을 만큼 무서웠다.  

그것도 아니면 수술을 하다가 아이가 떠날 수도 있는 경우. 

선택을 하려야 할 수가 없는 숨 막히는 상황이었다. 

차악이 존재하지도 않는,

그저 최악에 최악 하나 더. 

A와 B중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B없는 A와 A 둘을 놓고 고민하는 기분이었다.

우리에겐 어느 쪽도 더 작은 손실이라는 건 없었으므로.


누군가는 그나마 목숨이라도 건져야 하지 않겠냐며 

따질지 모른다. 

하지만 의식없이 누워있고 

어떤 표현도 하지 못하는 아이라 할지라도

단 하나, 통증과 고통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상태이다. 

이런 아이에게 괴사로 인한 통증, 

그 다음에 따를 후유증을 안겨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너무 괴로운 심정이었다.


연우에게 더이상의 고통은 없어야한다. 


단 하나의 생각으로 우리는 최악 중 더 최악이 될 지모르는

선택을 했다.

설사 연우를 보는 마지막 순간이 될지언정

이대로 집에 돌아가 연우에게 더 큰 고통을 줄 순 없다고 판단했다. 

너무 사랑하는 내 아이지만

더 잡고 있겠다는 욕심을 마냥 부릴 수가 없었다.

이것은 애초에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는 문제였지만

아무 도움도 주지도 못하면서 아이의 괴로움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아이를 수술장에 들여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만 최악 중 최악의 경우가 나와도 후회하거나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게 연우를 보는 마지막일 수 있구나. 


연우와 이렇게 이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남편과 나는 눈물을 그칠 수 없었다.

진료시간이 끝날 때가 점점 다가오면서 

자꾸 우리를 애타게 바라보던 간호사에게

수술을 하겠노라 말하고 응급 수술을 위한 

긴급 검사들을 위해 응급실로 향했다. 

코로나로 인해 응급실엔 보호자 한 명만이 함께 할 수 있었다.

연우와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순간.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아이와 함께하고 싶었지만,

나는 여태 매일 24시간을 아이 옆에서 보냈는데

직장생활로 아이를 자주 보지 못한 남편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억울하고 아쉬울까. 후회스러울까 싶어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우리의 시간을 남편에게 양보했다. 

응급실 문 앞에서 남편과 아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무서운 생각들을 쉽게 떨칠 수 없었다. 


오늘 아침에 한 끼라도 더 먹이고 올걸. 

오늘 아침에 한 번 더 안아줄걸. 

조금 더 사랑한다고 말해줄걸. 

사진이라도 한 장 더 찍어둘걸. 


수많은 후회가 밀려와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수술 준비를 마친 연우가 이동 요원과 함께 응급실에서 나왔을 때

수술실로 가는 그 길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 것 같았는데도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잡는 이 손이 마지막일지 몰라.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미안해서 

마지막 이 모습을 조금 더 눈에 담아두고 싶어도 

자꾸만 눈물이 흘러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지금 뭘 결정한 거지. 

아니 애초에 선택권이 있긴 했던 걸까. 


수술은 안된다고,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고, 

아이를 잡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게 옳은 결정이라는 확신도 아직 없었다.

끝내 내가 할 수 있는 건,


"우리 연우 잘할 거야. 괜찮을 거야. "

"우리 연우는 이렇게 갈 리가 없어. 잘하고 나올 거야. "


라고 주문처럼 외면서 빌고 또 비는 것 뿐이었다.


연우가 태어난 뒤 크고 작은 수술들로 

이 소아 수술실 안에 연우를 들여보낸 것도 수차례.

익숙한 대기실이었지만, 

그날만큼은 그곳의 공기 하나까지도 기억해두려고

마지막일지 모르는 이 순간을 잡아두려고 애쓰면서 

수술장으로 들어가는 연우의 침대를 남편과 한참이나 서서 바라보았다. 


제발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이 아니기를. 

최악의 경우는 생겨나지 않기를. 


지금 이 순간이 너무 말이 안돼서 

믿고 싶지도 않고, 믿겨 지지도 않던 남편과 나는

허망하게 수술실 앞 대기석에 자리를 잡았다.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이대로 다신 못 보는 건 아니겠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애써 정신줄을 붙잡고 

수술이 끝났다는 연락이 오길 기다리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을 때,

연우가 수술장에 들어간 지 10분이나 됐을까. 

빛바랜 것처럼 옅은 녹색 수술복, 마스크를 쓰고,

수술장에서 바로 나온 듯한 담당교수가 

밖으로 나와 우리를 찾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벌써 왜 교수가 나온 거지. 

설마 벌써 최악의 경우가 생긴 건가. 


너무 놀라 눈물도 쏙 들어갔고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채로

담당교수를 바라봤다. 


(다음 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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